그리스 로마문명의 위대함일 것이다. 사실 조선도 바로 이 앞단계에서 멈추고 말았었다. 정도전이 주장한 '재상총재제'의 요체가 그것이다. 왕이란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를 위한 수단이며 상징에 불과하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성리학의 나라이고 사대부의 나라이며 백성들의 나라다. 그래서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을 이어 나오게 된 것이 경국대전인 것이다. 왕마저도 함부러 어겨서는 안되는 조선의 근본이었다.
로마법이 세계문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일 것이다. 로마인은 로마법을 따른다. 특정한 권력자가 아니다. 혈통에 의해 세습되어지는 특정한 가문에 의해서가 아니다. 물론 로마에서도 명문이라 할 수 있는 가문들은 있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인들은 로마에 속해 있기에 로마인일 수 있었다. 로마인들이 제국을 넓혀가며 단지 로마의 시민권을 주는 것으로 점령지의 주민들을 포섭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로마의 시민이기에 그들은 로마인이다. 바로 공화제다.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 불리우는 지배신분의 특별한 의무 역시 여기에서 출발한다. 자신들 역시 로마인이므로 자신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 역시 모두 로마에게서 나왔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로마로 돌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
로마의 황제에근 늑래서 정통성이랄 것이 없었다. 반란을 일으켜서 스스로 황제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로마의 법과 관습을 따르는가. 로마의 시민들을 존중하는가. 아예 처음부터 혈연이 아닌 지명에 의해 황제가 세습되고 있기도 했었다. 황제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황제의 혈통을 이은 특정한 가문의 소유가 아니다. 단지 로마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황제의 자리에 있을 뿐이다. 나라가 특정한 가문의 소유였던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그처럼 실력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 했다면 반역자라는 오명을 써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점이 현대사회에 와서도 서구문명권에서의 민들과 다른 문명권에서의 국민들이 권력을 대하는 관점이나 입장이 서로 다른 이유가 되고 있지 않았을까.
이조란 이씨조선의 준말이다. 그리고 이씨조선이란 이씨의 나라 조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리 조위라 하면 조씨의 위나라일 테고, 손오라 하면 손씨의 오나라가 된다. 프랑스에서도 발로아니 부르봉이니 왕조의 교체를 기준으로 시대르 나누기도 했었다. 하기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프랑스라는 나라는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지금이야 어떻게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의식이 발달하기 전 전근대사회에서는 어떻게 국가라는 존재를 인식했었을까. 불교에서 굳이 불상을 만들어 절하도록 만드는 이유다. 가톨릭에서 성상을 허용하려 한 이유이기도 했다. 엄밀히 개신교에서 내세우는 십자가 또한 우상의 하나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서 천황의 권위를 강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실체도 없던 일본이라는 나라 대신 만세일계의 천황을 앞세워 일본인들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그래서 나랏님인 것이다. 나라의 주인이나. 나라 그 자체다. 나랏님이 바뀌면 나라도 바뀐다. 나랏님이 망하면 나라도 망한다. 나랏님이 새롭게 들어서면 새로운 나라의 백성이 된다. 나라란 나랏님의 소유이고 백성이란 그의 지배를 받는 신민인 것이다. 물론 그에 따른 의무도 부여된다. 당연히 자신의 소유이기에 소유에 대한 책임이 발생한다. 오히려 왕권이 더 강할수록 왕에게 지워지는 책임 역시 더 강해지고 있었다. 점점더 왕이란 개인이되 보다 추상적인 존재로써 국가와 동일시되기에 이른다. 인간임에도 인간으로서의 인격마저 부정되었다. 조선에서 사실 왕이란 사람이 할 만한 짓이 못되었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이유였다. 일본과 중국과는 다른 한반도만의 특수성일 것이다. 민주주의의 쟁취과정에서 드러난 세 나라의 차이도 어쩌면 여기서 비롯되지 않았겠는가.
아무튼 그런 이유에서다. 르네상스 이후 로마를 다시 발견하며 유럽인들은 공화제라는 것을 되찾게 되었다. 지배신분과 피지배신분이 따로 없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다르지 않은, 그래서 국민국가다. 왕이란 국민의 공복이다.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난다. 시민혁명이 일어나며 시민이 주인이 된다. 권력에 도전하여 그를 무너뜨리고 자신들이 그것을 대신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왕도, 귀족도, 부르주아도 아닌 바로 시민 자신들이다. 성실하게 일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전장에 나가 싸우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세금으로 충실히 납부하는, 나라를 이루는 구성원들인 자신들이다. 그리고 나라의 주인인 자신들에게는 보다 엄격한 나라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보다 크고 넓어진 권리와 함께 주어진다. 자신이 누리는 부와 권력과 명예는 자신의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해 쓰여야 할 공공의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를 기준으로 좌파와 우파가 나뉘기도 한다. 개인의 소유에 대한 공적인 영역에 대한 이해의 차이다.
반면 그나마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나은 편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마저 여전히 권력이란 권력을 가진 개인의 사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 권력으로 무엇을 하든 타인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개인이 번 돈으로 무슨 짓을 하든 타인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에 반해 시민으로서의 개인의 권리나 자유, 혹은 노동자의 노동력과 같은 것은 명백한 소유를 정의할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을 부여하고 인정하는 것 역시 권력을 소유한 권력자의 재량에 속하는 것이다. 권력의 불법에는 관대하면서 시민의 불법에는 엄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자기 것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권력에 비해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와 자유란 온전히 시민의 것일 수 없다. 사용자가 소유한 기업과 기업에 대한 권리에 비해 노동자는 단지 자신의 노동력으로 사용자로부터 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을 뿐이다.
원래 법치란 강자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가치다. 어차피 강자란 법이 없어서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에. 오히려 강자를 법으로 강제함으로써 그들이 지나치게 월권하지 않도록 제약을 둔다. 하지만 자유주의와 결합한다. 내가 내 돈으로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겠는가. 내가 내 권력으로 내 마음대로 하고싶은대로 한다는데 누가 뭐랄 수 있겠는가. 1997년의 IMF는 그 과정을 더욱 왜곡시켰다. 돈이란 절대의 가치가 되었고 그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란 어디에도 없었다. 약자에게는 법이라도 제대로 따라야 할 더 엄격한 도덕적 책임이, 강자에게는 무한에 가까운 자유가 주어졌다. 그 결과다.
경찰의 불법이 알려저도 전혀 그것을 지적하거나 비판하려는 사람조차 드물다. 정부가 법을 어기고 있어도 오히려 속시원하다며 지지하는 사람들마저 나온다. 노동자의 사소한 불법은 비난하면서 기업의 큰 범죄는 눈감아준다. 노동자가 연봉 6천만원을 받으면 귀족이지만 사용자는 재산만 7조가 넘어가도 당연한 것이다. 중국에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여러 사회현상들도 이런 것들이 원인이 되고 있을 것이다. 의외로 일본사회는 우라나라보다 어쩌면 더 봉건적이기도 하다. 어쩌면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란 너무 이른 것은 아니었을까. 민주주의란 공화국을, 개인이 주인이 되는 공동체로서의 국가를 전제한다.
하여튼 정말 위대한 것이다. 국가라는 개념을 독립시킨다. 왕으로부터, 특정한 신분이나 계급으로부터, 그리고 당당한 국가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한다. 개인이나 특정한 집단의 권력이 아닌 법이라는 명문화된 객관적 규범에 의해 지배받도록 한다. 21세기일 텐데도. 언론을 탓할 것 없다. 그런 언론을 선택하고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것 역시 개인의 책임일 것이다. 대한민국이다. 그 위대함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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