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추진하는 혁신위의 혁신안이 자신과 자신의 계파에 불리할 것을 예감한다. 혁신위의 혁신안대로라면 자칫 자신의 계파가 와해될 위험도 있다. 그래서 혁신위의 혁신안을 무력화시키는 계획을 세운다.
바로 맞불작전이다. 오히려 부저추신의 계략을 사용한 것은 문재인이 아닌 김한길이었다. 혁신이라는 이미지를 안철수라는 아직 대중에게 신선한 이름을 앞세워 자신들이 가져가려 한다. 세부적인 내용에서 크게 차이가 없는 혁신안을 안철수라는 이름을 빌려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혁신을 향한 대중의 요구와 내적인 동력 자체를 충돌시켜 와해시키려 한다. 안철수의 혁신안에 비하면 문재인의 혁신안은 혁신안도 아니다.
오히려 혁신논란을 통해 혁신 그 자체에 대중이 지쳐버리도록 만든다. 혁신이 아닌 단지 문재인과 안철수의 싸움이다. 문재인을 궁지로 몰아 그를 고립시킨다. 문재인이 안철수의 혁신안을 받아들이겠노라 제안했음에도 안철수가 오히려 혁신전대만을 고집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문재인이 완강하게 거절하자 주승용과 이종걸까지 나서서 문재인의 사퇴와 전당대회를 주장하며 나선다. 다만 한 가지 김한길에게 아쉬운 점이라면 의도인지 실수인지 주승용을 통해 김한길의 이름이 지나치게 일찍 언급되었던 탓에 벌써부터 전면에 나서게 된 부담이었을 것이다. 더 두 사람의 충돌이 끝까지 간 뒤에 조용히 수습하며 나타났다면 당의 주도권은 다름아닌 김한길 자신에게로 돌아갔을 것이다.
무대는 만들어졌다. 새정연의 혁신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새정연 내부의 오랜 내홍과 안철수가 내놓은 더 강력한 혁신안으로 인해 한참 꺾이기 시작한 뒤다. 문재인에 대한 신뢰와 기대도 많이 약해졌다. 안철수 역시 그동안 끊임없이 문재인과 대립한 결과 당 안팎에서 비토층이 형성되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대안은 칩거중인 손학규이거나 김한길 자신이다. 이미 한 번 정치에서 은퇴했던 손학규보다는 김한길 쪽이 더 전선과 가까운 곳에 대기하고 있는 중이다. 새정연의 내홍에 대한 뉴스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를 해결할 대안을 들고 주승용, 이종걸 등 당의 중진들과 함께 김한길이 화려하게 전면에 나선다.
안철수가 선의로 혁신안을 고집했을 것이라는 나의 확신이 그래서 요즘 많이 흔들리고 있다. 순수하지만 아직 서툴다. 너무 순진해서 단지 현실을 아직 잘 모를 뿐이다. 그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 다른 것을 보고 의도하여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다. 지지자들이 보는 안철수 역시 그런 이미지다. 총선의 패배 이후를 대비한다. 총선의 패배에 대한 책임을 최소화하며 문재인 이후 대안으로 나설 것을 준비한다. 명분쌓기다. 다만 그것은 자신을 위한 명분이 아닌 김한길을 위한 명분이었다. 어차피 대중적인 지지가 바닥인 김한길로서는 대선후보로 나서기에 어려운 점이 많다. 김한길에게도 대안은 안철수 뿐이다. 당권은 김한길이 그대로 가지고 있더라도 대권은 안철수가 가져간다. 아마 그런 정도 거래가 있지 않았을까.
안철수가 한 발 물러나 칩거에 들어간 순간 비주류가 저토록 거세게 나오는 것도 아주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 계산된 상황이다. 안철수가 칩거에 들며 피해자의 이미지를 만들 때 불통의 악역인 문재인을 비주류가 나서서 응징한다. 더불어 안철수는 물론 문재인이 추진하던 혁신안까지 모두 무위로 돌린다. 안철수의 지지자들이 그마저도 지지하고 있다. 그마저도 문재인의 탓이다.
다른 건 몰라도 김한길의 꼼수는 현역 정치인 가운데 상위에 손꼽힐 것이다. 안철수도 문재인도 결국은 그를 위한 무대의 장기말에 불과했다. 물론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말이다.
새정연 총회와 관련한 뉴스가 있었다. 오히려 새정연의 다수가 김한길계의 중진들을 비토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명분은 아직 문재인에게 있다. 그래서 김한길 입장에서 무척 아쉬웠을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주승용과 이종걸의 행동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조금만 더 여유를 두고 문재인을 몰아세웠더라면 김한길은 확실한 대안으로서 당의 대표로 복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한길에 조종된 것은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안처수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거래가 있었다. 이 절묘한 상황은 어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조율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재미있다. 정치란 이런 스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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