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창의적 사고 하면 교육부터 떠올린다.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 사회도 개인도 창의적이 될 수 있다. 사실일까?
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억압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더라도 결국 인간에게 상상력이라는 것이 있는 이상 어느 순간에는 자기만의 생각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가 없는가.
제도라기보다는 문화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아무리 엉터리같은 도전이라도 인정해 줄 수 있는 문화. 뻔히 죽을 것을 알면서도 북극을 탐험하고 남극을 질주한다. 고작 산꼭데기 오르는 것이 무슨 큰 일이라고 목숨까지 걸어가며 히말라야를 오른다. 아직 아무도 히말라야에 오르지 못한 때였다면 과연 한국사회는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히말라야에 오르려는 개인들을 용납했을 것인가.
실패를 비웃는 것이 아니라 도전 그 자체를 비웃는다. 좌절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좌절할 짓을 한 자체를 우습게 여긴다. 그러므로 시작단계에서부터 스스로 검열하게 된다.
"이게 과연 될까?"
어디서나 항상 하는 말이다. 아이디어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는 없다. 기술이 모자라서 못하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다. 단 한 걸음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기는 그 한 걸음이 창조와 모방이라는 넘을 수 없는 간격을 만들고 만다.
뒤늦게서야 한탄한다.
"아, 내가 먼저 할 걸!"
단지 그럴 수 있는 사회와 그러지 못하는 사회로 나뉠 뿐이다. 그럴 수 있는 개인이란 그런 것들을 허용하는 사회에서 길러진다. 그러지 못하는 개인이란 그런 것들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길러진다.
낙천이 곧 자유다. 긍정이 바로 자유다. 두려워하지 않는다. 거리껴하지 않는다. 당당히 드러낸다. 당당히 행도에 옮긴다. 미국이 강한 이유다. 이놈들은 진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낙천적이다. 삶을 즐길 줄 안다. 실패조차 그 과정을 즐길 줄 안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도전이 미국으로부터 나오고, 그 작은 도전에 세계가 움직이게 된다. 헐리우드가 강한 이유는 단지 돈을 많이 쓰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그렇다면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삶이 허락되는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더 나은 자신을 위해서? 아니면 더 비참하고 더 한심한 자신이 되지 않기 위해서? 시험에서 맞은 갯수보다 틀린 갯수에 더 민감하다. 자기 밑에 몇 명이나 있는가보다 자기 위해 몇 명이나 있는가 더 신경쓰고 만다. 하기는 아예 틀린 갯수대로 때리는 부모와 선생님들마저 있다. 그만큼 자신은 가치없는 쓰레기다. 무의식적으로 믿어 버린다.
인정이란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욕구 가운데 하나다.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싶다. 억압적인 사회에서 주위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은 공포에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비관을 두려워할 줄 안다는 것이다. 단지 눈앞의 두려움만을 피하려 한다.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동기와 용기가 부족한 것 뿐이다. 아이디어가 있다는 사실마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새로움을 두려워하고 거리껴하게 만든다.
최근의 정치이슈와도 이어질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어차피 총선에서 지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해도 총선에서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길 수 있다. 이겨야 한다. 어떻게든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로 다투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그야말로 혁신으로 경쟁이란 것을 할 수 있다. 질 것이 뻔한데 이길 한 가지 방법을 찾아야지 무슨 새로운 도전이고 실험인가.
한국사회가 보수적인 이유인 것이다. 두려워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자체를 무서워하고 꺼려한다. 자연스럽게 변화도 싫어한다. 적응할 자신이 없다. 거기서도 지금까지처럼 할 자신이 없다. 그러면 실패하면 되지 않는가. 실패하고 도전하면 되는것 아닌가. 그게 안되니까. 한 번 실패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외면당한다.
결국 다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창의적이지 못하고, 도전을 두려워하며,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하는 이유다. 비판적 사고란 존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든다. 그렇게 강요한다. 노인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자신의 경험만을 모두에게 강제하려 한다. 그렇게 과거의 경험만이 세습된다. 멈추고 만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디어가 없어서 못하는 것은 전혀 없다. 어디에든 아이디어는 있다. 누구나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다. 실패할 용기가 있는가 없는가. 실패할 자신이 있는가 없는가. 작지만 크다.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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