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인류의 문명은 강을 중심으로 발달하고 있었다. 흔히 생각한다. 풍부한 물과 너른 비옥한 평지가 생산에 유리했으므로 그로부터 문명은 일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것이 큰 강이었을까? 국지적으로 본다면 그보다 더 기후나 환경적으로 더 유리한 지역도 적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당연하다. 물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하면서 기후까지 온화하면 당연하게 인구는 늘어나게 된다. 자체적으로 늘어난 인구가 분화하기도 하고, 풍요로운 환경을 찾아 외부에서 이주해 오기도 한다. 강을 중심으로 이질성과 다양성이 증가하게 된다. 거기에서 가능성이 생긴다.
이를테면 A라는 부족이 철광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B라는 부족은 보다 높은 온도를 낼 수 있는 숯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두 부족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서로가 알고 있는 지식은 바로 거기서 끝나고 마는 것이다. 고대에 수많은 문명이 일어나고 또 멸망했음에도 정작 인류의 문명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문명은 그렇게 고립된 지역에서 단독으로 발전하다 소멸해갔다.
가장 먼저 철을 가공하는데 성공했던 것이 이집트였음에도 사막으로 가로막힌 환경은 이집트의 문명을 마치 화석처럼 고대에 머물게 만든 것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었다. 이집트가 페르시아에 정복당하던 당시에도 이집트는 여전히 청동기문명에 머물러 있었다. 고대의 놀라웠던 수학적 지식도 이 무렵에 이르면 더 이상의 새로운 발견이나 발전 없는 정체상태에 머문다. 고대의 찬란했던 문명이 비한다면 멸망할 당시 이집트의 문명은 한심 그 이하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스의 놀라운 문명도 바로 이웃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명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스와 카르타고 등이 번성했던 지중해문명은 로마문명과 이어지고 있었다. 중근동은 오래전부터 인류가 이동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며 다양한 문명이 중근동을 거쳐지나고 있었다. 그곳에서 유대인들은 주변민족들의 신화를 모아 유대교라는 유일신교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이것은 이후 다시 예수에 의해 기독교로 완성되기에 이른다.
중국문명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민족에게서 시작된 하나의 문명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은허문명의 주인인 상나라는 하나라 시절 동이라 불리고 있었다. 주나라는 상나라 시절 서융이라 불리며 오랑캐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 주나라의 땅을 진나라가 물려받았고 이들 역시 전국시대까지 서융이라 놀림받았었다. 아예 초나라는 주나라와 다른 체계를 갖춘 문명이었다. 춘추전국시대는 바로 이들 장강유역에서 일어난 초나라 문명과 황하유역에서 일어난 주나라 문명의 만남과 결합이었다.
오히려 중국문명이 정체하기 시작한 것은 명나라 이후 중국의 세계가 통일되면서부터라 할 수 있었다. 굳이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그럴만한 대상도 몽골에 의해 거의 정복당하며 남아 있지 않았었다. 인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스만투르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통일된 제국은 하나의 통일된 문명과 정신을 만들어냈고 그 안에서 그대로 완결되기에 이르렀다. 하필 조선도 그런 귀퉁이에 머물러 있었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이유였다. 게르만이 있었다. 그리스와 로마가 있었다. 이슬람이 있었다. 그리고 이슬람을 통해 건네진 동방의 놀라운 문명들이 있었다. 유럽 자체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서로 갈라져 있었다.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유럽의 국가들 가운데서도 이질성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말이 유럽이고 서구이고 문화나 전통, 기술 등은 서로 차이가 매우 컸었다. 어쩌면 거의 유일하게 전근대사회에서 '세계' 아니 '지구'라는 단위를 이해하고 있던 이들이었을 것이다.
어째서 특정한 민족, 혹은 국가만이 고도의 문명을 이루고 그 밖의 다른 민족과 국가들은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한 채 도태되고 있었는가. 그만한 다양성이 그 안에 확보되고 있었는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했을 때 아메리카인들은 아직 바퀴와 철기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때로 유럽인들이 당시까지 상상도 하지 못하던 문명을 이루어내기도 했지만 정작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상식처럼 여겨지는 것들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지식들이 유라시아 대륙 어느 곳에서 발견되거나 혹은 만들어져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했을 때 하필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대륙에서 고립되어 있었다.
진화론이란 그런 것이다. 요즘은 달리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어려서 나 역시 학교에서 잘못 배우고 있었다. 진화란 더 나아지는 과정이 아니다. 단지 더 나아지게 된 결과다. 생물이 가지는 유전적 다양성 가운데 새로운 환경의 변화, 혹은 유전적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가능성이 찾아내지면 그로부터 새로운 종의 분화가 일어난다. 목이 길어지는 것이나, 혈압이 지나치게 높은 것, 뇌의 혈관구조가 복잡해지는 것, 모두 종에 있어 불필요한 유전적 질환이었을 테지만, 하나로 모이며 기린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단세포기 분열되지 않고 뭉쳐있는 것도 이상이었을 것이고, 원숭이의 몸에서 털이 사라지는 것도 좋은 징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졌을 때 생물의 종은 그대로 고착되고 끝내 변화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도태되어 사라지고 만다. 신대륙의 많은 생물들이 인간에 의해 멸종해가던 과정이었다.
인간의 우열이 아니다. 문명의 우열이 아니다. 그냥 환경의 차이다. 자극받을만한 다양성이 이웃에 있었는가. 더 다양한 더 풍부한 지식과 경험들이 서로 교류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그런 과정들이 누적되며 문명은 확장되어 간다. 역사상 그럴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문명은 이른바 4대문명이라 불리우는 문명들 정도다. 물론 4대문명이라 해서 하나의 문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혹은 주위에 존재한 수많은 다양성들을 아우르는 것이 바로 4대문명이라 부르는 것이다.
국제사회도 마찬가지고, 국내적으로도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회의 발전은 그 사회가 가진 다양성에서부터 비롯된다. 더 많은 다양성이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고 그 가능성이 발전을 이루어낸다. 더 나은 것, 더 강한 것, 더 우월한 것, 그렇게 줄을 세운다. 나머지를 과감하게 배제한다. 더 나은 유전자만을 골라 후손으로 남긴다면 인간은 더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역사와 과학이 가르쳐준다. 과연 인류와 문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인류는 무엇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는가.
노자의 말이 옳다. 오로지 죽은 시체만이 강하고 딱딱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썩어 흐물흐물해진다. 살아있는 것만이 유연하면서 여전히 유연한 채로 남을 수 있다. 얼음은 부술 수 있지만 물은 부술 수 없다. 물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릇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마도. 눈을 뜨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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