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호남과 비호남, 오랜 오해와 착각의 끝...

까칠부 2016. 4. 22. 17:52

1987년 민주화진영의 대선후보단일화 실패는 군사독재종식과 민주화를 함께 외쳤던 민주화진영의 분열을 의미했다. 이후 김대중의 호남과 김영삼의 비호남이 나뉘며 서로 대립하기 시작했고, 1990년 3당합당 이후 잠시 김대중을 중심으로 뭉쳤던 민주화진영은 1995년 새천년국민회의 창당에 이은 야당파괴공작으로 다시 한 번 결정적으로 분열되었다. 차라리 한나라당으로 가는 한이 있어도 김대중과는 더이상 같이 정치를 못하겠다.


그래서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은 여권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김종필과 손까지 잡았음에도 어렵게 겨우 이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 한나라당으로 가지 않은 민주화진영 가운데 호남을 중심으로 한 일부만이 김대중을 지지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야권이라는 날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김대중과 김대중당의 집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김대중과 새천년민주당이 이후 야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민주화진영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은 노무현의 존재 때문이었다.


노무현은 말하자면 김영삼의 3당합당 이후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던 비호남 민주화진영의 상징적 존재였다. 부산이 고향이었고, 김영삼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했으며, 김영삼의 3당합당에 반대하고 소수의 잔류파와 함께 외로운 길을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특히 지역주의를 깨보겠다며 부산에 출마해서 장렬히 산화해가던 모습은 여당도 김대중의 야당도 지지할 수 없었던 말 그대로 제 3의 길에 속한 많은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군사독재의 후신과는 손잡을 수 없다. 노무현의 대통령후보선출은 여전히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을 회의의 눈으로 보고 있던 나머지 비호남의 유권자들에게 하나의 계기로 다가왔다. 지금 민주화진영에서 구심점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여러 잘못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대중은 민주화의 거목이고, 김영삼이 군사독재의 후신과 손을 잡은 이후 유일하게 남은 구심점이었다.


그러고보면 벌써 그때부터 호남과 비호남의 분열조짐은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하기는 지금도 그때의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 호남의 야권지지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작년 안철수의 탈당과 분당시도에 대해 비판하며 이미 한 번 이야기했을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도 문재인은 호남 야권의 지지를 전적으로 받는데 실패하고 있었다. 사실은 천정배와 정동영이 주도했던 것이었는데 그 원죄가 문재인에게 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을 넘지 않는 것은 여전히 광주라고 하는 정체성이 그들 사이에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8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을 정의하는 기준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80년대 민주화진영에서 광주는 이미 내면화된 자신들의 정체성이었다. 그러므로 야당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호남에 있었다. 물론 비호남 모두가 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세가 그러니 당장은 따를 뿐이었다.


어차피 아무리 서로 싸워도 반한나라당, 반새누리당이라는 일차목표에는 서로 동의하고 있다. 탈권위주의, 탈지역주의의 대의에도 서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것을 상징하는 사건이 바로 광주다. 광주가 자신들을 묶어준다. 우리는 동지다. 같은 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 특히 비호남의 야권지지자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오만이었다. 2002년 이후 호남이 야권의 분열을 겪으며 받았던 상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었다. 원래 민주당은 자신들의 정당이었는데 외부인들이 멋대로 기어들어와 부수고 찢고 독차지해 버렸다. 박지원이 호남홀대론과 영남패권을 주장하고 나섰을 때 호남이 빠르게 반응했던 이유였다. 그것은 호남의 무의식이기도 했다. 안철수가 호남파 정치인들과 탈당해서 호남정치를 부르짖었을 때 호남이 호응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원래 자신들의 것이었던 야당을 이제 되찾겠다.


야권의 많은 지식인과 언론들이 굳이 호남홀대론은 없었다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칫 야권이 분열될 수 있다. 겨우 2002년 이후 봉합되어 함께하던 야권이 결정적으로 다시 분리될 수 있다. 호남 야권의 비호남 야권에 대한 진심이 드러날 경우 자칫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원래 야권이라지만 호남과 비호남은 달랐고, 함께한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으며, 원죄와도 같은 사건들이 과거 있었다. 정상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반새누리라는 한 가지 목적으로 어울릴 수 없는 두 집단이 그동안 한 배를 타고 있었다. 솔직해졌을 때 파열음은 커질 수밖에 없다.


호남의 제 1야당에 대한 지지는 희생이었다. 지금 비호남 야권이 보여주는 반발과 분노는 그들의 민낯이다. 광주에서 문재인은 호남이 아니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호남이 아닌데 어찌 광주의 한을 아는가. 바로 그들의 솔직한 본심이다. 광주는 광주만의 것이어야 한다. 호남은 호남만의 것이어야 한다. 호남만을 위한 정당과 정치인을 요구한다. 당연한 것이다. 단지 오랜 착각이 그것을 배신이라 여기고 있을 뿐.


짝사랑은 끝나야 한다. 지나치게 자신의 바람만을 호남에 강요하고 있었다. 호남에 민주화의 성지이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호남에 야권의 동지이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남과 비호남은 처음부터 별개였다. 원래부터 함께였다는 생각은 단지 착각에 불과했다. 저들이 노무현을 부정하는 이유다.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굳이 자신들로부터 분리하려 하는 이유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그때부터 야당은 호남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노무현을 비호남의 야권에 돌려준다. 호남출신의 참여정부 인사들이 앞장서서 참여정부를 부정한다.


어떻게되든 결국 야권의 결합은 이전과는 달라지게 될 것이다. 서로 신뢰할 수 없다. 서로의 민낯을 너무 봐 버렸다. 어차피 비호남은 호남을 차별하는 무리들에 불과하다. 호남 역시 다른 지역의 지역주의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들이 거부당했다. 자신들은 무시당하며 희생당해왔다. 감정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상수로 여겨야 할 것이다. 이제 더이상 호남은 제 1야당의 텃밭이 아니다. 국민의당이 제 1야당이 된다면 비로소 그때 호남은 제 1야당의 땅이 될 것이다.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김병관과 김빈을 주목하는 이유다. 다른 영입인사들은 어떻게든 정치를 할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진짜 깜짝 놀랄 정도로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이었다. 호남이라는 지역기반을 벗어났을 때 더민주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 제 1야당이 일관되게 추구해야 할 지향은 무엇인가. 어째서 젊은이들이 더민주를 더 열광적으로 지지하는가. 홀로서기는 힘들다.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