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비극이 누군가에게는 희극이다. 참을 수 없이 무섭고 두려운데 오히려 그것을 보고 웃는다. 생각해보면 코미디란 무척이나 무섭고 슬픈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해 본다. 무엇이 관객들을 웃게 만들까. 무엇이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을 보며 웃게끔 만들까. 박수경(예지원 분)와의 우연한 하룻밤을 기억하지 못하는 동안 이진상(김지석 분)에게도 그녀의 임신은 그저 한바탕 우스운 헤프닝일 뿐이었다.
당사자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 결혼을 앞두고 단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깨져 버렸다. 자신의 결혼을 깨버린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다. 차라리 그저 미워할 수만 있었다면. 마냥 원망만 할 수 있었더라면. 그런데도 아직 그 남자를 사랑한다. 도저히 말이 안되는데 도무지 그 남자를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차라리 그 남자가 밉고 원망스러운 것은 그런데도 자기를 자신만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거짓이라도 기만이라도 단지 사랑한다는 한 마디만 해주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어차피 상관없는 남이다.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다. 그저 웃고 만다. 당사자가 느꼈을 당혹을, 수치를, 상처를 그저 잠시의 웃음거리로 여기고 만다. 인간의 경계가 그어진다. 오해영(서현진 분)의 불행과 불운을 진심으로 같이 아파해주고 걱정해주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동료들과 그저 비웃음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전혀 타인들과. 사람의 관계란 이렇게 얄팍하다. 그래도 그냥오해영이 예쁜오해영(전혜빈 분)보다 한 가지 나은 것이 있었다. 오해영이 없는 곳에서 오해영을 위해 그녀를 비웃는 이들을 향해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그나마 함께 해 온 시간들의 가치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마지막까지 박도경(에릭 분)에게 거부당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아니 다 내던져 버렸다. 오로지 가장 간절한 한 가지만을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용기를 내었다. 잠시만이라도 사랑하자. 아무도 모르게 아주 잠깐이라도 사랑하고 헤어지자. 오해영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이런 순간에까지 그를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오해영의 말이 맞다. 박도경은 비겁하다. 앞으로 예정되어 있을 뿐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자신은 물론 오해영의 진심까지 애써 외면하려 한다. 언젠가 다가올 그 순간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 한다. 후회도, 미안함도, 책임도. 그렇게 자신은 홀가분할 수 있다. 편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다음은 박도경을 위한 시간이었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미안함도 미련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가. 이미 오해영이 박도경에게 말하고 있었다.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박도경을 사랑하는 자신의 진심을 외면한다면 더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더 오래 상처입고 고통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박도경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 만일 아직 다가오지 않은 먼 훗날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면 자신은 진짜 홀가분해질 수 있을까.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남기지 않은 채 마음편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거짓인 것을 안다. 기만인 것을 안다. 지금을 후회하는 것이다. 아직 오지도 않은 먼 훗날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충실하지 못했던 모든 순간들에 덕지덕지 미련이 달라붙어 마음을 옭아맨다. 혼자가 된 시간에 그는 먼 미래의 자신이 되어 본다.
뜻밖의 반전이다. 아니 오히려 옳다. 한 번에 수백억이나 되는 돈을 움직이는 자산가다. 아무리 사랑에 빠졌다고 그 큰 돈을 움직이는데 개인의 감정에 휘둘린다면 그만한 재산을 모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철저히 냉정하다. 그리고 타산적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유불리를 계산할 줄 안다. 한태진(이재윤 분)의 동업자인 친구의 신용할 수 없는 행동들로 인해 자본을 회수하는 것인데도 그 책임마저 전혀 엉뚱한 박도경에게 돌린다. 만에 하나 한태진이 자신을 원망하게 될 가능성마저 박도경의 부탁을 핑계삼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다. 이제는 자신의 결혼식을 엉망으로 만든 박도경을 응징하는데도 자신이 돌려 놓은 한태진의 원한을 이용한다. 마치 어린아이같다. 어려운 것도 두려운 것도 없다. 거칠 것도 거리낄 것도 없다. 자신이 이룬 부와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감이다. 무엇이든 자기가 뜻한대로 다 이룰 수 있다.
바쁘게 움직인다. 하필 라디오를 통해 오해영이 그동안 숨겨온 사연들이 세상에 다 알려졌다. 오해영과 박도경의 주위에서도 모두 알아 버렸다. 여전히 박도경은 오해영과의 사이에 아무것도 남기려 하지 않고, 오해영은 무엇이라도 남기려 그에게 매달린다. 끝끝내 거절당하고 오해영은 마치 하소연처럼 그에게 원망들을 토해낸다. 어머니의 결혼식자에서 비로소 박도경은 어머니를 향한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어머니를 사랑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그는 끝내 어머니를 향한 모욕과 경멸을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의 결혼식을 망쳐버리고 만다. 장회장의 분노가 한태진을 끌어들인다. 박도경이 누워서 먼 미래를 회상할 때 예지는 차곡차곡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의외의 반전을 기대하게 된다. 아니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이 박도경이 죽음을 앞두고 환각처럼 과거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혹시나 가져보았던 가능성 가운데 하나였다. 사고는 일어났을 것이다. 박도경이 예지한 그대로 사고로 인해 크게 다쳐서 피투성이가 되어 길위에 쓰러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란 지금부터 다가오게 될 앞으로의 모든 시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과연 그것이 마지막이었을까? 사고를 당해 크게 다쳐서 쓰러진 그때 그 장면이 원인이 되어 박도경은 지금 환각을 보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 다음이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가능성이다. 후회도 미련도 모드 지난 더 먼 미래에 또다른 감정으로 지난 시간의 감정들을 떠올리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또다시 멀어진다. 굳이 한참 멀리 돌아가려 한다. 솔직하지 못하다. 하기는 사람이 항상 자기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다면 로맨스라는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때로 오해도 하고 때로 다투기도 하면서 전혀 엉뚱한 길을 헤매며 모험도 해본다. 쉽지 않은 사랑이다. 너무 많은 것이 얽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결국 한 가닥 실에 엮여 있다. 그 끝을 이미 손에 쥐고 있다. 그래서 확인한다. 이것이 과연 정답인가. 미혹의 시간이다. 드라마이기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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