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혜인(김아중 분)과 같을 것이다. 당장 내 일이 아니니까. 당장 나에게 피해가 없으니까. 나에게도 지켜야 할 소중한 일상과 가족이 있으니까. 그나마 외면하기라도 하면 낫다. 최소한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고, 자신이 지금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안다. 최소한의 미안함이라도 갖는다. 그러나 아예 관심조차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연 묻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고통받고 심지어 죽어가고 있을 터였다. 제대로 진실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어째서 왜 고통받는지도 모른 채 오히려 건강을 위한다며 인체에 치명적인 가습기살균제를 무방비하게 사용하고 있을 것이었다. 자신에게는 그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사후에라도 막을 힘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들이 왜 그토록 간절하게 자신을 찾아와 호소하는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동안에도 다시 사람들은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과연 아무것도 몰랐다는 말이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몰라서 아무것도 못했다면 변명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정혜인도 충분히 그 대가를 치렀다. 사랑하는 남편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음에도 단 한 번도 그에 대해 의심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밝힐 기회가 바로 눈앞에 제발로 찾아왔음에도 그를 무심히 지나치고 있었다. 차라리 영원히 진실을 모르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 남편은 단지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뿐이다. 그저 운이 없어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 뿐이었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것이 진실이 된다. 그렇게 살아왔다. 아무일없이 어차피 남편은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었으므로 자신과 아들 현우만 무사히 살 수 있으면 되었다. 남편을 살해한 남편의 가족들과 굳이 위험을 부릅써가며 부딪힐 일도 없었다. 처음 정혜인이 가습기살균제의 진실에 대해 외면하려 했던 이유 그대로였다. 진실을 아는 것이 때로 형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진실을 알린 것이다. 남편의 죽은 이유에 대해 알게 한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어떤 잘못들을 저질러왔는가. 자신의 잘못된 선택들의 결과가 과연 무엇인가. 사실 지금 정혜인이 남편의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는가조차 모호하다. 누가 자신의 남편을 죽였는가를 알았다. 누가 남편의 죽음을 사주했는가를 알았다. 하지만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과 함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들하고만 무사히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산소통에 의지해 겨우 호흡을 이어가는 환자의 간절한 호소를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도 오로지 아들과 자신에 대한 걱정 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와 달리 지금은 정혜인 또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일없이 전처럼 그렇게 남은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
사실 시청자들 보고 기분나쁘라고 아예 대놓고 만든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보고 나면 기분이 나빠져야 한다. 정혜인은 곧 시청자 자신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대부분의 대중 자신들의 모습이다. 언제나 그랬다. 일제강점기에도, 군사독재정권 아래서도, 심지어 북한군이 쳐들어와 마을을 점령하면 그때도 북한군의 지시를 묵묵히 따르고 있었다. 싸우는 것은 항상 소수였다. 저항하는 것은 그를 거부할 수 있었던 아주 적은 수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손가락질했다. 자식들더러 저런 사람들처럼 되지 말라고. 침묵하고, 외면하고, 그저 현실에 안주해 살라고. 과연 아들 현우가 가습기살균제의 피해자가 되었어도 정혜인은 그처럼 냉정할 수 있었을까?
과연 정혜인이 남편이 남긴 메모리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어차피 대중 역시 항상 비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계기가 주어지고 스스로 확신만 가지게 된다면 대중 역시 저항의 주체가 되여 역사의 전면에 나서기도 한다. 역사적 사건이라는 자체가 그만큼 흔한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중요한 역사적 고비에서 그같은 대중의 자각과 각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었다. 물론 정혜인은 개인이다. 그녀를 움직이는 것은 보편의 정의가 아닌 개인의 인정이다. 가족을 위해 남편을 강하게 말렸던 7년 전처럼 남편과의 관계가 비로소 그녀를 움직인다.
여전히 반성따위 없다. 사람의 목숨이란 수단이다. 인간이란 원래 자본으로 계량할 수 있는 이익의 수단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이 병들어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음에도 기업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감추고 심지어 사람마저 죽인다. 경찰이 그 충실한 손발이 되고 언론은 그들을 위한 입이 되어준다. 그들이 바라는 진실만을 알리며 대중을 이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다. 자신들도, 경찰이나 언론도, 대중 역시 결국 진실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잠시 침묵하고 지켜본다면 사실은 다시 진실을 비켜 대중들에 자리잡게 될 것이다.
소름끼치는 인연이다. 나수현이 과거 한 번 정혜인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자신의 형과 정혜인의 남편 함태영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가지고서. 귀찮았다. 성가셨다. 혐오스럽고 무서웠다. 진실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이다. 비로소 깨닫는다. 그때 자신이 무심히 지나쳐버린 것에 대해서. 그나마 개인이니 반성도 할 수 있다. 대중은 반성따위 없다. 어차피 내 일도 아니다.
어째서 하필 '원티드'였는가. 어째서 하필 리얼리티쇼였는가. 영화 '트루먼쇼'와 반대다. 드라마는 바로 드라마를 보고 있는 대중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중의 무관심으로 인해 묻히고 마는 수많은 진실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동안 계속 방치되어야 할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현우를 구하고서도 정혜인은 무심했다. 씁쓸한 현실이다. 인간의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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