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이스 - 최악의 절단마공, 112신고센터인 이유

까칠부 2017. 1. 16. 03:29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감독, 성격 무지 나쁘다. 내일도 아니다. 무려 일주일뒤다. 다음주 토요일이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안달나게 해놓고. 이게 차마 사람이 할 짓인가.


112신고센터인 이유가 있었다. 사람의 지각에서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시각이다. 귀로 듣고서도 굳이 고개를 돌려 눈으로 확인한다. 굳이 냄새가 나는 곳으로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냄새의 정체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 눈은 인간이 외부의 정보를 획득하는 최후의 감각기관이다.


그런 눈이 가려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단지 소리만 들리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역설이 나온다. 눈만큼은 아니지만 그 다음으로 사람이 의지하는 기관이 바로 청각이다. 단지 귀로 듣고 소리만으로 많은 것들을 인지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시각이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무엇보다 그것을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때로 불안이 되고 두려움이 된다. 과연 내가 듣고 판단한 그것이 사실일까.


드라마가 보여주는 기대이상의 긴박감이 가지는 정체다. 그 중심에 주인공 강권주(이하나 분)가 있다. 강권주는 드라마의 귀다. 시청자의 귀이기도 하다. 무진혁(장혁 분)은 눈의 역할을 맡는다. 강권주가 귀로 들은 것을 직접 달려가 눈으로 확인한다. 마치 사람의 눈과 귀가 멀리 떨어져 따로 움직이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시청자는 매우 그런 눈과 귀를 가진 주인공인 셈이다. 눈으로 사실을 확인하기까지 - 설사 드라마를 통해 충분히 실제의 상황이 보여지고 있음에도 강권주와 무진혁이라는 귀와 눈을 갖게 된 시청자는 암흑이 주는 불안과 두려움에 짓눌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과연 지금 귀로 들은 것이 사실일까. 지금 귀로 듣고 있는 이 소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디에서 나는 소리이고 무슨 소리이며 지금의 상황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대부분 참혹한 범죄현장이다. 112신고센터란 그런 곳이다. 대부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사건들일 테지만 오로지 전화에만 의지해 소리로만 경찰의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도 적지 않은 것이다. 어디도 도망칠수도 없고, 그나마 겨우 숨어서 전화만 걸 수 있다. 그 숨은 곳을 범인이 찾으려 한다. 시간의 제약까지 가해진다. 과연 시간 안에 강권주와 그녀의 수사팀은 신고한 사람을 찾아내고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만큼 낯설었다. 경찰의 부조리한 모습만이 들어왔다. 강권주의 동떨어진 행동들만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지금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는 긴박감음 사실이다.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드라마의 동선에 자신의 심장소리마저 맞추고 있었다. 그곳은 어디일까. 문이 열리기까지 알 수 없다. 확인하고 문을 열고 들어서기까지 그곳인지 알 수 없다. 또 하나 두려움이다. 어디인지 모른다. 어둠속에 눈을 가린 채 소리에 의지해 미로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인간은 관성의 동물이다. 아니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그렇다. 멈춰 있는 것은 계속 멈춰있으려 하고 움직이는 것은 계속해서 움직이려 한다. 지금의 상태에서 쉽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어느새 자신의 슬픔에 취해 있었다. 자신의 비극에 도취되어 있었다. 이제 누군가 자신이 더이상 불쌍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견디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비웃고 비아냥거리기를 바란다. 자신은 피해자다. 자신은 참혹한 범죄의 불행한 피해자다. 아마 무진혁이 아내의 죽음에 대한 또다른 가능성을 쫓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넘어 아예 거부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당장 눈앞에 또다른 가능성이 나타났음에도 그녀를 저주하고 증오함으로써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 자위한다.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다. 가까운 어딘가에 아동학대가 저질러지고 있었다. 평소에 무척이나 착하고 성실하게만 보이는 여자였다. 그에 비하면 다른 어느 엄마는 아이를 학대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마치 누구보다 예민하게 소리를 듣고 분석할 수 있는 강권주의 능력을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강권주의 의혹제기를 새로운 가능성이 아닌 또다른 의혹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처럼. 어느새 그런 의혹들은 사실처럼 이야기된다. 범인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녀의 행동에는 다른 의도가 숨었을 것이다.


한 번 선입견이 생기면 바뀌기도 쉽지 않다. 한 번 생긴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크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요하다.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한 번 의심을 품자 무진혁의 해명에도 자기 감정만을 밀어붙이는 강력계장 장경학(이해영 분)처럼. 아마 무진혁 자신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억울함이야 말로 자신으로 인해 강권주가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냥 불편하다. 그냥 성가시기만 하다. 진실이란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대상일 뿐이다. 이제와서 새삼 새로운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이외의 진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그저 미워하고 원망하면 끝나는 일을. 언젠가 잡아죽이겠다 다짐하며 그런 자신에 도취되어 지내면 되는 것을. 얼마나 힘든가. 언제나 가능할 줄 알고 그런 일에 뛰어드는가. 강권주만 사라지면. 강권주만 보이지 않으면. 그러면서도 어린아이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강권주에 의지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믿지 않은 척 했을 뿐일지 모른다.


선입견과의 싸움이다. 관성과의 싸움이다. 그리고 청각이란 한계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소리 너머에 소리만으로 알 수 없는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의 청각이 닿지 않는 그곳에 숨은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 패널티로 이만한 것이 없다. 재미있다. 정말 짜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