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낭만닥더 김사부 - 낭만의 의미,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갈 때

까칠부 2017. 1. 17. 03:32

어쩐지 마지막회를 촬영하던 도중 엔딩이 바뀐 듯한 느낌이 든다. 굳이 연회장에서 도윤완(최진호 분)이 달려들어 김사부(한석규 분)와 몸싸움을 벌일 이유도 없었고, 더구나 얼음조각이 넘어지며 피까지 흘려야 할 필연 또한 없어 보였다. 실제와 달리 픽션에 그냥은 없다. 작가의 의식에 의해 창조된 상상이기에 아무리 사소한 장면이라 할지라도 어떤 의도라는 것이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추측컨데 혹시나 연회장에서 김사부가 도윤완에게 했던 꽤나 날카로웠던 대사들이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귀찮아서. 성가셔서. 내 일이 아니니까. 나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바빴으니까. 그래서 방관했다. 그래서 방치했다. 들어도 못들은 척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참고 있지 않겠다. 마치 현시국에 그동안 침묵하며 방관자로만 있었던 다수의 대중을 꾸짖는 듯한 대사들이었다. 대중이 외면하며 때로 동조했던 부정과 비리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래서 부담이 된다. 여기서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리든 너무나 민감한 시국과 여론으로 인해 자칫 잘나가다가 마지막에 재를 뿌릴 수 있다. 이미 가진 자의 조심이랄까.


단지 제목의 '낭만'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드라마를 끝내려 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리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러고보면 닮았다. 괜찮다. 아무 문제 없다. 에두르는 변명이 아니다. 괜히 쥐어짠 위로도 아니다. 그냥 사실이다. 이미 실제로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할 당연한 사실이다. 당연한 것은 당연하게. 당연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 않게 울퉁불퉁 굴곡진 위로 올곧게 그려진 직선처럼. 후련한 느낌을 준다. 막힌 것이 뚫린 듯 속시원한 기분마저 느낀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을 알기에 감탄하면서도 그 안에 속하기를 거부한다. 방관자로 남는다. 그러니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좋다.


왜 그리 세상을 어렵게 살아가는가. 더 쉽고 편한 길도 분명 있지 않은가. 그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까. 의사라면 그래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니까. 쉽게 듣지 못할 말을 너무나 쉽게 하고 있다. 드라마가 가진 미덕이다.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평소 시시덕거리며 사랑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원망하고 즐겁게 놀다가도 환자 앞에 섰을 때는 다시 의사로 돌아온다. 환자가 도착할 것이라는 말에 바로 술자리를 끝내고 의사가 되어 전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의사였으니까. 단 하나의 결론이다. 의사니까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한다. 김사부가 끝내 도윤완의 방식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와 싸우고자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했다. 의사로서 그래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한가하고 지지부진한 이후의 내용들이 이해되고 있었다. 결론없는 사랑이야기였다. 대수롭지 않은 개인의 사정이었다. 그냥 평소의 왁자한 일상들이었다. 지나치는 사건사고들이었다. 사랑도 하며 싸우기도 하며 미워하기도 하면서 그들은 환자 앞에서 다시 의사로 돌아온다. 환자 앞에서 다시 의사로서 살아간다. 낭만이란 그런 것이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원래 자기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는 것. 쉽다면 쉽고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결코 쉽거나 당연하지 않은 원래의 선택들을 하는 것. 그들은 의사이고 이곳은 병원이었다. 나머지는 아직 진행형이다.


원래 2회로 마무리하려던 것을 급하게 한 회로 압축해서 끝낸 듯한 의심까지 든다. 중간에 생략된 이야기 대신 애팔로그로 김사부 개인의 이야기를 한다. 나머지는 그냥 진행형으로 남겨놓고 전혀 상관없는 김사부 개인의 이야기를 완결시킨다. 그야말로 대단원에 걸맞는 무게감이며 존재감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김사부 앞에 또다른 일상이 사건처럼 밀어닥친다. 김혜수가 드라마안으로 들어와 김사부와 마주한 순간 그곳만 전혀 다른 바람이 부는 듯하다.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대미를 장식하게 될까. 


어렵지 않았다.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얼핏 뻔할 수 있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를 배우와 캐릭터가 가진 매력으로 채우고 있었다. 인간의 나약함과 강인함, 이기와 이타, 욕망과 사명, 타산과 양심,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의 혼란과 갈등등을 통해서. 결국 드라마란 인간의 이야기다. 그곳이 어디이든. 그들이 누구이든. 마치 낭만처럼. 사람이 사는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