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피고인 - 어설픈 설정의 구멍에서 막히다...

까칠부 2017. 1. 24. 02:37

아무리 쌍둥이라도 태어날 때 유전자가 같은 것이지 완전히 같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성장과정에서 누적된 차이가 그냥 한 눈에도 다른 사람이구나 여기도록 만들 정도가 된다. 그런데 단지 외모만 같다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려 한다면 들키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다. 최소한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보이게 될 두 사람의 차이를 덮어주고 가려줄 조력자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고작 말 한 마디로 자기가 죽였을지도 모르는 형의 아내를 설득한다는 것부터가 너무 무리수였다. 뉴스를 통해 뻔히 눈앞에 있는 자신이 호텔에서 추락해 중태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고, 정작 자신은 형의 모습으로 그녀 앞에 서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추락한 사람은 동생이 아닌 형이며, 형을 흉내낸 동생에게 그 혐의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단지 말 한 마디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협력을 이끌어낸다. 그런데 과연 그만큼 자발적이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협조라는 것이 가능할까.


차라리 동생 차민호가 형 차선호를 호텔에서 떨어뜨리고 당황해서 주위에 연락을 하니 - 혹은 차선호와 함께 호텔에 왔다가 그 사실을 알고서 차선호의 부재를 감추기 위해 주위에서 오히려 먼저 적극적으로 차민호로 하여금 차선호의 대역이 될 것을 요구한다. 차민호 개인의 악의가 아닌 유력한 재벌이라는 집단의 욕망과 음모가 한 개인을 막다른 곳까지 몰아세운다. 물론 결국 차민호가 가진 악의가 송곳처럼 비집고 나오며 사건은 더 크고 잔혹해진 스케일을 보여주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단지 차민호 개인의 악의에만 집중하여 악마화하려는 시도가 드라마의 내적 개연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집중할 수 없었다. 하긴 처음부터 벌써 방영중인 '맨몸의 소방관'을 비롯 누명쓴 피의자가 공권력에 쫓기며 진실을 찾아나서는 이른바 '도망자'류의 작품이 너무 흔하기는 했었다. 그래서 그다지 끌리지 않았었다. 다행인 것은 이제는 굳이 끌리지 않는데도 끝까지 보면서 리뷰를 써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 이건 참 나랑은 맞지 않는다. 시작은 흥미로웠는데 이후의 내용이 너무 허술하다.


지성의 연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엄기준은 조금 넘친다 싶을 정도로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깜막 넘어갈 뻔 했었다. 무언가 이상한데 어쩐지 엄기준의 연기를 보고 있으니 그게 맞는 것 같다. 대단한 두 배우를 보면서도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는 것은 드라마 아니면 내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갑작스런 추위로 몸 여기저기 안좋기도 하고. 아무튼. 실망조차 없었다. 아무 느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