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유쾌하다. 코미디의 본질이다. 심각한 것도 대수롭지 않게 만든다.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이기에 오히려 더 가볍고 하찮게 바꿔 버린다. 세상을 비웃고 인간의 모순을 비웃는다. 당장 자신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들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그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웃기라도 해야 이 지랄같은 세상을 단 하루라도 더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 것 아닌가. 이길 수 없으면 비웃기라도 한다.
죽을 것처럼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하지만 그 타이밍이 문제다. 아무 상처없이 멀쩡한 것 같은데 갑자기 한꺼번에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빨간 피가 빨간 김칫국물이 되어 버린다. 하필 상황부터 일인시위를 하던 여성을 향해 갑자기 차가 달려드는 것을 얼음에 미끄러져 뜻하지 않게 우연으로 김성룡(남궁민 분)이 달려들어 구하고 난 뒤다. 거대기업 TQ의 경영권을 둘러싼 음모와 관계되어 있다. 오랫동안 이뤄져 온 조직적인 회계부정과도 관련되어 있다. 억울하게 진실을 밝히려던 경리과장이 횡령의 누명까지 쓰고 식물인간이 되었다. 일인시위를 하던 그 부인을 어떻게든 치우라 회장이 직접 지시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같은 어둡고 더러운 이야기들마저 모두 한바탕 웃음과 함께 지워 버린다. 마치 화내면 지는 것이기라도 한 듯.
원래 김성룡이 적당히 해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해먹는, 이른바 '삥땅'을 인생의 신조로 삼은 이유부터가 그렇다. 어쩌면 그와 반대편에 서 있는 이사 서율(준호 분) 역시 비슷한 경우일지 모르겠다. 어차피 썩어빠진 세상이다. 정직하고 성실하면 손해보고, 정의롭고 올바르면 오히려 배척당한다. 부정한 것이 능력이 되고 타락이 지혜가 되어 버린다. 미친 척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세상이 미쳤다면 바보가 되어 같이 미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처럼 그들보다 더 지독하고 악랄하게 그들의 위에서 굽어보며 비웃는 것이다. 대규모의 조직적인 회계부정에 맞서는 역할을 하필 삥땅으로 돈이나 빼돌리는 김성룡에게 맡긴 이유였다. 김성룡과 같은 경제사범들을 수사해서 기소해야 할 검사 서율이 그 반대편에서 부정과 불법을 옹호한다. 완벽한 역설이다.
힘이 없는 정의는 단지 몽상에 불과하다. 용기조차 없다면 그겉은 꿈조차 될 수 없다. 적당히 길들여진다. 적당히 익숙해진다. 족쇄에 매이듯 그렇게 불의하고 부정한 현실에 적응해 간다. 오히려 윤하경(남상미 분)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자신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스스로 꺾이고 굽혀가는 것을 느끼고 있기에 그렇게라도 반발해야 한다. 말은 그렇게해도 결국 거부하지 못하고 굴복한 채 따를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그렇게라도 아니라 억지라도 써봐야 한다. 정작 대표이사 장유선(이일화 분)의 제안에도 저들의 힘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거절을 위한 고민부터 하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현실이다. 일찌감치 적응한 자와 아예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혹은 순응하는자, 그리고 아닌 척 뒤따르는 자들과 같이. 아예 아무것도 모른 척 가담도 않지만 거부도 않으며 그 책임만을 면하려는 이들도 있다.
악이 커지면 정의가 된다. 너무 거대한 악은 그 자체로 또하나의 정의가 된다. TQ라는 대기업에 있어 회장 박현도(박영규 분)는 곧 정의다. 박현도의 말이 곧 TQ의 법이다. TQ의 정체이고 TQ의 질서다. 그것을 거스른다면 악이 되여 배제되거나 혹은 도태된다. 내부고발자의 운명이란 대개 그렇다. 차라리 악이 된다. 큰 악에 물들지 않는 작은 악이 된다. 선하기에 오히려 악에 물들고 그와 한 편이 된다. 굴복하여 그 안에 녹아든다. 아웃사이더다. 경계밖의 존재다. 그러면서도 언뜻 보이는 순수하고 선량한, 그래서 슬픈 일면이 또한 묘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웃게 만든다. 어차피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얼핏 유치할 수 있는 장면이나 대사들을 절묘한 연출로 넘치도록 맛깔나게 살려낸다. 작가의 역량도 역량이지만 그것을 그 이상으로 살려낸 것은 감독과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이다. 자칫 들뜰 수 있는 과장된 캐릭터 연기마저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안정감있게 드라마에 안착시킨다. 전통적인 슬랩스틱 코미디의 그것처럼 정교하게 계산된 상황과 대사들이 퍼즐의 조각처럼 야무지게 완성되어 간다. 그야말로 작품이다. 무엇 하나 빼거나 덜 필요 없이 완전한 구조로서 완성되어 있다.
웃으면서 감탄한다. 가끔 진지해지다가도 끝내 웃음을 터뜨리며 그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수밖에 없다. 철저히 작가와 제작진에 놀아난다. 자신이 단지 시청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어떤 사건들이 벌어질까. 그리고 인물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이다. 내일을 기대하며 궁금해한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 웃으며 만족한다. 최고다. 말이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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