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봤구나. 조직도 와해되고 완전 개털이 되고 나니 천하의 남상태(김뢰하 분)도 이렇게 허술해진다. 원래 그냥 도망칠 계획이었고 단지 경찰이 앞서 자신의 행방을 추적할 것을 생각지 못해 당황한 나머지 중요한 증거들까지 놓아두고 빠져나와야만 했다. 그래서 죽을 것을 알면서도 모태구(김재욱 분)를 찾아갔고 모태구의 협박 혹은 제안에 의해 이제는 무진혁(장혁 분)을 죽이려 한다.
단순하지만 아주 효율적인 트릭이다. 워낙 은영동 살인사건이 드라마의 주제이고 주스토리의 전개가 더 중요하기에 매회 에피소드에 할애할 수 있는 분량에 한계가 있다. 정해진 분량 안에 적절한 긴장과 반전을 주기 위해서는 분량 안에서 완결할 수 있을 정도의 단순하면서도 사람들이 미처 생각할 수 없는 - 혹은 생각이 미치지 않을 트릭이 필요하다. 카메라도 아주 효과적으로 썼다. 낙원복지원과 낙원정신병원을 신고센터와 교차편집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세 공간이 서로 별개인 양 여기게 만든다. 하지만 사실은 낙원정신병원의 구급차는 복지원을 나오자 마자 마로 샛길을 따라 복지원의 후문으로 도착한 것이었다.
약간은 오류도 있다. 분명 구급차는 낙원복지원을 출발해서 한참을 달리다가 어느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딱 무진혁이 심대식(백성현 분)과 함께 구급차를 쫓아 들어간 낙원정신병원 지하주차장과 비슷한 구조의 주차장이었다. 강권주(장하나 분)도 그리 말하고 있었다. 지금 차가 지하로 들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무진혁이 구급차를 발견한 것은 낙원복지원의 노천주차장이었다. 그냥 지하주차장이 있는 복지원 세트를 구하지 못한 탓이라 여기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냥 이런 트릭이 있었다. 작가의 상상력을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데 따른 부조화다.
단순히 장기만 적출해서 판 것이 아니었다. 그 전에 이미 부작용이 알려지지 않은, 혹은 알려졌지만 인체에서 안정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는 위험한 의약품의 인체실험 대상으로 노숙자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어차피 실패자들이다. 경쟁에서 지고 낙오한 패배자들이다.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무능력자들이다. 그런데 자기가 그들의 신체를 이용해서 무슨 짓을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말이다. 어차피 경찰도 정부도 그들을 버린지 오래다.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은지 오래다. 어디 가서 죽든 살든 그저 눈에 거슬리지만 않으면 그것으로 괜찮은 것이다. 어쩌면 신랄한 비판이기도 하다. 어째서 한국사회는 경쟁에서 패배한 실패자, 낙오자들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는가. 그들을 위해 배려하는 것을 낭비라 여기는가.
그래도 경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부이기 때문이다. 공공의 목적을 위해 비용을 아끼지 않아도 되는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 사실을 안 것이 일개 시민이었다면 어땠을까? 단지 평범한 시민이 노숙자들이 나라경제를 위해서, 혹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훌륭히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를 막기 위해 자신이 치러야 할 비용과 수고까지 알았다면. 결국 사회의 실패자 낙오자들을 구하는 것은 개인의 인정이 아닌 공적인 책임이고 의무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분노나 복수심이 아닌 엄격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어야 하는 것이다. 무진혁의 폭력은 단지 자신의 무관심과 안일함에 대한 반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은 여전히 정의롭고 도덕적이다. 저들과 다른 인간이다.
뜻밖의 사실이 밝혀진다. 복지원과 관련해서 사람을 찾아다니던 허지혜는 무진혁의 아내였다. 첫 회 등장하고 더이상 나오지 않은데다 첫회에서도 이름은 나왔는지 안나왔는지 기억이 아예 없다. 낙원복지원과 교차되는 모태구의 존재가 그와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과연 허지혜가 찾아다니던 사람은 누구이고, 어떤 관계였으며, 그가 마지막에 남긴 쪽지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는가. 무엇보다 그 사람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지금 모태구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에 운전사로 취직해 있었다.
이제 그만 끝이 다가 오는 모양이다. 하필 같은 시간 무진혁과 강권주 두 사람에게 각각 남상태와 모태구에게서 연락이 온다. 마치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아는 양 그들을 불러내려 한다. 모든 진실은 남상태와 모태구가 알고 있다. 특히 모태구가 무진혁과 강권주가 알고자 하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이 없으니 마무리라도 잘해야 한다. 어떻게 그들은 모든 진실을 밝히고 단죄될 것인가.
군데군데 허술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때때로 그런 사소한 문제들은 그냥 신경쓰지 않고 무시하고 넘어간다. 항상 작가가 요구하는대로 현장이 따라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장기간의 기획과 촬영기간이 보장되는 영화가 아니다. 물론 그마저도 감안해 대본을 썼어야 했을 것이다. 그보다는 역시 확실한 반전이다. 워낙 모태구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나 범인이라고 아예 광고하고 다녔던 탓에.
거의 끝나간다. 거의 대부분의 사실들이 밝혀지고 모태구와 관련된 단서마저 경찰이 확보하고 있다. 장경학(이해영 분)의 문제도 얼추 해결되는 듯 보이는 것으로 보아 한 사람 더 죽을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결국 마무리를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진짜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기대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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