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 엇갈리는 진심과 시련, 예정하지 않은 운명과 만나기 위해

까칠부 2017. 3. 19. 04:27

사람이 자기의 감정을 정확히 알고 또 마음대로 다스릴 수도 있었다면 세상은 참 재미없었을 것이다. 자기의 미래를 알고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읽을 수 있고 그래서 아무런 오해도 실수도 잘못도 갈등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람의 관계란 무척이나 심심해졌을 것이다. 모르기에 욕망하고 가질 수 없기에 방황하며 도저히 자신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기에 운명이라 말한다.


인국두(지수 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국두가 자신 도봉순(박보영 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차마 털어놓지도 못했다. 그나마 도봉순은 낫다. 인국두는 지금에서야 도봉순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된다. 혹시라도 지금의 관계마저 잘못되지는 않을까. 친구로나마 더이상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은 같지만 서로의 전혀 다른 사정이 그들을 자꾸 엇갈리게 만든다. 그리고 새로운 운명이 도봉순에게 다가가도록 허용한다.


하필 게이라고 오해한 때문이었다. 여자가 아닌 남자를 좋아한다 잘못 알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그러니 안민혁(박형식 분)과 함께 있어도 아무일도 없을 것이다. 아무 경계심없이 같은 공간에서 밀착해 있으면서도 전혀 자기에게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너무 마음을 놓아 버렸다. 경계심없이 안민혁을 대하는 사이 너무 깊숙이 도봉순 안까지 들어와 버렸다. 깨닫는 게 늦었을 뿐이다. 미운정도 정이라고 더구나 꽤 매력적인 남자다. 돈도 많고, 능력도 있고, 더구나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며 대하가기도 편하다. 기꺼아 자기가 좋아하는 도봉순을 위해서 인국두의 진심을 전할 만큼 진실하기까지 하다. 인국두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드라마의 왕도다. 한 눈에도 멋지고 매력적인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한 공간에 있으면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박형식은 잘생겼고 박보영은 사랑스럽다. 도봉기(안우연 분)와 조희지(설인아 분) 역시 뒤지지 않는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사람의 감정이란 예정한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좋아해서는 안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을 외면하게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친구이고 친구의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도봉순의 마음이 인국두에게서 안민혁으로 옮겨가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감정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감정만을 쫓으며 살 수 없는 인간의 사정이다.


범인의 수법이 어느 극단에서 상연중인 연극의 내용과 연관이 있다. 주연배우의 신발을 도둑맞고 진범이 실제 연극을 공연중인 극장의 객석에 앉은 모습이 보였다. 일정한 조건을 가진 여성들을 납치한다. 납치하여 감금한 뒤 폭력적으로 다이어트를 강요한다. 하필 마른 여자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도봉순의 힘이 모성이라면 범인이 혼자사는 젊고 마른 여성들만 납치하는 것도 그와 연관되어 있지는 않을까. 범인에게 여성이란 단지 자신의 망상을 충족하기 위한 인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연쇄납치의 범인으로부터도 마른 몸매이기를 강요당하며 범죄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스스로 억압받고 구속되기를 바란다. 차도르가 단순히 여성에 대한 억압만은 아님을 여성이 처한 현실이 설명해준다. 그렇게라도 철저히 자신을 가리고 누군가의 보호를 받거나 아니면 스스로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져야만 한다. 동네의 모든 젊은 여자들이 종종걸음으로 두려움에 떨 때 오로지 도봉순만이 자유롭게 당당히 밤골목을 돌아다닌다. 그런 도봉순마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이들이 있다. 혹시라도 도봉순이 여자가 아닌 남자였어도 - 그것도 키도 덩치도 훨씬 큰 거구였어도 깡패들은 시비를 걸었을까.


가만히 있으려 해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만큼 한없이 가벼워보이는 때문이다. 믿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인국두와 안민혁의 보이지 않는 경쟁도 그래서 끝이 얼추 보이고 있다. 한 사람은 진실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였으며 한 사람은 끝까지 거무하며 외면하고 있었다. 더이상 힘을 부끄럽게 여기지 마라.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지 마라. 비로소 자신과 모두를 위해 힘을 쓸 결심을 하게 된다.


안민혁에 대한 협박이라는 하나의 사건은 대충 종결되었다. 복잡할 것도 없었다. 배후는 결국 가족 안에 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진실이다.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다. 그보다 두 남자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여자의 진심이다. 서로 엇갈리는 감정들이 보인다. 웃을 수 있다. 한 편으로 진지하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