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조지 웰즈의 소설 '타임머신'은 어쩌면 대부분의 인간이 가지는 미래에 대한 근거없는 낙관을 송두리째 부정한 최초의 소설일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 오늘이 어제보다 나았듯 모레는 내일보다 또 더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내일이란 오늘까지 겪어보지 못한 또다른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 시간인지 모른다. 모든 인간은 죽고 모든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다. 행운도 행복도 영원할 수 없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만일 오늘 갑자기 어떤 계기가 있어서 10년 뒤의 시간으로 건너뛴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이 바뀌고 달라진 낯선 시간으로 보내진다. 다른 것들은 상관없다. 주변의 것들이야 아무리 어떻게 바뀌든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적응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80년대에는 아예 있지도 않던 핸드폰이 피처폰을 지나 스마트폰으로 발전했어도 자꾸 보게 되고 쓰다 보면 어떻게든 익숙하게 쓸 수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바로 오늘도 만났던 소중한 누군가의 10년 뒤 너무나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가 없는 사이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을지 모른다.
꽤 오래전 일이다. 어찌어찌 스쳐지난 인연이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우연처럼 지하철에서 노숙자로 그 인연과 지나치게 되었었다. 나를 몰라봤다. 아니 몰라 본 척 한 것인지 몰랐다. 나 역시 아는 체 할 자신이 없었다. 시간은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는다. 사람의 운명도 고작 몇 분 사이에도 터무니없이 바뀌고 달라지고는 한다. 그런데 10년 뒤다. 벌써 30년이나 지난 뒤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살아있어도 그새 30살이나 더 먹은 뒤일 것이다. 3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그래서 자신이 없는 사이 얼마나 많은 힘든 일들을 겪어야 했을까? 그러나 그나마도 벌써 죽어 만날 수 없게 되었다면 그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바로 어제의 이야기인데 벌써 20년 전 먼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린다. 내가 없는 곳에서 그렇게 벌써 시간은 흘러가 있다.
만일 누군가의 의도나 의지가 이와 같은 이적을 일으킨 것이라면 참으로 악취미라 아니할 수 없다. 끔찍한 연쇄살인이야 범인을 잡게 되겠지만 그 사이 남편도 없이 혼자서 그 긴 시간을 견뎌야 했던 아내는 어쩌려는가. 아내가 자기의 아이를 낳은 것도 모르고 죽은지 20년이나 지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어찌해야 하는가. 더구나 그 사이에 아이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버지도 없이 어머니까지 죽은 아이는 기억마저 잊은 채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박광호(최진혁 분)의 말처럼 정호영이 사람을 몇이나 죽이든 그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 말이다. 자기와 자기의 가족이 이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남들이야 죽든 말든. 하지만 다시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려 해도 아직까지는 정호영을 잡아야 할 것만 같다.
그러고보면 그래서 한 편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들이 인기가 있다. 마치 죽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사후세계를 찾아가듯 아직 죽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 소중한 사람과 만난다. 아직 바뀌기 전의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그 사람과 만나게 된다. 미래로 간다. 아직 오지 않을 미지의 시간으로 떠난다. 더 좋아진 것도 있고 나빠진 것도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미래의 시간이란 때로 저주일 수 있다. 감히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불행한 미래가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릴지 모른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수십년도 더 된 일을 물으며 자기가 남편이라도 되는 양 소란을 피우고 있음에도 무심하기만 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냥 넘어가자. 그런 것까지 일일이 파고들다가는 어떤 드라마도 제대로 재미있게 볼 수 없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 현재가 과거로 이어진다. 굳이 복잡하게 이야기를 비틀거나 꼴 필요가 없다. 3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어 만나게 된 사람들과의 인연들만으로도 피로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다. 30년 전 살인사건 피해자의 아들이었던 김선재(윤현민 분)와 만나 오해를 풀고 동료가 되었다. 아랫집 사는 신재이(이유영 분)와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또다른 인연으로 얽혀 있다. 자기가 건너뛴 시간만큼 자기가 없던 시간들의 기억이 압축되어 밀려든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정신없는데 다시 살인사건의 진범마저 찾아야 한다. 정해진 분량 안에서 어색함이나 아쉬움 없이 끝내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효율적인 배치가 필요하다. 다행히 연쇄살인이라는 자체가 다른 설정따위 필요없을 정도로 충분히 엽기적이고 잔인하다. 그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을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고 의미있다.
고리가 등장한다. 신재이에게 아내 신연수와의 딸 어린 신연호가 가지고 있던 호루라기가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정호영은 경찰조차 찾지 못하도록 철저히 행방을 감추고 있었다. 살인을 저지르고 시신을 처리하는 방식이 시간의 축과 어긋나 있다. 오히려 30년 전 연쇄살인의 방식이 2년 전 김선재에게 체포된 뒤 바뀐 방식과 닮아 있었다. 물론 정호영이 진짜 범인이라는 가정에서의 이야기다. 박광호가 터널에서 시간을 건너뛰었을 때 그를 습격한 범인의 정체도 그래서 의문이 남는다. 30년 전 고등학생이던 정호영이 과연 연쇄살인의 진짜 범인이었을까? 여기까지만으로도 남은 시간동안 다 풀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복잡하다.
비로소 한 팀이 된다. 박광호의 정체와 진실을 알고 그가 자신을 대하는 진심을 깨닫게 된다. 김선재와 박광호가 쫓고 있는 대상도 같다. 역시 얄궂다. 어쩌면 정호영이 달라진 방식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게 된 계기가 김선재가 무심코 건넨 한 마디였는지도 모른다. 정호영에게도 박광호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뒤틀려 있다면 이것은 더 큰 비극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 한국의 방송들은 매우 보수적인 편이다.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어찌되었거나 죽인 놈에게 모든 잘못이 있는 것이지 말 한 마디가 계기가 되었다고 책이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
진실에 다가간다. 오히려 진실에 다가갈수록 더 복잡하게 꼬이기만 한다. 별다른 트릭 없이 연쇄방화범을 잡는다. 쾌락방화범이었다. 신재이의 강의에서 스타킹을 사용한 교살이 쾌락살인임을 들려준다. 자연스럽게 신재이가 김선재를 찾는다. 같은 공간에 그들이 나타난다. 김선재와 박광호, 신재이가 있던 그 장소에 정호영이 서있는다. 또다시 살인이 일어난다. 박광호는 뒤늦게 아내의 죽음과 만난다. 시간이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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