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마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을 것이다. 김주만(안재홍)이 모두의 앞에서 백설희(송하윤 분)와의 관계를 털어놓다니. 그동안 그토록 악착같이 감춰오던 것이 무색하게 너무나 시원하게 후련하게 두 사람 사이를 모든 사람 앞에 밝히고 만다. 하긴 오래도 참았었다. 오늘만, 며칠만, 언제까지만, 하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던 두 사람이었을 것이다. 의심했던 내가 다 미안해진다.
사실 별 것 아니다. 파이트머니라고 해봐야 그것만으로 생활할 만큼 들어오지 않는 것을 안다. 방송국 아나운서를 꿈꾸었지 그저그런 지방행사의 MC를 꿈꾸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에 꿈이 있으니까. 꿈이란 얼마나 더 큰가가 아니다. 얼마나 더 가까운가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격투기의 꿈을 다시 일깨웠다. 어찌되었거나 마이크를 쥐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그들을 쥐락펴락 움직이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그런 식으로 제도권 밖에서 실력과 경력을 쌓고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었다. 지나치게 제도화된 사회의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그냥 그곳에 자기가 바라는 꿈이 있으니까. 자기가 꿈꾸던 삶이 있으니까. 무모할 수 있는 것도 젊음의 특권이다. 두려움없이 덤빌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사고를 쳐도 수습할 수 있다. 어지간히 크게 사고를 쳐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가 주어져 있다. 사고치니까 청춘이다. 맞는 말이다. 어느 순간 사고를 치게 되면 다시 원상복구하지 못할 걱정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만다. 사람이 두려워지고 세상이 두려워진다. 그보다는 자기가 선 지금 바로 여기 이곳 나와 서로만을 중요시한다.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처음으로 받은 파이트머니로 여기저기 후하게 인심도 쓰고, 한 번 또 좌절을 겪고 겨우 다시 손에 쥔 마이크로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가 바로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다. 김주만과 백설희는 고동만(박서준 분)과 최애라(김지원 분)를 위한 복선이었다. 그나마 술기운을 빌렸다. 바퀴벌레를 핑계로 삼았다. 무엇이 진심이었는가는 자신도 알지 못한다.
벌써 나는 이렇게 나이를 먹어 버렸는가. 세월은 무심하게 벌써 이렇게나 흘러 버렸는가. 진희경(황복희 역)의 역할을 어렴풋 짐작하라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황복희는 어쩌면 그들의 시간을 훨씬 전에 지나가 버린 시청자의 대신일지 모른다. 부럽고 질투나고 그렇지만 너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서툴고 그래서 실수도 저지르고 하지만 끝내는 올곧게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오롯이 걷고 있다.
누구에게나 한 번은 있었을 빛나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그리고 그 시간들을 지금 겪고 있을 청춘들을 응원하면서. 아무리 세상이 뭣같고 그래서 화나고 욕이 튀어나와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살아갈 이유라는 것이 있다. 지금을 견디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간절히 바라는 그 꿈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린다. 그 가족으로 또다시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 사람의 이야기다.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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