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나이먹는다는 게 원래 그런 것이다. 세계가 넓어지는 만큼 걱정도 많고 근심도 많아진다. 관계가 넓어지는 만큼 신경쓰고 고려해야 할 대상들도 늘어난다. 어릴 때는 그런 것 없다. 그저 눈치없이 좋고 생각없이 싫다. 그래서 아이들은 순수한데 한편으로 잔인하기도 하다.
김주만(안재홍 분)이 백설희(송하윤 분)에게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진짜 사랑이었을까? 어쩌면 의무감이 아니었을까? 지난 6년 동안 오로지 한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해 준 백설희이기에 자신이 그런 그녀를 배신해서는 안된다. 끝까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한 백설희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백설희에게 더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지난 6년의 사랑이 고작 김주만의 선택을 가로막는 족쇄로 전락해 버렸다. 사랑도 아닌 단지 구속에 의한 것이라면 이쯤에서 깔끔하게 끝내고 말자.
백설희를 떠나보내서가 아니었다. 더이상 백설희와 함께일 수 없어서도 아니었다. 아마 김주만 자신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새 백설희를 거추장스럽게 느끼기 시작한 자신을. 여전히 백설희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런 자신이 때로 답답하게 여겨진다. 더 자유롭고 싶다. 더 홀가분해지고 싶다. 그러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자기가 행복해서가 아니었다. 자기가 사랑하고 자기가 설레서 백설희의 곁에 남아있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 자신의 추악한 내면을 발견했을 때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김주만 자신이었을 것이다.
김광석이 부른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의 가사를 떠올린다. 그대로다. 사랑했기에 참았다. 아직 사랑하고 있기에 애써 감추며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이란 무한하지 않다. 오히려 더 사랑했기에 더 예민해지고 더 두려워진다. 사랑했던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을 견디기가 무척이나 힘들고 어렵다.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가버릴지 모른다는 가능성조차 너무나 아프고 괴롭기만 하다. 그런 시간들을 견디며 기다리고 있었다. 몇 번이나 김주만 모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백설희는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견뎌야만 했었다. 그 결과다.
너무 마음놓고 있었다. 설사 이미 결혼해서 부부가 되었다 할지라도 사소한 문제가 결국 두 사람의 사이를 영영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몰아가기도 한다. 그만큼 백설희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언제 어느때든 자기가 무슨 짓을 해도 여전히 백설희가 자신을 사랑해 줄 것을 믿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오래된 부부같다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관성으로 사랑하고 관성으로 함께 있는다. 당연하다 여기는 일상이 계속 이어질 것을 기대하며 자신도 모르게 풀어지고 만다. 아무렇게나 대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만큼 백설희는 그런 김주만의 감정에 누구보다 민감했다. 더이상 김주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확실히 장예진(표예진 분)에게 김주만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말할 때 백설희는 과거형을 쓰고 있었다.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었다. 불과 얼마전일지라도 과거에는 그토록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이상 아니다. 그럼에도 이별을 통보하는 자신을 향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이 더 가슴아프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위해 단지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그토록 아파해야만 한다. 그 원망이 고스란히 장예진에게로 향한다. 김주만에게는 할 수 없었던 말들이 모조리 장예원에 대한 원망으로 돌려진다. 하지만 어차피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사랑이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너무 오래된 연인이었다.
그러니까 고동만(박서준 분)도 최애라(김지원 분)도 서로에 대해 너무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서로에게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였으니까. 만에 하나라도 둘의 사이가 잘못되어 다시 못보는 경우가 생긴다면 당장 자기가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으니까. 그래서 너무나 소중하고 그래서 너무나 조심스럽다. 보는 사람이 다 답답해질 지경이다. 하지만 결국 이것저것 주변의 곁가지들을 다 치우고 났을 때 남는 감정은 단 하나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 참 멀리도 돌아왔다. 한참을 멀리 돌아서 비로소 고동만도 최애라도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
바로 이런 어른을 바랐던 것이었다. 자기가 힘들었던 것을 안다. 힘든 가운데서도 열심히 일해서 그동안 가족을 부양해 온 것도 안다. 그렇게 뼈빠지게 일해서 지금의 부와 지위와 사회적 명성까지 얻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그렇게 살라. 자식세대들도 자기들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실제 많은 어른들이 그런 이유로 젊은 세대들에게 더 어렵고 힘든 삶을 강요하고 있다. 자기들처럼 여유도 없이 오로지 일만 하며 적은 수입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수 있기를 윽박지르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 고형식(손병호 분)은 자신의 아들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살았으니 너는 그렇게 살지 말아라. 너는 다르게 살아라. 비록 자신의 처지가 어려워도 마지막까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아들을 돕겠다. 누가 아버지와 아들 아니랄까봐 뻔히 한 푼이라도 아쉬운 처지에 얼마간의 현금을 굳이 서로에게 남기고 있었다.
원래 부모와 자식 세대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부모세대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낫게. 더 부귀하고 더 영화롭고 더 평안하고 더 수월하도록. 그러기 위해 부모들은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일하며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는 것이다. 지금 자신들이 만드는 세상이 장차 자신들의 자식이 살아갈 세상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 어른들이란 자식들을 등쳐 자기의 배를 채우는 존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국민소득도 2만달러를 넘어가는 시대에 자기들이 받던 수준의 임금과 대우만을 받기를 강요하며 자식을 위해 자신의 이익만을 극대화한다. 젊은 세대가 그런 부조리한 현실을 헬조선이라 자조하며 비판하면 뭣도 모르는 소리라며 무시한다. 처음 고동만과 아버지 고형식의 관계가 그러했었다. 그래서 고동만도 어렵고 불편하고 조심스러웠던 것인데 반전 아닌 반전을 보여줬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너무나 당연한 그 한 마디를.
아버지로 인해 고동만을 옭죄던 구속이 모두 풀렸다. 벌써부터 어른이 되기를 강요당해야 했었다. 고작 고등학생의 나이에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동생의 병까지 걱정해야만 했었다. 원래 고동만은 단순한 인간이다. 복잡한 고민이나 계산같은 것은 어울리지 않는 타입이었다. 순수한 파이터다. 적이니까 싸우고 적이기 때문에 철저히 이기고 부순다. 황장호(김성오 분)가 그동안 해온 말들과 다르게 김탁수(김건우 분)와 당장 바로 붙고 싶다는 고동만의 말에 오히려 반색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황장호가 고동만을 무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놓지 못하고 있던 이유였을 것이다. 도대체 좁은 링 위에서 알몸으로 마주선 사내들이 굳이 걱정하고 고민해야 할 일이 더이상 무엇이 있단 말인가.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한다. 니 좆대로 한 번 살아봐라. 말을 순화하느라 애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서 어울리는 대사는 바로 이것이었다. 니 꼴리는대로 한 번 살아봐라. 그러니까 내가 꼴리는대로 내 마음대로 살겠다. 그래서 싸우고 싶은 상대와 싸우겠다 결심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솔직하게 고백도 한다. 참 좋은 시절이다. 나도 그때 그랬었으면. 부러움과 질투와 동경과 후회다. 어쩌면 누구보다 드라마에 더 자신을 이입해 보고 있는 것은 나일지 모르겠다.
집주인 황복희(진희경 분)와 고동만의 아버지 고형식과 뭔가 과거에 얽힌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분명 황복희는 빌라 옥상에서 고형식을 알아보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황복희가 굳이 고동만 등이 살고 있는 빌라를 사들이고 고동만의 체육관이 있는 건물까지 사서 뒤에서 돕는 이유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절대 아무 사이가 아니지 않다. 고동만이나 최애라는 모르지만 무언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엄마가 꿈이다. 누구보다도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를 꿈꾼다. 자기 입으로 말하기 전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지만 저리 단호한 결심을 가지고 말하니 비로소 꿈으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오히려 쉽지 않다. 무엇보다 좋은 엄마라는 것은. 굳고 강한 심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도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김주만에게 헤어지자 선언했을 때 솔직히 반했다. 아, 멋진 여자구나.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역시 좋은 남편 좋은 아빠도 필요하다. 혼자만의 일방적인 꿈이 아니다. 단순한 몽상도 아니다. 그녀의 꿈을 인정한다. 최애라가 감탄한 것을 이해한다.
성장통이 끝나고 있다. 이쯤에서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불러줘야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과 단절하고 완전한 어른이 되어가는 즈음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도리어 어설픈 어른에서 어린 아이로 돌아가는 순간이 된다. 역시나 대칭은 아름답다. 비대칭의 대칭보다 아름다운 구도는 없다. 새삼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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