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가 미로인 이유는 수많은 갈림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단 하나 올바른 길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설계자가 의도한 함정이다. 스릴러의 단서란 것이 항상 진실만을 기리키지는 않는다. 단서 자체는 명백히 진실의 일부를 가리키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정보가 정작 같은 단서를 가지고도 전혀 엉뚱한 곳을 가리키게 만든다. 작가와 독자의 게임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진짜 의도한 진실은 무엇이고 어떻게 단서들을 해석해야 그 진실에 닿을 수 있을 것인가. 자칫 잘못된 판단이 진실과 한참 거리가 먼 엉뚱한 미로를 헤매도록 만들고 만다.
사실 이쯤 되었으면 어느 정도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야 한다. 최소한 시청자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그러나 상당한 비중을 가진 인물일 것이다. 일종의 약속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지금껏 한 번 얼굴도 보지 못한 범인을 설정할 것이라면 추리가 아니라 먼저 발로 뛰어야 한다. 뛰고 구르고 부딪히며 범인이 숨어있는 그곳을 찾아가야만 한다. 범인은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범인은 누구인가다. 그런데 단서가 너무 부족하다. 나오는 단서들마다 전혀 다른 인물들을 범인이라 가리키고 있다. 설마 김가영을 납치한 범인은 서동재(이준혁 분)였던 것일까? 박무성의 아들 박경완(장성범 분)과 피해자 김가영과는 어떤 사이였던 것일까? 그리고 하필 아들의 1년 후배를 유력자들의 성상납수단으로 삼게 된 뒷이야기도 궁금해진다. 그러니까 결국 박무성과 김가영을 살해한 진범은 누구인가?
황시목(조승우 분)의 입을 빌어 이창준(유재명 분)이 범인이 아닌 이유를 설명해준다. 영은수(신혜선 분)는 직접 자신의 입으로 자기가 범인이 아님을 역설한다. 하지만 그마저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황시목이 피해자 김가영을 처음 만난 호텔에서 김가영이 경찰서장 김우균(최병모 분)를 만나 웃고 있었다. 이윤범(이경영 분)이 아니더라도 그의 딸이자 이창준의 아내 이연재(윤세아 분) 또한 동기가 충분하다. 남편이 외도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자기를 두고 다른 여자와 외도를 저지른 것도 충분히 자존심에 상처가 되었을 테지만 자기 남편이 어쩌면 자기가 보기에 하잘것없는 존재들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자체도 견디기 힘든 모욕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영은수는 결백하다고 해도 과거 사귀었단 남자에 대한 혐의까지 모두 해결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이 가운데 누구를 범인으로 특정해야만 하는가.
한 편으로 범인의 정체와 더불어 한여진(배두나 분)의 농담처럼 황시목이 감추고 있는 비밀에도 조금씩 다가간다. 전두엽 절제술을 맏았다. 그로 인해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감정이 결핍되고 말았다. 그러면 어째서 황시목은 그런 수술을 받아야만 했던 것일까? 그것과 지금의 황시목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정작 두 가지가 하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드라마가 낯선 이유일 것이다. 황시목은 황시목, 사건은 사건이다. 유력한 용의자인 이창준이 마침내 법무부 검사장에 임명되고 있엇다.
수사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황시목의 캐릭터가 많이 희석된 것은 무척 아쉽다. 그만큼 검찰 내부의 정치가 수사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국과도 관계가 있다.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다. 검찰의 부정과 연루된 살인사건이다. 검찰 내부의 비리와 모순들이 외부로 비집고 나와 참혹한 살인사건으로 이어진다. 저마다 같은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도 자기만의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행동에 옮긴다. 그저 밤거리 건달이 아니다.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한 소시민이 아니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이들이다. 과연 박무성의 아들 박경완을 통해 듣게 될 지실과 그로부터 진실에 닿기 위한 과정들은 어떻게 논리적으로 이어질 것인가.
매순간 범인이 바뀐다. 오늘은 이 사람인 것 같다가 내일은 저 사람일 것 같다. 거의 한 번 씩은 모두 용의선상에 올랐을 것이다. 범인이 여럿인 것이 아니다. 단서들에 대한 해석이 전혀 엉뚱한 샛길을 제 발로 걸어들어가게 만들 뿐이다. 아직 형사들이 알고 있는 사실들을 시청자까지 알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드라마는 아직 시청자를 향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인가. 서동재가 영은수를 의심하고, 황시목이 그것을 막고, 그런 가운데 이창준이 검사장에 임명된다. 모든 것에 우선하는 상황이다. 형사부에서 검사장이 나왔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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