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적당히 해피엔딩으로 끝낸 듯한 느낌이 강하다. 하긴 고동만(박서준 분) 말처럼 세상 뭐 별 것 있겠는가. 진지할 것도 심각할 것도 없이 모두 적당히 적당히 모나지 않게 튀지 않게 서로에게 좋고 즐겁게. 어쩌면 그렇게 그냥저냥한 삶이야 말로 진짜 행복한 삶이 아닐까.
너무 착해도 속는다. 너무 성실해도 지친다. 엄격하게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기보다 적당히 만족할 수 있기를. 그래서 말하지 않았는가. 적당히 조금만 사랑하라고. 적당히 무뎌지고 적당히 무관심해지고 적당히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상처만 입고 끝나는 이유다. 그래서 그들을 헤어져야 했었다. 백설희(송하윤 분)도 최애라(김지원 분)도 모두 김주만(안재홍 분)과 고동만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래서 낯설지만 어머니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어색한다로 어머니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결혼하겠다 말할 수 있었다. 사실 사기였다. 일단 결혼식 올리고 혼인신고 한 다음에 다시 격투기 시합을 하는 것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알면서도 넘어가준다. 무엇보다 고동만을 사랑하니까. 그밖에 다른 모든 이유를 대신해서 고동만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백설희 역시 김주만을 아직 완전히 용서한 것이 아니다. 덜 용서한 채로도. 그래서 덜 준비된 채로도. 그냥저냥. 그렇게저렇게.
그래서 마이웨이인 것이다. 그래서 더 자기완결적일 수 있는 것이다. 타협이란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니까. 완벽하고 무결한 삶이란 자체가 객관화된 것이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완벽하고 무결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좋으면 좋다. 자기가 납득할 수 있는 만큼을 스스로 결정해서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 아주 격투기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시합을 한다. 완전히 용서한 것은 아니지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고 소중하다. 그것을 행복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바로 자신에 의해서.
그를 위한 과정들이었던 것이다. 이전까지 그들의 삶이란 타협이 아닌 단지 체념에 비나지 않았다. 한 번 도전해 보지도 못하고, 한 번 자기주당도 해보지 못하고, 그저 현실이 그렇다니까 남들이 말한 대로 포기한 채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어째서 백설희인 것일까? 어째서 김주만이어야 하는 것일까? 헤어져 봤기 때문이다. 서로가 없는 시간들을 견뎌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백설희인가? 그런데도 김주만이어야 하는가? 자기가 남자로서 친절을 베풀어야 할 상대는 오로지 한 사람 백설희 뿐이었다. 더이상 그저 순하고 착하기만 한 백설희가 아닌 채 있어도 되는 상대 역시 김주만 뿐이었다. 그래서 연인은 아무리 사랑해도 쉽게 헤어지지만 부부는 아무리 서로가 미워도 쉽게 헤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각오의 차이다. 모든 맵고 짜고 쓴 맛을 다 보고서도 그것을 자기의 맛이라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인이 아니라 이미 그들은 가족이다.
고동만과 최애라가 어떻게해도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기 전에 그들은 친구로서 못 볼 것까지 다 보아 왔으니까. 연인이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들까지 친구라는 이유로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야 했었다. 그 사실만 인정한다면. 사실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테지만. 그러나 어차피 친구로서 보낸 시간 역시 그만큼이나 긴 세월이었다. 어지간히 화나고 짜증나고 그래서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시간들도 있었을 테지만 그들은 그래도 여전히 친구였었다. 서른 즈음이라서 그렇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서 그렇다. 어린 소년과 소녀가 이와 같은 사랑을 한다면 그것도 꽤 어색하지 않을까.
사랑도 하고, 자기 꿈도 쫓고. 자기 꿈도 쫓으면서 함께 사랑도 하고. 하나씩 목표도 이루고. 새로운 자기의 길을 찾기도 하고. 그러면서 역시 사랑도 하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람 사는 게 뭐 있겠는가. 남녀상열지사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본능 그 자체인 것이다. 가족도 만나고, 다시 화해도 하고, 그리고 마침내 오랜 과거의 족쇄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꿈을 이루고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저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꿈을 위해서. 그래서 마지막회에 모든 것을 몰아넣는다.
역시나 최애라는 사랑스러웠다. 여전히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내달리는 그 단순함과 과격함은 내가 가장 사랑하고 동경하는 것이다. 오히려 가끔 김주만에게 심술궂은 모습을 보여주는 백설희가 전보다 더 예뻐 보였다. 어떻게 하면 기뻐할지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성장은 진행형이다. 삶도 진행형이다.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연출한다. 지금 이 순간마저 이후를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보다 그렇게 거창하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으면서 넘어가는 시기의 젊음을 현실과 꿈에 버무려 낸 완성도 높은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네 주인공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적당한 변주를 섞고 그러면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았다. 끝까지 주인공들에 집중하며 볼 수 있었다. 후련한 마지막이었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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