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변혁의 사랑 - 뻔하고 흔한, 그리고 쉽고 익숙한 사랑이야기

까칠부 2017. 10. 16. 07:18

과연 '온달'이 고전은 고전이다. 서양에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있다면 한국에는 '바보 온달'의 신화가 있다. 마누라 잘 만나 팔자고치기. 그저 돈많고 신분높은 마누라 만나서 덩달아 신분상승을 이루는 것이 아닌 진짜 잘난 마누라 만나서 제대로 사람돼서 입신출세도 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바보 온달'도 원래 그저 가난하고 비루하기만 한 신분은 아니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하긴 고대사회에서 아무리 마누라가 공주라고 신분이 비천한데 장군까지 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라도 마찬가지였지만 고구려 역시 일정 지위 이상 오르기 위해서는 그만한 혈통을 갖춰야만 했다. 최소한 왕이 주관하는 사냥행사에 무단으로 뛰어들 정도의 신분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결국 온달을 고구려의 장군까지 만든 것은 그를 철저히 내조한 평강공주의 공이었다.


이야기 자체는 사실 무척 뻔하다. 그동안 수도 없이 답습해 온 구조였다. 백준(강소라 분)의 입에서 나오는 '헬조선'이라는 말도 지나치게 직설적이라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개망나니 재벌2, 3세의 구도도 바로 얼마전 '최강배달꾼'서도 써먹은 설정이다. 그러고보니 '최강배달꾼'의 이단아도 그리 '헬조선'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다만 당시 오진규와 달리 '변혁의 사랑'에서 변혁(최시원 분)은 주인공이자 여주인공 백준의 상대라는 사소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백준과 얽히며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재벌 3세를 오해해서 데리고 공사장으로 간다. 수천만원도 우습게 여기는 재벌 회장의 2째아들에게 막노동을 시키고 그 일당까지 이런저런 명목으로 가로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막노동이 너무 당황스럽다. 그런 것치고 다음날 근육통 하나 없이 일어난 것은 역시나 재벌집 자식 답게 몸관리는 잘 되어 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막노동하고 바로 다음날 근육통으로 앓아눕는 것도 흙수저들이나 하는 것이로구나. 적당한 슬랩스틱과 최시원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감칠맛을 더한다. 다만 강소라가 연기하는 백준은 예쁘기는 한데 그다지 절박함을 느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너무 예뻐서일까? 아니면 너무 단정해서일까? 우습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타깝다거나 처절한 느낌도 없다. 하긴 그래서 드라마의 장르는 코미디일 것이다.


약간은 시니컬한 사회비판도 섞일까 싶었지만 그런 것은 무리인 듯 싶고 그저 흔하고 뻔한 재벌가의 상속이야기가 곁들여진다. 괜히 경영권을 노린 형제간의 암투에 백준까지 말려들면서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의 공식을 밟는다. 권제훈(공명 분)의 변혁과 백준을 향한 감정들은 장차 어떤 변수로 작용하게 될까. 무엇보다 전근대적인 노예근성으로 똘똘 뭉친 듯한 아버지의 존재가 그를 위한 주제로써 변주되어야 한다. 기대가 되지 않는 것은 많은 경우 그저 일회성으로 소비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보다는 역시 백준과 변혁 사이에서 삼각관계나 만드는 역할이 아닐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그저 뻔하고 흔하고 그래서 쉽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면 좋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에 그래도 마누라 덕도 보는 온달 이야기를 더한다. 왕가의 후계를 둘러싼 내부투쟁은 가장 인기있는 소재 가운데 하나다. 그렇게 망나니 하나 사람 만들고, 어긋난 것들도 바로잡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모두가 행복하게 해피엔딩을 맞는다. 드라마에는 현실에 없는 행복과 낙관이 있다.


최시원에게 최적화된 드라마다. 그냥 최시원이 주인공이다. 그동안 여러 드라마에서 보여온 모습이지만 매번 보면서도 질리는 법 없이 무척 자연스럽다. 그만큼 주위에서 끊임없는 변주를 통해 소비를 최소화하고 있다. 백준의 캐릭터는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소외된 이들을 그리는데 많이 서툴다. 아쉬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