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녀의 법정 - 눈물의 이유, 사람이 변하던가요?

까칠부 2017. 10. 18. 06:45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사람이 변하던가요?"


둘 중 하나다. 지금도 역시 피해자의 아픔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어떤 연민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벌써 전부터 피해자들에 대해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거나.


자기를 동정하고 연민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동정하고 연민하는데 인색한 경우가 많다. 세상에 자기가 가장 불쌍하다. 세상에 자기만 가장 불행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어주어야 한다. 도와주고 감싸줘야만 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불행에 냉정해지고 심지어 그것을 이용하려 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어쩌면 마이듬(정려원 분) 역시 그런 타입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타인의 아픔에 대해 무뎌지고 오히려 더 냉정해지고 잔인해지도록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아마 김상균(강상원 분)이 찍은 몰카동영상을 아무 동요 없이 오로지 냉정하게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내놓았다면 그같은 짐작은 확신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만큼 타인의 고통에도 자신의 고통에도 무뎌졌다. 다른 가능성으로 오로지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해서 끝까지 동영상을 감추고 내놓지 않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지만 최소한 공중파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므로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마이듬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재판에 이겨서 보다 높은 자리에 오른 뒤 마음껏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이용해서 어머니를 찾을 생각밖에 없다.


물론 결과 자체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출세해야 한다. 어떻게든 검찰 가운데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만 한다. 그래서 만일 도망쳤다면 살아있는 어머니가 자신의 소식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아니라면 어머니를 찾을 수 있는 더 크고 더 많은 힘을 자신이 가져야 한다. 다만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상처에 대해 아예 무뎌진 것이 아니었다. 그냥 혼자였으니까. 자기 혼자 모든 것을 이루어내야만 했으니까.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도로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사라진 엄마를 찾아야 했으니까. 절박함이었다. 애써 눈감고 애써 고개돌려 외면하고 그래도 끝까지 혼자서 혼자만의 힘으로 앞으로 나가야 한다. 


자기마저 수단으로 삼는다. 자신의 수치심과 두려움마저 그를 위한 도구로 삼는다. 한 눈에 보이는 동요야 말로 그럼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치열함과 절박함을 보여준다. 정확히 피해자들의 상처와 아픔마저 수단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그들에 대한 자신의 인간적 동정과 연민, 그리고 무엇보다 그럼에도 그것을 잔인하게 짓밟고 이용해야만 하는 자신에 대한 환멸과 죄책감이었다. 그럴수록 자신이 싫고 밉고 진저리치도록 혐오스럽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그래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수치심과 두려움마저 재판의 승리를 위해 단호하게 저버려야만 했다.


재판에서 보여주는 얄미울 정도의 당당함과 사라진 엄마를 생각하며 홀로 흘리는 눈물은 양면이 아닌 그저 다르게 표현된 하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강해져야 했고 필사적으로 독해져야만 했다. 아니면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주저앉아 울어 버리고 말았을 테니까. 그녀의 내면은 처음 어머니가 사라졌던 어린시절 그대로 머물러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여진욱(윤현민 분)이 정신과의사답게 그런 그녀의 허세를 바로 읽어 버리고 말았다. 아직은 인간적인 호감보다는 그저 본능적인 상처입은 타인에 대한 연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이듬의 혼란스러운 집안풍경이 그런 마이듬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은 마이듬 자신이 살고 있지만 자신의 집이 아니었다. 마이듬에게 집이란 엄마와 자신이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마이듬이 꿈에서 보았던 엄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자신을 위해 음식도 해주는 그런 곳이었다. 엄마가 사라진 순간 마이듬은 고아가 되었가. 그리고 끊임없이 엄마와 집을 찾는 떠돌이로 살게 만들었다.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마음깊이 의지하지 못한다. 상당히 복잡하고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마이듬의 내면을 정려원은 여러가지로 상상하게 만드는 연기로 보여준다. 눈빛도 표정도 하나같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듯하다.


민지숙(김여진 분)이나 마이듬 뿐만 아니라 여진욱마저 조갑수(전광렬 분)와 또다른 악연으로 벌써 엮여 있는 듯하다. 조갑수의 비서실장 백상호(허성태 분)가 여진욱을 알아보았고 보고를 들은 조갑수가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도대체 여진욱은 무슨 이유로 어떻게 조갑수와 얽히게 된 것일까? 기대해 볼 부분이다. 전력으로 부딪히기에는 모호한 정의보다는 개인의 감정이나 원한이 더 직접적이고 확실하다.


또다시 허윤경(김민서 분)이 마이듬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쯤 되면 불쌍할 정도다. 대단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만한 비중이 있는 캐릭터도 아니다. 그저 마이듬에게 지기 위해 변호살로서 그동안 상당한 커리어를 쌓아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갑수가 검사인 마이듬에게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마이듬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녀와 자신과의 사이에 악연의 조각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아직 자신과 더 직접 관련된 마이듬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듯하다. 이것도 결국 지켜보다 보면 밝혀질 것이다.


검사가 주인공인 법정드라마치고 매 에피소드마다 사건이 아닌 캐릭터 자신이 더 돋보이고 기억된다. 무슨 사건이고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가보다 마이듬이 재판에서 어떻게 이기는가에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고보니 나 역시 이번에도 몰카사건 자체보다 마이듬의 캐릭터에 대해 더 많이 할애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니 아예 몰카사건 자체를 잊고 있는 듯하다.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탓도 있다.


캐릭터가 매력있다. 그것을 더 맛깔나게 연기로 보여주는 배우가 있다. 윤현민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안정감있게 지나칠 수 있는 마이듬의 캐릭터를 받쳐준다. 민지숙이나 조갑수나 아직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다. 이들 개성강한 캐릭터들이 장차 어떻게 서로 엮이며 사건을 만들어갈 것인가. 기대가 크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