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그대로 상대에게 전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아니 그 전에 상대와 마주하고 있으면 자기에 대한 객관화가 무척 힘들다. 간섭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상대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혼선을 일으킨다. 다른 사람을 알고 싶고 다른 사람이 알게 하고 싶으면서 한 편으로 자신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사람의 본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를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데 익숙하다.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진심을 전해듣는다. 어쩌면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진심을 깨닫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 사람과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일까. 그래서 손무한(감우성 분)은 말기암인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인간을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다. 정확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삶을 바로 마주 볼 수 있다. 지나온 시간들이 남긴 후회와 미련들을 통해, 그렇기 때문에 남은 시간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이루고자 하는 것인지.
어쩌면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래서 너무 많은 것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겁이 없다. 새끼고양이들은 사나운 개가 있는데도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주위를 돌아다니다 처참하게 물려죽기도 한다. 사람이 무서운 것을 아는 길고양이는 아무리 밥을 주고 물을 줘도 쉽게 그 곁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랑해도 좋은 것일까? 이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일까? 이렇게 함께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 자기애적인 사춘기의 설렘보다는 현실에 치이고 꺾인 어른의 두려움인 것이다. 그럼에도 시작이 무엇이고 동기와 원인이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 그 사람과 함께이고 싶다. 그래서 더 절절한지 모르겠다.
외로워서. 내가 외롭기보다 그 사람이 외로워서. 내가 가엾기보다 그 사람이 가여워 보여서. 그래서 무언가 해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의 존재가 그 사람에게 간절히 필요해지기를 기대하면서.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이기이기도 하다. 이기와 이타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혼란스럽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주위의 간섭이 그 감정을 보다 선명히 드러내도록 해준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한다.
처음은 수면욕이다. 그 다음은 성욕이다. 그리고 이제는 식욕이다. 마음보다 감정보다 육신의 욕망이 더 우선한다. 잠들고 싶고, 섹스하고 싶고, 그리고 먹고 싶다. 외롭고 힘들고 괴롭고 그래서 누군가에 기대고 싶고. 그보다 누군가와 사랑하고 싶다. 그들의 사랑이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숭고하게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의 파편과 마주한다. 하필 안순진(김선아 분)이 이혼한 은경수(오지호 분)와 후배였던 백지민(박시은 분)은 불륜으로 시작해서 맺어진 사이다. 문득 최백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 같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사랑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들의 사랑이라는 것은. 보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면서 그렇기 때문에 보다 직접적이고 간절하게 다가온다. 본능적이다.
뜬금없는 결혼선언과 그리고 정작 서로에게 전하지 못한 진심과 그럼에도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무언의 감정들이 한 편으로 달콤하다기보다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어른이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시한부가 아니더라도. 안순진이 지금도 겪고 있는 불운과 불행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누구나 죽음을 이고 삶을 견디며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으니 괜찮지 않은가.
뭐랄까 분명 판타지인데 다른 로맨스 드라마와는 다른 방식의 사랑을 보여준다. 서로 적당히 속이고 정작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속아주고 그 가운데서 단 하나 진심을 찾아낸다.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 사랑해서는 안되는 수많은 이유 가운데 단 하나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다. 다만 한 순간이라도 더 행복해지고 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 그것으로 어쩌면 충분한지 모른다. 사람이란 원래 쓸쓸한 존재다.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이브 - 살아있는 경찰드라마 (0) | 2018.03.25 |
---|---|
키스 먼저 할까요 - 먼먼 시간의 끝에서 마주친 지금의 시간들 (0) | 2018.03.21 |
마더 - 엄마가 엄마로 태어날 때... (0) | 2018.03.16 |
마더 - 세상이여 안녕... (0) | 2018.03.15 |
키스 먼저 할까요 - 아무래도 상관없는 오늘만, 그리고 사랑 (0) | 2018.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