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브 - 살아있는 경찰드라마

까칠부 2018. 3. 25. 10:51

주인공이 경찰이니 당연히 수사드라마일 것이라 생각했다. 지구대 순경이 무슨 수사인가 하겠지만 원래 초딩이며 고딩이며 동네 아줌마까지 추리에는 성별도 나이도 계급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설마...


그냥 경찰드라마였다. 누구나 하나씩 자기만의 사연을 가지고 경찰이 되어 현실과 부딪히며 성장해가는 단지 일상의 이야기였다. 힘들고 괴롭고 화나고 억울하고 때로 서럽고 슬픈 그런 대부분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다. 그저 배경이 지구대이고 직업이 경찰일 뿐. 그러고보니 누구나 그러더라. 경찰판 미생이라고.


여성에 차별적인 기업들이 싫어서, 정규직이라는 말에 혹해서 사기까지 당하고 그만 욱하는 마음에, 그리고 사고로 장애를 가진 아버지를 둔 싸가지없지만 기특한 딸도 있었다. 너무 경찰이라는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바람에 아내에게 이혼까지 당하고,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 앞에 직무에 충실하고도 오히려 수모와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그리고 끝내 자신의 책임이 아님에도 책임져야 할 불상사와 마주하게 된다.


보면서 부끄러웠다. 물론 나야 밤늦게 술먹고 돌아다니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끔찍히 싫어했었다. 남이 그러는 것을 싫어해서 차라리 나도 나가서는 술 못 먹는 것으로 하고 집에서만 혼자 마시는 정도로 즐기는 편이었다. 그래도 실제 현실에서, 아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일상일 테니까. 주제도 모르고 얼마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마치 노비 대하듯 경찰이며 소방관 등 공무원들에 위세부리는 것이 일상인 이들이 차고 넘치는 것이 현실일 테니까. 이렇게나 고생하는구나. 하필 주인공이 지구대 순경이라 주변인물들을 통해 이입하며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 진짜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겠다.


술취해 이성을 잃은 사람들을 다독이고 보호해서 집으로 돌려보내고, 혹시라도 사건사고라도 생기면 지체없이 출동해서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처참하게 살해된 시체와도 마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단지 경찰이기에 두려움을 누르고 사건을 마주할 뿐이다. 더 깊이 더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런 경찰들이 있기에 내가 안심하고 밤길을 거닐 수 있구나. 솔직히 아주 밤늦은 거리를 홀로 걷다가 경찰서라도 보이면 아무것도 없는데 왜 이리 마음이 놓이던지. 그런데도 꼭 기회만 되면 경찰 앞에 시민이라고 위세를 부리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아무튼 보다 말고 욕부터 나오고 말았다. 엄마가 우울증에 게임중독이다. 아이가 정작 엄마의 보살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다. 술먹고 괜히 시비를 걸다가 싸움이 붙고 그 와중에 아내는 남편을 때리는 남자를 빈병으로 공격하려다 테이저건을 맞고 말았다. 경찰로서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이 전화가 끝나는 즉시 잊으라. 임산부인 것도 모른 상태에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제압을 위해 쏜 테이저건이 임산부에게 맞았다. 참 세상이란 교과서대로는 아니구나. 내가 현장의 경찰이었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럼에도 드라마에 끌리는 것은 답답하고 우울한 가운데서도 느껴지는 한 가닥 긍정과 낙천의 밝고 따뜻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저 취직 때문이라지만 그럼에도 경찰로서의 사명을 잊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은 경찰이 되기 위해 고민하는 젊은 경찰들이 있다. 세상의 매운 맛 쓴 맛 다 보고 못 볼 꼴까지 질리게 본 베테랑들 역시 매순간 경찰로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고민한다. 당장은 좌절하고 실망하고 고민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그 힘이 드라마에서 느껴지고 있다. 너무 밝기만 하지도 너무 어둡기만 한 것도 아닌 신새벽의 서러움같은 그런 벅참이 있다. 아무리 오늘이 고단해도 결국 내일의 태양은 떠오르게 될 것이다.


배우 정유미를 보면 뭐랄까 그 시선을 따라가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배우의 눈이 가리키는 그곳으로 관객의 눈도 따라 쫓아가게 된다. 배우가 보는 그것을, 배우가 보고자 한은 그것들을. 그리고 그곳에는 각자 다른 모습을 한 수많은 군상들이 있었다. 경찰이라는 이름의.


전혀 오해하고 있었다. 경찰이 나오면 경찰드라마겠거니. 경찰드라마는 맞았다. 다만 경찰이 수사하는 드라마가 아닌 경찰이 살아있는 드라마다. 드라마적인 과장은 이해한다. 아니면 드라마는 재미가 없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