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이 아니다. 사람이다. 아무리 현행범이라도 경찰이 현장에서 판결까지 내리려 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그에 대한 처벌은 오로지 법정에서 법률에 의해 내려져야 한다. 다만 현장에서 불가피한 경우 다소 과한 수단을 사용할 수는 있다. 이를테면 용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거나, 아니면 드라마에서처럼 어쩔 수 없이 총기를 사용하거나.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정한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예외적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공권력이기 때문이다. 당장 경찰에게는 법이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쥐어져 있다. 법을 집행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 법을 이용해서 개인을 억압하고 약취하고 심지어 인신상에 중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그동안 그런 일들이 수도 없이 저질러지고 있었다. 경찰이 아예 앞장서서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던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가지 않더라도, 불과 최근까지도 경찰이 무고한 민간인을 체포해서는 고문과 강압수사로 억울한 범인으로 만든 예가 적지 않았었다. 무고한 시민을 억울한 범인으로 만드는가 하면, 한 편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를 더 억울한 상황으로 내모는 경우 또한 상당했었다. 만일 드라마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경찰에 대해 아무런 감시나 견제도 없이 대부분 재량을 인정한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겠는가.
자칫 한 개인, 나아가 한 가족의 삶이 망가질 수 있는 것이다. 기껏 경찰에게 맞아서 다치는 정도가 아니다. 체포 과정에서, 혹은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어디 한 군데 멍들고 다치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고서도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 단지 용의자였고 범인이었기 때문에 경찰의 판단에 따라 적절한 공권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누가 판단하는가. 과연 누가 그것이 정당하고 적절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그것마저도 경찰이? 일선 경찰들의 판단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미국에서는 경찰의 총기 과잉사용이 문제가 되고 있고, 일본에서는 무소불위의 경찰권에 의한 '엔자이'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중이다. 경찰이 영장을 청구하면 바로 발부되고 거의 영구히 갱신되면서 재판에서 유죄확률또한 거의 절대적이다. 그런 사회를 경찰은, 나아가 작가와 제작진은 바라는 것인가.
염상수(이광수 분)의 총기사용은 분명 정당했다. 이미 두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상황에, 더구나 한 명은 동료였고, 무엇보다 어둠으로 인해 시계가 제한되어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설사 범인이 실제 오양촌(배성우 분)의 총기를 탈취하려 하지 않았어도 그런 위험이 있다면 총기를 사용해서라도 먼저 제압하는 것이 옳다. 아무리 명사수라도 그런 어둠 속에서 생명에 지장이 없는 신체 말단부를 정확히 조준해서 사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 그같은 총기사용이 정당하고 적절했는가 판단할 다른 주체가 필요한 것이다. 당사자인 현장의 경찰이 아닌, 인정으로 엮일 수밖에 없는 현장의 동료들도 아닌, 불쾌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당시 상황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경찰이라는 조직과 지휘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편의적 조치가 아닌 법정에서와 같은 엄격한 법과 규정에 따른 판단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 잘못도 없다 여겨지면 드라마에서처럼 불문에 붙이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 여겨지면 그에 따른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너무 당연한 것마저 마치 부당한 것처럼 오로지 경찰의 편에서 몰아세우고 있다. 염상수는 그렇다 치고 과연 경찰의 모든 총기사용이, 폭력사용이 항상 정당한 상황에서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항상 너무 지나치니 문제인 것이다. 어째서 시민들이 경찰을 불신하는가. 기한솔(성동일 분)이 상관들에 따지며 든 예시들조차 정작 불리한 내용은 뺀 일방적인 것이었다. 지구대는 괜찮은가. 사실 대부분 고문과 강압수사가 이루어지는 곳이 일선 지구대다. 가해자와 영합하여 피해자를 더 억울한 상황으로 내몬 많은 사건들도 지구대에서 먼저 일어난다. 그런데 경찰이 위험한 환경에서 격무에 시달린다고 모두 봐주면 그런 일을 당한 시민들의 권리와 안전은 누가 지켜주겠는가.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그 반동이라 보면 된다. 경찰이 시민 위에 군림하던 시절에 대한 반동이 경찰에 대한 강한 억압으로 돌아온다. 한 가지는 맞았다. 그런 현실을 만든 것은 경찰의 수뇌부, 그들의 선배들이다. 물론 지금의 경찰들 역시 고삐를 풀어주면 아닐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공권력에는 개인에게보다 더 엄격한 감시와 견제가 필요한 것이다.
경찰이 현장에서 총기를 사용했다. 그로 인해 피의자가 사망했다. 물론 정당했을 수 있다. 적절한 행동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에 대해 판단하는 과정마저 굴욕으로 여기면 어쩌자는 것인가. 그를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결론내리기 위한 절차마저 억울하다 여기면 도대체 어쩌려는 것인가. 경찰이 정의가 아니다. 경찰은 단지 법을 집행하는 수단일 뿐이다. 경찰의 행위가 과연 법과 원칙과 규정에 충실했는가. 어긋난 부분은 없었는가. 다만 사후에 진짜 객관적으로 중립적으로 냉정하게 사실을 판단해서 경찰에게도 억울하고 부당한 조치가 내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경찰의 책임일 것이다. 하긴 그 또한 일선 경찰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불신의 결과일 것이다. 경찰들이 상부의 감찰을 믿지 않는 것처럼 아직 시민도 온전히 경찰을 믿지 못하고 있다.
주장과는 별개로 드라마는 매우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사실 한정오(정유미 분)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유학을 떠나 더 나은 자기 길을 찾았으면 싶었다. 인정에 이끌려 남게 되는 것도 사실 너무 고루하다. 염상수는 그런 일을 겪고도 여전히 사명감 넘치는 경찰로 남았고, 오양촌은 지긋지긋하다며 교통과로 가서 그런 염상수와 다시 만난다. 기한솔 지구대장은 지방으로 좌천된 모양이다. 마치 수십년을 그 동네에서 산 듯 벌써 어울리고 있다. 어디에 있어도 경찰은 경찰이다. 한적한 시골에도, 편해 보이는 교통과에서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도 사건사고는 언제나 넘쳐난다. 그곳에 바로 그들 경찰들이 있다.
시즌2를 예고하는 것일까. 교통과도 지겹다는 오양촌과 여전히 의욕넘치는 염상수와 우연히 길에서 만나 인사를 건네는 한정오와 여전히 사건을 쫓고 있을 안장미(배종옥 분)가 한 길에서 만난다. 오양촌의 무릎인대는 재활까지 모두 성공적으로 끝난 모양이다. 지나치지만 않으면. 어쩔 수 없이 경찰의 협력을 구해야 하는 드라마의 특성상 PPL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만 시민의 입장에서 어째서 그래야 하는가. 담백하게 경찰의 이야기만 다뤘어도 좋았다. 그런 점에서 더욱 시즌2를 기대해 본다. 재미있는 부분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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