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개인으로서는 현명할지 몰라도 집단의 일부가 되면 한없이 어리석어진다. 게으르기 때문이다. 쉽게 남에게 판단을 맡겨 버린다. 더 크고 더 높고 더 화려하고 더 대단한 무언가에 모든 판단을 맡기고 쉽게 그 결론만을 따르려 한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만 모아놓으면 아예 뇌가 녹아 사라지는 경우마저 있다. 그런 때 전가의 보도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냥 자기 생각이라고는 없는 바보라는 자기고백이다. 자신의 밀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아직 한 번도 그 책임의 무게에 대해 고민한 적 없는 사람이다. 그저 수많은 국민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실체도 없는 대중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이름을 걸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그 책임까지 져야 하는 무게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긴 그러니까 뭣만 하면 쉽게 다수의 뒤에 숨으려 하는 것이다. 비난도 하고 조롱도 하겠지만 그 책임은 지고 싶지 않다.
어느 누구도 진실을 알고자 하지 않았다. 자신들 앞에서 아니라고 간절히 외치는 이를 보고서도 그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그 전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어도 언론의 보도에서 숨은 행간을 찾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모두에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저 언론의 보도만을 보고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고 따를 뿐이라면 결국 스스로 온전히 진실을 판단할 능력 자체가 안된다는 뜻일 것이다. 우습게도 그런 사람일수록 말이며 행동도 빠르고 또 과격하다. 어차피 어떻게 되든 자기가 책임질 일은 없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직업이다. 판사라는 것은. 그래서 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기관인 것이다. 그것을 한세상도 박차오름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을 것이다. 판사로서 짊어져야 하는 무게와 감당해야 하는 크기에 대해서, 그럼에도 판사로서 자신을 엄정하게 지키고 책임지기 위해서. 세상의 수많은 질시와 편견과 오해와 비난 속에서 판사로서 어떻게 법과 양심을 지키며 주어진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진정 판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눈이 아닌 법과 정의와 진실이어야 하는 것이다. 판사가 책임져야 하는 것도 오로조 그 법과 정의와 진실이어야 한다. 그래서 선베 판사들에게 분노한다. 당신들이 판사로서 진정 추구하고 지키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세상의 판사로서의 자부심과 두려움을 젊은 판사들이 물려받는다. 성급한 정의감 뿐인 듯 보이던 박차오름도 이제 재판이라는 것이 갖는 무게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오만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자신들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자신들만이 할 수 있눈 자신들만의 책임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판사로서의 자신의 양심과 자부심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미 다른 재판부에 배당된 사건은 돌아보지 않으며 오로지 당장 자신의 앞에 주어진 재판에만 최선을 다한다. 부당한 징계에 대해서도 오로지 법을 지켜 최대한 자신을 방어할 것이다. 이번에는 누구보다 뜨겁게 임바른이 분노로써 그녀를 뒤에서 돕는다.
단 한 사람이면 된다.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그러나 진짜 좋은 사람이란 모두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좋은 사람일수록 더 좋아하고 나쁜 사람일수록 더 싫어하는 것이 진짜 좋은 사람이다. 그가 좋은 사람임을 알아주는 다만 몇 사람이면 충분하다. 가장 가까이에 아내가 있었고, 어떤 일도 함께 감당하자는 임바른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이들은 내 편이 될 것이다. 나를 믿고 지지해 줄 것이다. 다시 돌아와 기대어 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심지어ㅠ박차오름을 위로하고 응원해주갰다고 모인 많은 사람들이 있다.
비단 한 사람 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젊은 그들을 지켜주고자 하는 선배가 있다. 기꺼이 아직 작고 약하기만 한 그들을 대신해서 주먹을 쥐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선배가 그들에게는 읶었다. 어쩌면 박차오름을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한세상은 스스로 악역을 자처한 것인지 모른다. 박차오름이 판사로서 자신의 양심과 존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킬 수 있었던 이유였다. 선배인 자신들이 희생해야 젊은 그들을 지킬 수 있다. 정작 자신들은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작 지켜야 할 젊은 양심과 재능들만 희생시키려 하고 있다. 이 땅의 수많은 이른바 기성세대들에 들려주고픈 이야기다. 진짜 썩은 것은, 진짜 문제인 것은 어른인 바로 당신들이라고.
확실히 법복보다는 화사한 원피스가 어울린다. 햇살까지 밝아 눈부실 정도다. 지리하게 엇갈이던 두 사람의 관계도 기회인 듯 확실하게 결론지어진다. 오랜 임바른의 짝사랑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것이 박차오름을 다시 한 번 판사로서 일어서게 만든 계기였다. 여전히 앞날은 험난하다. 많은 장애가 남아 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야 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다. 사랑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임바른은 자신위 오랜 사랑을 위해 법복을 벗을 결심까지 한다.
이제 마지막회다. 마지막 위기이며 기회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해피엔딩을 기대해 본다. 한세상의 말처럼 법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 것은 과연 누구인가? 누가 지금 그 책임을 온전히 져야만 하는 것인가? 작가의 대답이기도 할 것이다. 법원이 시민의 신뢰를 되찾고 지키는 방법이다. 현실은 더 암울하다. 마침내 이루어진 사랑처럼 희망도 이어지기를. 드라마에서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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