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을 향한 경고다. 조금은 조롱이다. 너희들이 바라는 재판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너희들이 요구하는 판사란 이런 판사인가. 대중이 바라고 기대하는 판결을 내린다. 대중이 정의라 여기는 판결만을 정확히 내리고 있다. 그런데 그런 대중의 정의는, 대중의 바람과 기대란 누가 만드는 것인가.
고작 기사 몇 줄에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온 인터넷이 들끓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게 된다. 몇몇의 선동에 넘어가 그토록 평소 바른말 잘하던 인간들이 한 목소리로 부화뇌동하여 떠들어댄다. 그 기사를 쓰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 기사거리를 만드는 사람은 또 누구이며, 그 배후에는 또 누가 있는가. 대중이 믿는 정의란, 대중이 추구하는 진실이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가.
과연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다. 원래 그런 것이 자본주의란 것이기도 하다. 자본이 움직이고 매스미디어와 정치권력, 심지어 사법부까지 움직인다. 자본의 요구에 응해서 재판부까지 재배당한다. 하필 그 새로운 재판부의 판사가 성공충이었다. 가장 속물적이고 성공지향적인 판사가 자본과 손을 잡는다. 진실이란 어떻게 가공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거짓으로 바뀔 수 있다. 언론까지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증인신문이라는 명분으로 강하게 압박하면 판단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것을 권력의 편에 선 이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게 과거에도 수도 없이 많은 거짓들이 진실로 둔갑되고 있었다.
그래서 재판에 있어 판사는 항상 엄정하게 중립을 지켜야 한다. 증인이 아닌 마치 피고인처럼, 피해자가 아닌 아예 가해자를 심문하듯이, 판사까지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증인은 더이상 증인이 아니게 된다. 신뢰받지 못한 판단자라는 말은 성공충에게도 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충에게는 고작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권력이 뒤에 버티고 있다. 임바른의 말처럼 그저 박차오름이 만만하니 대중은 그 불신마저 거리낌없이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대중에 의해 그것은 진실이 되고 정의가 된다.
무엇이 재판의 엄정함과 중립성을 해치는가. 자본과 미디어와 정치권력과 무엇보다 대중의 여론이다. 쉽게 판단하고 쉽게 결론내리며 쉽게 비난을 쏟아내는 대중일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에서 그것은 대중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엄격하게 판사의 신분과 지위는 헌법으로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법과 판사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만 판결을 내려져야 한다. 그러지 못하도록 하는 현실의 이유들을 보여준다. 판사는 양심적이고자 하나 사법부도 세상도 그 양심을 지켜주려 하지 않는다. 과연 재판정에 모인 기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재판에 대해 바로 판단할 수 있는 이가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막나가는 재판이 가능했을까.
물론 박차오름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판사가 주인공인 법정드라마가 어렵다고 처음부터 말했던 것이었다. 판사는 수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증거와 증인을 찾아서 진실을 재구성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이미 제공된 증거와 증인을 가지고 오로지 그 가운데서 진실을 판단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당사자들로부터 제공된 증거와 증언이 잘못되었다면 판단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세상 부장도 박차오름에게 경고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법정에서 가장 강자는 판사이며 따라서 판사는 항상 자신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만에 하나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쩌면 드라마는 거기에 대해서까지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일일이 판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성공충 같은 판사는 잘못된 판결을 내릴 위험이 전혀 없다. 설사 잘못된 판결을 내렸더라도 그것이 잘못이 아님을 대신 주장해 줄 더 큰 힘이 그의 뒤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옳은 것은 무엇이고 진짜 잘못된 것은 무엇인가. 실수한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그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덮을 수 있는 그 구조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한세상처럼 반성하고 더 주의해서 더 옳은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된다. 판사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절대 틀리지 않을 판결만을 골라가는 기회주의가 진실을 대신해서는 안된다.
진짜 하필 심지어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재판을 가지고 거래를 하려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요즘인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범죄라고 강력하게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젊은 일선판사들이 있다. 사법부의 체면만을 생각해서 억지로 그것을 묻고 지나가려는 대법관들도 있다. 과연 정의로운 대중이 지켜야 할 진실이란 무엇인가. 그동안 그런 대법원장의 법원은 미디어를 통해 곧 정의로 통하고 있었다. 사법부가 판단했으니 정의다. 그러니까 묻는 것이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아무튼 웃긴다.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
그런 입으로 여혐을 입에 담는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 이런 풍경들 또한 전혀 낯설지 않다. 장담컨데 작가는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일 것이다. 판사로서의 자부심이 넘칠지도 모른다. 대중을 믿지 않는다. 이 사회를 믿지 않는다. 믿는 것은 법과 판사로서의 양심 뿐이다. 그토록 박차오름을 비난하며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음에도 그러나 같은 판사이고자 하는 동료들이 있는 것처럼.
정보왕과 이도연의 사이가 진전을 이루니 임바른과 박차오름의 등을 떠밀려는 듯 이렇게 큰 위기가 찾아온다. 거기서 무릎을 꿇었으면 드라마를 끊었을 것이다. 자신은 판사다. 오로지 법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사람이다. 무릎을 꿇는 것은 그 법 앞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어야 한다. 자존심이며 사명이다. 그리고 보상처럼 박차오름은 처음으로 임바른에게 전적으로 의지해 온다.
어떻게 결론날까. 드라마라는 것은 이런 때 참 아쉽다. 해피엔드일 것을 벌써부터 기대하게 된다. 잘생긴 사람에게 못생겼다 하면 농담일 수 있지만 못생긴 사람에게 못생겼다 하면 욕이 된다. 어차피 세상이 썩었는데 썩은 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어렵고 힘든 과정은 있을지 모르겠다. 이래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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