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구도가 명확해진다. 어째서 이노을(원진아 분)은 모두가 꺼려하는 신임사장 구승효(조승우 분)에게 그토록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모두로부터 한 발 물러서 있는 예진우(이동원 분)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보다 그를 통해 드라마가 추구하는 주제와 재미는 무엇이었을까.
이노을이나 예진우나 아직 너무 젊다. 팰로우로서 병원 안의 여러 문제들을 남들보다 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으면서도 아직은 선배의사들처럼 병원의 논리에 익숙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이노을은 침묵했고 예진우는 외면했다. 이노을은 굳이 부딪히지 않으며 인내했으며 예진우는 아무일 없는 것처럼 냉정한 자신을 가장했다. 그리고 구승효의 존재가 이들에게 계기가 되어 주고 있었다.
이노을에게 구승효는 기대이고 희망이었다. 병원과 의사들의 논리에 익숙하지 않은 외부인 사장의 존재란 어쩌면 지금까지의 고이다 못해 단단하게 뭉쳐 있는 병원과 의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되어 줄 지 몰랐다. 물론 그럴만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능력은 알겠으니 사람이 어떠한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구승효에게 다가가 그를 탐색하려 한다. 어쩌면 자기가 그에게 그를 위한 계기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쁜 여자다. 정작 구승효에게 엉뚱한 오해만 품게 만든다.
예진우에게 구승효란 아버지와도 같던 죽은 전원장의 병원을 망치려는 악 그 자체일 뿐이다. 구승효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마침내 그로 하여금 병원 안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만든다. 하필 전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공석인 원장을 뽑기 위한 선거가 치러지며 그에게 계기가 되어 준다. 전원장의 자리를 아무에게나 물려줄 수 없다. 자격을 갖춘 사람이 전원장의 뒤를 이어 새로운 원장이 되어야 한다. 구승효와 싸우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흠결없는 인물이 원장이 되어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그리고 의사답게 그 기준은 얼마나 의사로서 자신의 양심에 충실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예진우에 의해 고발당하게 될 병원장 후보들이란 여러차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도 알려진 병원과 의사들의 문제 그 자체를 가리키게 될 지도 모르겠다. 벌써 부원장 김태상(문성근 분)부터 이미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는 인공관절수술 남발을 이유로 심평원의 감사를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의사라면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의사가 한 해에만 수 천 명에 이르는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가. 당장 그만큼의 수술이 당장 필요한 환자가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자기가 돈을 벌어 병원의 적자를 메우고 모두를 먹여살려 왔다는 부원장의 당당함도 떠올린다. 행동은 동생인 예선우(이규형 분)가 맡는다.
여기서 구승효의 역할이 중요하다. 과연 구승효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 그대로 병원의 이익을 위해 심평원의 감사로부터 병원의 부원장인 김태상을 지키기 위해 실력을 행사할 것인가. 모두에게 보여준 만만치 않은 그의 수완들을 예선우의 감사를 훼방놓고 저지하는데 사용하려 할 것인가. 하필 바로 직전에 의사들에게 제약회사 영업을 강요하고 돈이 되는 동물병원을 들이는 장면들을 통해 냉정하고 계산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있었다. 경영자로서 이익이 된다면 무엇이든 한다. 이익이 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한다. 당연히 김태상이 심평원의 감사를 받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병원에 타격이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승효는 예선우가 전한 진실에 자신이 확보한 모든 자료를 전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병원에도 의사들에게도 철저히 타인이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구애되지 않고 예선우가 전한 진실에만 반응한다.
아마 이노을이 구승효에게 처음부터 기대했던 것도 바로 이런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선우창(태인호 분)이 굳이 구승효와 손잡은 이유였는지 모른다. 지금은 단지 경영자로서다. 병원의 경영을 통해 수익을 내야 하는 입장에서다. 그래서 병원이 이익을 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일 수 있다. 의사들이야 반발하든 말든 그것들을 관철시키기 위해 속이고 누르고 회유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그가 단지 병원의 이익만이 아닌 병원의 본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최소한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버려진 개들을 대하는 구승효의 모습은 진짜였었다. 소아병동에서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연민하던 모습 역시 거짓 아닌 진짜였었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아는 사람도 그로 인해 생기게 될 다른 이익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세 주인공이다. 병원과 의사들과 전혀 상관없이 병원의 모든 것을 지배하기 시작한 새로운 사장 구승효와 서로 다른 계기로 병원과 의사들의 문제를 안에서 지적하고 있는 두 젊은 의사 예진우와 이노을이 있다. 선우창도 예선우도 그들과 이어지며 한 걸음 떨어져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비단 병원과 의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병원이 배경이기에 무엇보다 병원과 의사들이 우선적으로 그 대상이 된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치이며 꺾이고 찢기는 신념과 양심도 보여준다. 이익 앞에 모두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다만 아쉽다면 그러면서도 정작 예진우는 자기가 직접 나서서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는다. 예진우만 보면 답답해지는 이유다. 무언가 가슴에 품고 있는 뜨거운 것이 있는데 그것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행동은 시작되었다.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는 분노다. 이제 시작이다. 원장선거가 시작이다.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애하는 판사님께 -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방법 (0) | 2018.08.16 |
---|---|
라이프 - 악역보다는 병원과 의료계의 악 그자체에 대해 (0) | 2018.08.15 |
미스터 션샤인 - 그래도 그들은 사랑하며 살아간다 (0) | 2018.08.13 |
미스터 션샤인 - 이완익의 집에서 마주선 두 여인 (0) | 2018.08.12 |
친애하는 판사님께 - 양아치 한강호가 할 수 있는 것, 법원이 하지 못하는 것 (0) | 2018.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