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프 - 악역보다는 병원과 의료계의 악 그자체에 대해

까칠부 2018. 8. 15. 10:05

이 드라마의 장점이자 단점은 따로 정해진 악역이 없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부원장 김태상 정도만이 주인공 예진우에게 아버지와도 같았던 전원장의 죽음과 관련하여 악역으로 보일 뿐 대부분 그저 자기 입장에 충실할 뿐인 일상적인 인물들로 여겨진다. 그래서 문제다. 도대체 누구와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


그래서 일단 지금으로서 거의 유일한 악역이라 할 수 있는 김태상을 몰락시키는 장면은 한 편으로 통쾌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예진우의 동생 예선우가 앞장서기도 했고 예진우와 대립하는 신임사장 구승효 또한 진실을 밝히는데 힘을 보태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추하고 비루했던 김태상의 모습은 예진우의 은밀한 고발로 시작된 일련의 상황들을 정의로 착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로써 부원장은 끝났다. 병원의 가장 큰 악이 제거되었다. 그러면 그 다음은 무엇일 것인가? 누구일 것인가?


주경문이 등장하게 되는 계기다. 예진우는 고민한다. 부원장의 대세론이 힘을 잃고 그러면 다음은 누구여야 하는가. 누가 부원장을 대신해서 전원장의 뒤를 이어 원장이 되어야 하는가. 시청자의 고민이기도 하다. 누구를 응원하며 무엇을 바라고 드라마를 지켜봐야 하는가. 김태상은 단지 과정이다. 김태상보다 위에 구승효가 있다. 구승효마저 화정그룹의 회장 앞에서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다. 과연 어디까지 예진우는, 그리고 시청자는 병원을 위해 싸우고 그리고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인가.


때로 드라마가 답답한 이유다.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 병원을 개혁한다고 하지만 구승효가 바라는 방향과 이노을이 바라는 방향과 예진우가 바라는 방향이 모두 다르다. 당연히 주경문도 다르고 오세화도 다르고 다른 의사들도 모두 다르다. 때로 의사들이 적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때로 구승효가 그저 돈만 바라는 자본주의의 괴물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예선우가 몸담은 심평원이 문제인 것인가. 정작 병원이 배경인데 환자를 치료해서 살리는 내용은 거의 없고, 주인공들이 더 높은 이상이나 목표를 위해 적극적으로 싸워나가는 과정도 보이지 않는다. 이노을이나 예진우나 정작 사건의 중심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다. 교수들과 사장이 만들어가는 병원의 경영에 있어 팰로우들이 끼어들 자리란 없다. 고작 밀고로 김태상 한 사람 낙마시키는 것이 전부다. 그마저 이제 구승효가 고발한 당사자를 찾아나서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다. 그동안 언론보도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의료계의 문제들이 대형마트마냥 아무곳에나 여기저기 널려 있다. 잠시 방심하면 지나칠 수 있는 곳곳에서 그런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들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그런 현실을 바꾸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노을은 의료계와 상관없는 구승효에게 기대를 걸고 예진우는 전원장에게 그랬던 것처럼 같은 의사인 주경문에게 기대를 건다. 대리전이다. 그래서 진정 병원을 올바로 바꾸는 것은 의료계 외부의 힘인가? 아니면 의사들 자신인가? 아니면 둘 모두일 것인가? 전혀 어울리는 곳이 없어 보이는 구승효와 주경문은 끝내 병원을 변화시키기 위해 협력하게 될 것인가?


원장선거마저 과정이다. 목표가 아니다. 원장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다음이 진짜다. 그래서 주경문이 주인공이 아닌 것이다. 구승효가 아닌 예진우와 이노을이 화자로 있는 것이다. 지켜보는 역할이다. 심판하는 역할이다. 구승효가 사장이 되어서 주경문이 원장이 되어서 과연 무엇을 어떤 일들을 해나갈 것인가. 그에 대해 젊은 의사들인 예진우와 이노을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정확히 악역이라기보다 현실의 악 그 자체일 것이다. 병원과 의료계의 관행처럼 남아 있는 병폐 그 자체일 것이다. 구승효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그리고 예진우 등은 내부인의 시선으로 그런 것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다만 드라마로서 어디까지 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너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예선우와 주경문이 공유하고 있는 비밀이 궁금해진다. 여전히 예선우가 이노을에게 누나라 부르는 것이 익숙지 않다. 아무리 봐도 겉으로 보이는 액면은 예선우가 오히려 삼촌이다. 여전히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예진우의 태도와도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은 단서가 너무 부족하다. 지금은 지켜본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