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를 따로 적어 올릴 필요 없어 좋다. 이 노래는 가사 없이는 안 되는 노래라.
하나의 드라마다. 노래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처럼 구성되어 있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과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처음 외면하고 부정하려고 한다. 변명하고 회피하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닐 것이다. 내 탓이 아니다. 내 잘못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이고 누구의 잘못인 것일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에 어느새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부정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용서해주기를. 그러나 인정해 주기를. 그래서 어머니를 찾게 된다. 어린 시절 무슨 일이 있어도 오로지 자신의 편을 들어주던 단 한 사람을 찾는다. 그것은 마치 죽어가는 병사가 마지막으로 부르짖는 단말마와도 같은 것이다. 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자신의 선택이 그에 대한 배신이 되지 않기를. 그를 실망케 하지 않았기를. 그를 상처입히지 않았기를. 그러니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기를. 그러니까 자기에게도 아무 일도 아니기를. 그럴 수 없음을 알기에. 그러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인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이어진 오페라 파트는 그런 자신의 고백아닌 호소에 대한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대답이다. 끊임없이 원망하고 갈구하고 답을 구하지만 오히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자신의 내면이기에 그 대답은 여지없이 잔인하다. 바람은 바람일 뿐. 기대는 기대일 뿐. 희망은 희망일 뿐. 동정도 연민도 없다. 용서도 이해도 없다. 마치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혹은 초월적인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숨을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끝까지 쫓아와 진실을 강요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어떤 결과가 돌아오든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받아들이라. 마치 신의 저주처럼. 악마의 형벌처럼. 그것이 자신의 앞에 놓은 생생한 현실이다. 자신이 딛고 나가야 할 현실이다.
그래서 분노가 폭발한다. 늬들이 뭔데? 늬들이 뭐라고? 그래서 늬들이 나에게 어떻게 할 건데? 뭘 어쩌려는 것인데? 다 필요없어! 다 그만두겠어! 내가 먼저 버려주겠어! 내가 먼저 외면해 주겠어! 그리고 그런 분노의 끝에 마지막 흐느끼는 듯한 발라드가 현실과의 타협을 들려준다. 그래, 뭐 어쩌겠는가.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고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인데. 외면할수도 부정할수도 없는 자신의 진실이다. 그러니 늬들이 어쩌든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이다. 한 편으로 체념이고 한 편으로 순응이다. 어찌되었거나 이미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가혹한 운명의 무게가 가녀린 읊조림에 실린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는 자살을 떠올렸다. 확실히 도입부의 아카펠라에 이은 발라드 파트만 보면 자살 말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 최소한 내가 듣기에는 그랬다. 그런데 노래의 제목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당시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어서. 부모가 바라는 자신과 내가 바라는 자신과의 차이에 대한 고민이었다. 부모와 주위에서 기대하는 자신과 내가 기대하는 자신과의 괴리에 대한 고민이었다. 차라리 박차고 나가지 못했다. 노래에서처럼 분노하며 모두 떨치고 나가지 못했었다. 한없이 미안해하고 그런 자신에 구애되고 그래서 얽매인 채 이도저도 아닌 시간들을 허비해 왔었다. 그런 의미가 아닐까. 노래에서 화자가 죽인 남자는 기존의 세상이 바라던 또 다른 자신일 것이다. 자신이 찾아낸 진실한 자신이 그를 죽이고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 말하자면 자살 아닌 자살인 셈이다. 그래서 노래의 제목도 자유로운 이들을 위한 광시곡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인해 고민하던 프레디 머큐리 자신의 내면을 담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로 인해 느끼게 된 죄책감과 번민들, 그리고 신과 세상에 대한 분노와 현실에 대한 수용까지. 그러나 완결되지는 않았다. 저 노래 어디에도 해결같은 것은 없다. 하긴 해결이란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해를 해결할까 아니면 달을 해결해 볼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이 무어라 하든. 어머니가 무어라 하든. 신이 무어라 하든. 그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은 자기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는 이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겠다. 문득 한창 프레디 머큐리가 고민하고 있을 때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던 수많은 목소리들을 떠올려 보게 된다.
노래는 프레디 머큐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쓰고 만들었다고 한다. 녹음하는 내내 심지어 멤버들까지도 프레디 머큐리가 시키니까 할 뿐 도대체 뭘 만들려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멤버들을 불러 노래를 시키고, 그 노래를 다시 수도 없이 반복해서 겹쳐 녹음하고, 연주를 입히고, 그리고 마침내 나온 결과가 바로 이 음악이었다. 과연 처음 이 노래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아니 녹음하는 내내 머릿속에 이 노래 전체를 떠올리고 있었을 프레디 머큐리 자신의 내면이 어떠했을지. 오히려 상처입었기에, 아파하고 있기에, 그래서 더 간절하게 떠올리는 어떤 울림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아주 오래전에는 신의 계시라 여겼었다. 그래서 저 오페라 파트가 흥미로운 것이다. 그는 그때 자신을 향한 잔혹한 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내가 무신론자이기에 가능한 상상이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뭐 이런 노래가 있는가. 번역된 가사를 읽고 나니 기승전결이 완벽하다. 자유롭고자 하는 한 인간의 절규였다. 차라리 잔혹해질수밖에 없었던 어느 자유롭기를 바라던 인간의 비명과도 같았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 하늘이 내린 혈육의 정까지 끊어내야 했던 수도자들처럼. 가족과의 인연을 끊는 순간 이름마저 새 이름으로 지어 받고 있었다. 그런 끊임없이 번민하는 인간의 내면이 프레디 머큐리의 변화무쌍한 목소리와 아카펠라와 하드록, 오페라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장대한 스케일의 곡구성을 통해 전해진다. 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을 진정 단 하나의 창조물이라고나 할까. 세상에 이런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구나. 더구나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것은 처음 노래가 만들어지고 10년도 더 지난 뒤였다.
하필 퀸을 소재로 한 영화가 곧 개봉한다고 하길래. 더구나 마침 유튜브에서 퀸의 음악을 찾아듣던 참이었다. 다른 노래도 좋지만 역시 내게 퀸이란 이 노래였을 것이다. 퀸이 처음으로 빌보드에 이름을 올렸던 노래이기도 하다. 미국을 제외하고 오히려 레드제플린 등보다 훨씬 높은 인기를 누렸음에도 정작 미국에서 인정받지 못해 평가가 낮았던 퀸이었는데 이 노래를 통해 비로소 빌보드에 이름을 올리고 미국에서도 인정받게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이후로도 퀸의 음악은 미국시장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평가가 낮았었다. 어떤 사람들은 빌어먹을 양키센스라고도 말하고는 하는데. 나야 퀸보다는 레드제플린을 더 좋아했으니.
오히려 여기저기서 붐을 타고 커버하고 나서며 더 원곡을 찾아 듣고 싶어지는 노래다. 누구도 프레디 머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특히 퀸의 음악은 프레디 머큐리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물론 브라이언 메이나 로저 테일러, 존 디콘 등 모두 손꼽히는 연주자들이었고, 작곡자로서도 많은 히트곡을 내놓고 있었다. 하지만 밴드의 멤버가 되기 전부터 극성스럽게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일삼던 프레디의 존재야 말로 퀸을 퀸으로 완성시키지 않았을까. 사실상 퀸의 시계는 나머지 멤버들이 생존해 있어도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하던 그 순간에 멈춰 있다. 듣고 싶은 만큼 쓰고 싶어졌다. 주제는 되지 않지만서도.
역시 좋은 노래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좋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아지는 노래도 있다. 영향을 받은 새로운 음악인들이 더 발전된 결과물을 그 위에 쌓아 올려도 결국 진짜는 그 향기를 잃지 않는 법이다. 어느새 전설이 되어 버린 내 시간들을 추억하며. 여전히 들어도 아름답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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