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들고양이들 - 마음약해서...

까칠부 2018. 7. 26. 23:41


마음약해서 잡지 못했네 

돌아서던 그사람 

혼자 남으니 쓸쓸하네요 

내 마음 허전하네요 

생각하면 그얼마나 정다웠던가 

나혼자서 길을가면 눈앞을 가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네 

마음약해서 마음약해서 

나는 너를 잡지 못했네 

생각하면 그얼마나 행복했던가 

나혼자서 길을가면 눈앞을 가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네 

마음약해서 마음약해서 

가는 너를 잡지 못했네 

마음약해서 잡지 못했네 

돌아서던 그사람 

혼자 남으니 쓸쓸하네요 

내 마음 허전하네요 

생각하면 그얼마나 정다웠던가 

나혼자서 길을가면 눈앞을 가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네 

마음약해서 마음약해서 

나는 너를 잡지 못했네 

나는 너를 잡지 못했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대림역 7호선 출구가 있는 근처다. 아직 영창악기가 있었고, 아마 제약공장이 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누런 흙먼지가 흩날리는 허허벌판이 있었다. 여기저기 비닐하우스에서 농사짓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근처에 다리라고는 도림교 하나밖에 없어서 하류쪽에서는 공사장 비계 만들 때 쓰는 출렁다리로 건너야 했었다. 난간도 없는 출렁다리에 뻥뻥 뚫린 구멍 아래로 보이는 시커먼 도림천 똥물이 꽤나 무섭기도 했었다.


둑길은 아직 포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림동 쪽이나 구로동 쪽이나 여전히 부옇게 흙먼지를 피우며 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세발 네발 자전거를 타고 다리 이쪽과 저쪽을 오가던 그 무렵 바로 이 노래가 들리고 있었다. 괜히 도로 난간에 올라 걸어다니고, 전신주를 타고 미끄러져 내러가던 그 언저리에서 바로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누구의 노래인지도 모르고 당시 최병걸의 '진정 난 몰랐었네'와 이은하의 '아리송해'와 더불어 가사도 다 제대로 모르는 채 마냥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유튜브에서 들고양이들이 부른 원곡을 찾아 들으니 어찌나 반갑던지.


아마 전에도 몇 번 썼었을 것이다. 70년대 말 주로 클럽무대를 중심으로 나타난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유행에 대해서. 주로 미군무대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록 등 서구의 선진음악을 연주하며 몸으로 체화하고 있었다. 그런 한 편으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무대에서는 역시나 대부분 한국대중이 좋아하는 트로트를 연주해야 했었다. 그렇게 주한미군이라는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한국과 미국의 대중음악을 모두 체험하고 구현하면서 당시의 연주자들은 그 경험을 하나의 장르로 녹여내게 된다. 바로 록의 사운드와 트로트의 멜로디를 아우른 트로트고고, 혹은 로꾸뽕이라 부르던 것이었다.


사운드는 철저히 자신들이 무대에서 익힌 밴드음악의 그것을 따른다. 하지만 멜로디 자체는 또한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트로트의 그것을 들려준다. 철저히 대중적 취향을 쫓으면서도 음악인으로서 연주에 대한 자부심은 놓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 정점에 바로 이 들고양이들이 있었다. 아마 원래는 와일드캣츠였을 것이다. 70년대만 대중가요정화운동이네 뭐네 하면서 밴드에 영어이름을 쓰지 못하게 하면서 우리말로 풀어서 들고양이라 바꾼 것이었다. 그런 예가 많았다. 윤수일밴드의 이름이던 윤수일과 솜사탕도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냥 윤수일밴드는 영어이름이니 안된다. 별 거지발싸개같던 시절이었다.


역시나 다른 프로음악인들처럼 미군무대와 클럽무대를 거치면서 실전을 통해 단련된 들고양이들의 음악내공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있었다. 바로 민요였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오히려 외국인을 대상으로 외국의 음악을 연주해야 했던 처지였기에 더욱 간절했던 민족의식이 미국의 록과 대중적인 트로트에 전통적인 민요의 가락을 섞고 싶은 욕구로 나타난 것이었다. 아마 모두들 한 번은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십오야''오동동타령''아리랑목동' 등등등등등...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친숙한 멜로디들이 바로 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쇼프로그램에서 이들 들고양이들을 소개할 때 '로크그룹'이라 부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록에 대한 기준이 달랐던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록이란 엄밀한 장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밴드라고 하는 형식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밴드를 통해 록의 사운드를 들려주면 록그룹이었다. 무엇보다 클럽무대에서는 자신들의 히트곡만이 아닌 록을 비롯한 팝과 트로트 등 대중음악도 함께 연주해야 했었다. 내공이 묻어나는 꽉 찬 사운드와 그러면서 친숙한 트로트와 민요의 메들리, 그리고 쉽고 직설적인 가사들. 그래서 그때도 아직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내가 그 노래들을 아무렇지 않게 따라부르고 있었던 것이리라.


몇 년 전 무릅팍도사에 타이거JK가 출연해서 자기 어머니가 들고양이들의 리더 김성애씨라 했을 때 그래서 깜짝 놀랐었다. 아마 이제는 들고양이들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얼마 없을 것이다. 그들이 내놓은 수많은 히트곡들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따라부르면서도 정작 그 노래를 만들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마저 거의 잊혀진 채였다. 그런데 설마 타이거JK가. 그런데 솔직히 김성애씨에 대한 기억도 거의 없다. 당시 무대들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보컬만 앞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밴드는 뒤에 멀찍이 떨어져 배경처럼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카메라는 연주자들을 거의 비추지도 않았다. 심지어 아예 밴드를 무대 앞으로 빼서 무대의 배경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한 경우마저 있었다. 들고양이들이라 하니 들고양이들이라 알지 밴드인지 보컬인지 알 게 무언가.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밴드의 수명이 그리 길지 못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보컬 한 사람만 아니까.


들고양이들 말고도 비슷한 팀들이 제법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긴 당연할 것이다. 당시 클럽무대에는 트로트든 디스코든 록이든 실제 연주자들이 직접 연주해야만 하는 환경이었고, 이들 연주자들은 때로 팀을 이루어 활동하고는 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팀들이 사랑과평화나 라스트찬스같은 팀들이었다. 혹은 카리스마 있는 리더 한 사람을 중심으로 모인 팀들이 신중현의 밴드들과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 이은하의 타이거,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중인 조용필의 위대한탄생 등이었다. 밴드는 일상이었다. 음악을 하려면 밴드가 있어야 했고 방송국 쇼프로그램에서도 방송국이 고용한 밴드가 직접 나와 연주를 하고는 했었다.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들고양이들과 같은 팀들도 가능했을 것이다.


가끔씩 과거 한때 록부심 깨나 부렸던 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도대체 한국적인 록이란 무엇인가? 아니 무엇보다 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자신들에게 익숙한 멜로디가 트로트이고 민요이기에 그대로 따랐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트로트이기에 그대로 쫓았다. 하지만 그것을 담아낸 그릇은 철저히 밴드의 그것이었다. 단지 시간이 지나니 장르의 구분이 엄밀해지면서 더이상 그들 음악을 비슷하게도 부를 수 없게 되었을 뿐. 이를테면 분청사기와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자를 만들고 싶은데 백자를 만들 기술이 없다. 그래서 흰 백토를 사용해서 백자와 비슷하게 만든다. 트로트를 록과 비슷하게 발전시킨 것일까? 록은 트로트와 비슷하게 개량한 것일까?


음악의 장르란 그런 점에서 얼마나 무의미한가. 그냥 하고 싶으니 한다. 해야겠으니 한다. 자기가 좋아한 음악이다. 자기가 듣고 자란 음악이다. 그렇게 자신의 손으로 몸으로 익숙해진 음악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한국 대중음악은 발전해 왔다. 굳이 그것을 나누어 구분하려니 장르의 이름을 그 앞에 붙이는 것 뿐. 하필 하고 싶은 음악이 록이었고 트로트였다. 힙합이었고 유로댄스였다. 과거 유명한 록그룹 가운데 지금은 아예 록을 만들지 않는 그룹들도 적지 않다. 다만 그 유산이 온전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 못한 이유 가운데 음악 외적인 정치사회적 이유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그냥 유튜브 뒤지다가 발견하고 떠올려 버렸다. 불과 얼마전까지 그 동네에서 다시 살고 있었다. 112번과 120번 버스가 다니고, 여전히 둑길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던. 딱 이 즈음이면 송충이들 때문에 그 그늘마저 달갑지 않았다. 도림천 다리 아래에는 개뼈가 굴러다닌다. 물도 많이 깨끗해졌다. 심지어 물고기도 큼지막한 것들이 헤엄쳐 다닌다. 그만큼 세월은 너무 달라졌다. 오로지 노래만이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직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던 그저 흘러나오는 노래에 취해 있던 시절의 꿈을. 오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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