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中森明菜-少女A

까칠부 2018. 10. 29. 09:41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가수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외모도 창법도 노래도 모두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내가 나카모리 아키나라는 가수에 대해 알고 있느냐면,



바로 이 캐릭터 때문이다. 내가 워낙 다카다 아케미 버전의 아유카와 마도카를 좋아하지 않아서. 어쩐지 갈수록 그것도 '오렌지로드' 연재초기의 아유카와 마도카의 캐릭터에 이끌렸던 탓에 이미지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유카와 마도카라면 대부분 다케다 아케미의 일러스트로 검색된다. 마츠모토 이즈미 것도 거의 후기 이미지들이라 어렵게 주워 왔다.


워낙 초기 '오렌지로드'의 그림체가 엉망이었던 터라 주위에 물었었다. 도대체 이 머리스타일은 어떻게 되어 먹은 것인가. 그러자 나를 어둠의 길로 끌어들인 무리 중 하나가 사진 하나를 보여주더라. 바로 저 여자였다. 나카모리 아키나中森明菜. 저 동영상도 편집한 것이라 비슷한 머리모양은 중간에 잠깐잠깐 나온다. 아, 이런 스타일이었구나. 비로소 아유카와 마도카라는 캐릭터의 실제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렇게 생겼었네? 그러고보니 뭔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원래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어째서 당시 또래들은 하필 서구의 팝도 아닌, 한국의 대중가요도 아닌 일본의 대중음악을 일부러 찾아듣고 있었는가. 여전히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구하기도 쉽지 않은 일본의 대중음악을 애써 돈들여 시간들여 찾아들으려 한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은 사운드였다. 소리의 질이 달랐다. 한국 대중음악을 우습게 여기고 팝을 주로 듣던 사람들의 이유도 비슷했다. 당장 녹음장비부터가 부실했었다. 90년대 이전 음원들을 찾아 들으면 정만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다. 소리는 죄다 뭉개지고 악기의 밸런스는 맞지 않는다. 아니 그 이전에 연주를 단지 노래를 받치는 반주 수준으로 여기는 인식이 더 문제였었다. 심지어 신디사이저 한 대 갖다 놓고는 가수의 목소리에 대충 입혀서 내놓은 음반도 적지 않았었다. 그래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노래란 단지 가수의 목소리만 있으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연주해도 같다. 아무나 연주해도 어차피 녹음해 놓으면 잘 듣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오죽하면 조용필이 '서울서울서울' 음반을 발표하며 연주의 사운드 밸런스를 끌어올렸다 이야기했을 때 그것이 크게 화제가 되었겠는가.


그나마 그런 처참한 현실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그런 80년대의 대중음악의 현실을 몸으로 겪고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밴드음악인들 덕분이었다. 하긴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녹음기술의 발달을 이끈 것도 라이브에서와 같은 최상의 사운드를 음반에 담아내고 싶었던 밴드음악인들의 노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신해철은 아예 영국까지 가서 엔지니어링을 배워 왔고, 이승철은 막대한 돈을 들여 자기만의 녹음실을 차렸었다. 이승환과 이승철은 전부터도 최고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외국인 프로듀서를 고용해서 외국에서 음반작업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녹음기술도 선진국에 그리 뒤지지 않는다. 진짜 격세지감이다.


더구나 90년대 들어 댄스음악이 크게 유행하면서 사운드에 대한 요구가 커지게 되었다. 그냥 가수만 혼자 나와 부르는 노래로는 안되었다. 차라리 노래실력은 별 볼 일 없어도 사운드는 신나야 했었다. 사람들의 귀를 잡아끌 수 있어야 했었다. 여기서도 80년대 밴드활동을 하면서, 흑은 그들의 활동을 직접 보고 겪었던 이들이 큰 역할을 했다. 비로소 가수의 목소리 말고도 다양한 악기소리로 가득 채워진 음반들이 한국 대중음악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달리 90년대를 한국 대중음악 최고의 전성기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경제성장과 80년대 말 이루어진 민주화는 강한 사회적 자신감으로 나타났고 음악인들도 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의욕적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심지어 인디밴드들조차도 클럽과 소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도 최소한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때가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같은 음악적 발전은 90년대를 거치면서 점차 라디오에서도 팝전문 프로그램들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비슷한 수준의 음악이면 아무래도 같은 한국말로 된 음악 쪽이 듣기도 좋고 이해하기도 쉽다.


이전에는 당연히 음악을 듣는다면 팝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음악을 좀 안다고 하려면 일본 음악도 들어주어야 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팝과 일본음악의 영향은 한국 대중음악에 매우 강하게 남아 있다. 어쩔 수 없다. 뿌리가 그쪽이다. 그들로부터 배워서, 그들을 베껴가며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90년대 초반까지 표절에 대해 관대해지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다. 당시는 표절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저들과 비슷하게 만드느냐가 문제였다. 얼마나 저들과 비슷한 사운들, 비슷한 연주를, 비트를 들려줄 수 있는가가 문제였다. 그리고 조금씩 그런 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며 지금에 이르렀다. 아이돌도 원래는 일본으로부터 베끼며 배워 온 것들이지만 그러나 지금 한국의 아이돌은 일본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중국이 우리 것을 베낀다고 비웃을 수 없는 이유다. 그렇게 우리도 한 발 한 발 우리만의 것을 찾고 만들어 왔다.


지금 일본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그래서 예전처럼 뭔가 남들과 다른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것과 한참 거리가 멀다. 그만큼 일본과 한국의 대중음악의 수준에 큰 차이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순수한 기호로써 즐긴다. 순수한 기호로써 미국이든 영국이든 다른 나라의 음악을 듣는다. 굳이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 빌보드차트에 누가 1위를 하든 상관없이 그냥 멜론차트만 보고 있어도 된다. 이제는 오히려 일본에서 미국과 유럽에서 한국 아이돌의 음악을 열광하며 듣고 있다. 이 얼마나 천지개벽할 변화인가.


타박을 들었었다. 한국 노래를 듣느냐고. 그런 거 왜 듣느냐고. 그런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것도 대개 일본제 기기들이었다. 삼성과 LG는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었다. 굳이 세운상가까지 가서 비싼 돈을 주고 아이와니 산요니 하는 일본제 기기들을 사와서 자랑하며 들었었다. 그리 오래 전도 아니다. 그 사이에 수많은 스타들이 명멸해갔고 그만큼 수많은 장르와 스타일들이 일어났다 사라져갔다. 강물은 흘러 바다로 가지만 강물이 흐른 길은 남아 다음 강물이 따라 흐를 수 있도록 해준다. 지금 나카모리 아키나는 아는 사람도 이제는 드문 한 만화캐릭터의 모델로만 내게 기억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무척 열광하던 아이돌이었을 테지만.


여전히 나카모리 아키나는 모르겠다. 당시도 노래를 듣고는 별로라 여겨 그냥 얼굴만 보고 말았었다. 주위에 아직도 당시 일본 아이돌과 연예인들에 해박한 아저씨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이제는 전설로나 회자되어야 마땅할.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나온 세월들을 이렇게도 실감한다.




요즘 딱히 볼만한 드라마도 예능도 없고 해서 이런 식으로 그동안 쓰고 싶었던 글들을 부담없이 쓰고 있다. 차라리 이런 게 원래 이 블로그의 목적에도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드라마 리뷰에만 특화된 블로그가 되어 버려서. 객관성같은 것은 없다. 그냥 개인의 기억이고 경험이다. 별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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