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마침내 그라나다, 선지자를 찾아서

까칠부 2018. 12. 30. 06:39

선지자는 높은 산 깊은 계곡에 몸을 감추고 있다. 모든 것을 알고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기에 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꽁꽁 자신을 숨기고 있다. 물론 높은 산 깊은 계곡이란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망밍대해일수도 있고 미로와도 같은 빈민가의 뒷골목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를 찾아야만 모든 비밀이 풀리고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그는 그라나다라고 하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창조주다.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거짓된 신처럼 모순되고 오류투성이인 지신의 피조물에 놀라 숨어버린 어리석은 신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선지자이기도 하다. 유진우와 같은 일을 먼저 겪었고 그를 피해 도망치다가 어느 순간 숨어 버렸다. 그는 과연 지금 유진우가 겪고 있는 끔찍한 저주와도 같은 상황을 풀어낼 방법을 가지고 있을까? 몸을 숨기고 있는 동안 방법을 찾아낸 것일까? 게임이고 프로그램이라면 어딘가 버그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방법은 단순할 지 모른다. 현실과 게임 사이에 오차를 둔다. 항상 게임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의식하게 함으로써 게임에 과몰입하는 것을 막는다. 게임에 지나치게 과몰입했다라 게임 내용에 충격을 받아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사례가 증강현실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심심치 않게 있어 왔다. 게임속 상황이 실제라고 스스로 동의하고 도취된 순간 실제와 똑같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가빠지는 경험을 한다. 손발까지 덜덜 떨린다. 그래도 이것은 게임이다. 현실이 아니다. 그라나다는 너무 리얼하다. 시각과 청각, 후각, 심지어 촉각까지. 이래서야 게임속 허구와 현실 사이에 구분조차 모호하다. 결국은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기에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옆이어도 보이거나 들리거나 느껴지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그라나다의 창조주 정세주는 어떻게 지금의 문제들을 풀 방법을 찾아냈을까?

 

선지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시련이 필요하다. 수많은 고난을 넘고서야 감춰진 진실에, 비밀을 풀 수 있는 단서에 비로소 다가갈 수 있다. 비서를 억지로 레벨업시켜 그라나다로 데려간다.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지 모른다. 아니나다를까 너무 쉽게 너무 빠르게 서비서는 몰려오는 몹들을 상대하다 전열에서 이탈하고 만다. 설마 차형석처럼 서비서도 게임에서 받은 충격에 의해 실제 사망한 것은 아닐까. 서비서까지 차형석처럼 게임의 데이터로 복사되어 유진우를 쫓아다닌다면 꽤 섬뜩할 듯하다. 정세주의 메시지를 받기 위해 90레벨에라는 고레벨이 필요했듯 그만한 시련과 희생이 뒤따라야 정세주를 만나고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서비서의 이탈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무튼 게임 초반 그렇게 다치고 죽고 했음에도 아무일도 없었던 것을 보면 게임에서 죽는다고 모두가 현실에서도 목숨을 잃거나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결국은 게임 도중 실제 목숨을 잃는 자체가 불상이고 비상인 우연한 사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고작 1년 새 2명이면 너무 많다. 그나마 과몰입으로 인한 쇼크사가 이 정도이고 혹시 게임 도중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주위를 살피지 않고 달려오거나 하면 심각해진다. 역 주변에서 싸우다가 혹시라도 철로로 몸을 피했는데 기차가 달려오면 어떻게 될까? 아직 정식서비스가 되지 않았으니 부작용에 대한 데이터도 턱없이 적다. 모든 경우 적용되는 것이다. 항상 시작하기 전에는 완벽하다. 게임 역시. 그래서 더욱 게임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제이원의 대표 유진우는 정세주를 만나야 한다.

 

역시나 김의성은 악역이 어울린다. 아니 처음부터 선역으로 캐스팅하기에 배우의 캐릭터와 너무 거리가 멀다. 그냥 꼰대다. 아집에 사로잡힌 늙은이다. 혈육의 정보다 자신의 입장과 체면만을 우선한다. 다른 사람의 처지나 사정따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남편의 친구와 사랑에 빠져 이혼까지 했던 처지다. 믿었던 친구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몇 년을 배신감과 증오에 사로잡혀 지냈던 입장이었다. 무엇보다 그 여자가 자신의 손주를 낳은 며느리였다. 그런데 태연히 도저히 편할 수 없는 관계인 두 사람을 모아 놓고 재결합하지 않겠는가 제안한다. 아마 유진우의 전처 이수진의 말이 맞을 것이다. 다만 모욕한다면 이수진만이 아닌 유진우도 함께다. 역시 의심하고 있었다. 단지 유진우나 회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너무나 노골적인 악의를 유진유도 바로 느끼고 반응한다. 더욱 유진우가 그라나다로 정세주를 찾아 떠나야 하는 이유가 된다. 자신의 후견인과도 같았던 차병준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도 게임 그라나다의 치명적인 결함일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게임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욱 게임에 빠져야 하는 이유가 교차한다. 모든 이유와 동기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유진우가 미친 듯 레벨을 올려야 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인 차형석의 망령을 제외하고. 현실의 정희주에게도 어느새 끌리고 있고 회사도 경영권도 지켜야 한다. 고유라와의 이혼에도 함정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과연 유진우는 그라나다에서 정세주와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정세주에게서 그토록 간절히 찾고자 하는 비밀을,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정세주는 몸을 숨기고 있는 동안 이 모든 문제들응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을까? 아니면 세계를 창조했듯 마침내 모순되고 불완전한 자신의 세계에 종말을 가져 올 것인가. 결국에 정희주를 위해서도 사업의 성공보다 일상의 행복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

 

분량은 짧지만 정희주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캐릭터보다는 배우가 가지는 매력이다. 이야기속에서도 공주님은 결국 아무것도 않는다. 떠나야 하는 이유이며 돌아와야 하는 약속이다. 하지만 어쩐지 마지막 열쇠도 정희주가 쥐고 있을 듯하다. 복잡하게 얽힌다. 그러나 답은 하나다. 그라나다로 가자. 정세주를 찾자. 처음으로 위험한 싸움을 치른다. 드라마 2회에서 보았던 장면이다. 비로소 여기까지 왔다. 시간이 참 빨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