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꾀에 제가 넘어가고 말았다. 설마 몰아보기라는 이름으로 요약편을 내보내기에 한 주는 그렇게 넘아가는구나 싶었다. 연말이고 이것저것 행사도 많은데다 방영분량이 부족하면 그렇게 시간을 버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요약본은 넘어가고 이번주 제대로 본편을 이어서 보겠다. 난 바보였었다. 그보다 번거로운 일이 많아 인터넷 기사 하나 찾아 볼 여유가 없었다.
흔히 천륜으라 부른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하늘이 내려준다고. 그런데 하늘은 항상 옳은가? 과연 하늘은 정의롭고 올바른가? 그렇다면 지금 세상은 왜 이 모양인 것일까? 오히려 선하고 정의로운 이들이 고통받고 악하고 불의한 이들이 부귀영화를 누린다. 충신은 후손조차 변변히 남기지 못하는데 반역자의 자손들은 조상의 이름에 금칠을 할 정도로 번성한다. 대부분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나라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데 친일파의 후손들은 그 나라를 쥐락펴락한다. 부모라고 모두가 자식을 사랑하고 언제나 위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사랑하고 위하려 해도 항상 그 방법이 옳거나 바른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단지 핏줄만을 이유로 아이를 부모에게만 맡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래서 차우경도 이혼한 것일 게다. 가족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토록 사랑하던 부부도 한 번 헤어지면 그냥 남남이 되어 버리고 만다.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있을 수 있는가. 자식을 방치하는 부모가 없다면 자식을 방치하는 부모는 부모가 아니라 봐야 한다. 그런데도 단지 핏줄을 이유로 그저 번거롭고 성가신 일을 피하려는 욕심만으로 아이를 그런 부모에게 돌려보내고 만다.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아버지에게 친권자라는 이유만으로 딸을 돌려보낸 판례도 있었다. 보호자라는 이유로 역시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친척들을 선처한 판례도 있었다. 친권자는, 법적인 보호자는 어떤 경우에도 아이에 대한 책임이 아닌 배타적 권리를 갖는다. 사실상 보호라는 이름의 소유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무엇도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고통받고 상처입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오죽하면 경찰인 강지헌마저 무심코 외치고 만다. 아동학대범들을 연쇄적으로 살해한 범인이라 여겨지는 붉은 울음에게 어린 하나를 학대하고도 생물학적 아버지임을 내세워 다시 데려가려는 고성환을 왜 가만 내버려두고 있느냐고. 데려가면 다시 하나를 학대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경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에 대한 절망이고 절규였던 것이다. 차라리 붉은 울음이 고성환을 죽여서라도 하나를 구해주었으면 좋겠다. 인지상정이고 그래서 피해자들에 대해 전혀 동정도 공감도 못하는 기묘한 연쇄살인의 수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할 테고 스릴러이다 보니 진범을 알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그보다과연 죄인으로서 단죄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판단을 망설이게 된다. 남편과 아버지가 죽었음에도 오히려 기뻐하던 아내와 딸을 떠올린다. 과연 붉은 울음은 하나의 아버지를 죽인 것일까? 하나를 위험으로부터 구한 것일까?
자식을 사랑한다. 딸을 사랑한다. 모든 인간은 선하다. 선하기를 믿고 선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인간은 쉽게 악을 저지른다. 대부분 악하기보다 너무 선하고 너무 정의로운 경우가 많다. 너무 선하고 너무 정의로워서 너무 사랑해서 다른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것이 학대란 생각도. 그로 인해 아이가 겪을 고통이나 상처에 대해서도. 결국 모두 아이를 위한 것이다. 아이에게 좋은 것이다. 자신이 한 행동이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고 혐오하던 아동학대란 사실을 알고 충격받는다. 고작 몇 마디 메시지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궁지에 내몰린다. 그런데도 어째서 민하정은 자신의 딸 빛나를 그토록 학대하고 있었던 것인가. 사랑한다는 말은 최소한 진심이다. 너무 사랑해서 문제였던 것이다. 마치 다정이 병이었던 것처럼. 그 모순의 간극을 너무 현실적으로 극적으로 그려 보여준다. 하지만 후회조차 사실을 되돌릴 수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를 사랑한다.
초록색 옷을 입은 소녀의 정체는 갈수록 미혹속에 빠지는 듯하다. 어린 시절 차우경은 그 소녀와 함께 있었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소녀는 차우경의 가까이에 있었다. 행방을 알 수 없는 이모가 걸린다. 마치 아버지가 자신에게 기억을 강제로 주입시킨 것 같다. 하나에게 고성환이 건 암시는 전문가인 의사들조차 쉽게 풀지 못한다. 하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차우경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기억하지 않는 것일까? 초록색 옷의 소녀를 모르는 것일까? 모르고 싶은 것일싸? 정작 드라마를 보고서 질문만 늘어간다. 답답하다. 상쾌한 답답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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