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싸움은 맷집이다!

까칠부 2010. 3. 7. 14:44

격투기에서 회자되는 말이 하나 있다.

 

"근육이 기술이다."

 

근육은 곧 파괴력이며 맷집이다. 한 마디로 한 방에 보낼 수 있고, 또 한 방을 버틸 수도 있다.

 

어지간해서 사람이 체격차이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상대는 한 대 때릴 것 서너 대 더 때려야 하고, 그러면서도 상대의 한 방에 그대로 가 버릴 수 있고,

 

싸움은 결국 맷집이다. 파괴력까지 포함한 맷집이다. 얼마나 상대의 펀치를 감당할 수 있는가, 상대는 얼마만에 내 펀치에 쓰러질 것인가,

 

참 사람들이 법을 그리 신뢰하는데, 예전 그런 일이 있었다. 분명 그쪽이 잘못했다. 그러나 정작 재판이고 소송이고 다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알고보니 유지다. 재판기간만 몇 년인데 그 기간을 버틸 여력이 이쪽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포기해야지.

 

맷집인 거다. 서로 폭로전하고...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 여론에 노출되고 그로써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되는 경우다.

 

실제 많다. 분명 억울한 일이다. 억울하니 어디 가서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않는다. 왜? 감당이 안 되니까. 법이란 그래서 만 사람에게 평등하다 하는 것이다. 정의나 윤리나 그럴만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하잘 것 없다.

 

세상이 마치 산수처럼 딱딱 맞아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물론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경찰서 불려가는 것도 부담스러워 도둑이 들어도 신고하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성범죄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신고를 하지 않으니 찔리는 것이 있는 것일까?

 

물론 나도 그 뒷사정은 모른다. 과연 잘못이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 있을 수도 있겠고 없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단편적인 근거만으로 이렇다? 참으로...

 

세상은 참 모순투성이다. 그런 모순투성이인 세상이기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억울한데도 싸움을 포기해야 하는 무력감이라는 게...

 

과연 싸운다고 승리할 수 있을까? 싸워서 승리한다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까? 무엇보다 그 싸움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소시민인 거다.

 

확실히 계급이 다르면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아마 박재범은 나와 계급적으로 비슷할 듯. 나 역시 흥분하면 욕이 먼저 튀어나오는 환경에서 자랐으니. 슬랭이나 내가 쓰는 욕이나. 

 

아무튼 소시민으로 기업을 상대로 소송할 일 있으면 깨닫게 될 것이다. 아니 지역유지급만 되어도 참 세상이 그렇게 합리적이지만은 않구나. 버틸 맷집이 없으면 포기하는 거다. 약자의 싸움방법은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뭔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단지 단정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 뿐이다. 왜 침묵하는가? 그러면 당시 8천만원이나 손해본 내 지인은 왜 침묵했을까? 성폭행당했다고 고소했다가 합의금 받고 해결 본 여성은 그 가해자의 말처럼 돈을 노린 꽃뱀이었을까?

 

단정지어 말하기에 세상은 이미 카오스다. 내가 아는 세상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