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 사랑하는 이야기들

까칠부 2019. 2. 17. 06:32

내가 가수의 가창력이나 배우의 연기력에 대해 대개 크게 문제삼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이유일 것이다. 잘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잘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 같기에. 그러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기에. 잘하고 못하고는 나중이다. 성공하고 못하고도 나중이다. 그것은 차라리 무당의 신병과도 닮았다.


공감하게 되는 것은 나 역시 어차피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생각이 넘치면 어쩔 수 없이 모니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만화 '창천항로'에서 조조의 아들 조식을 묘사하며 그 부분을 상당히 잘 그려내고 있었다. 생각이 넘치고 말이 넘치니 어떻게든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으면 안되고 그렇지 않으면 넘쳐나는 생각과 말로 인해 자기가 미칠 것 같고 죽을 것 같다. 그렇게 좌절하면서도, 그로 인해 그토록 고통받으면서도,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글쟁이다.


시가 팔리지 않는 시대에 시를 쓴다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누군가는 팔리지 않는 시를 쓰고, 누군가는 그 팔리지 않는 시집을 내고, 그래서 시를 씀으로써 상처를 입고, 그래서 시집을 냄으로써 손해를 보고,그럼에도 여전히 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시인을 만나 밥 한 끼 사는 것으로 사장과 대놓고 싸움을 벌이고, 그런 시인의 죽음에 자기 탓인 양 눈물을 흘리고, 그 죽음에 무시하던 또다른 누군가는 충격을 받는다. 사랑하고 사랑하면서도 또한 외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인가? 인간의 문제인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형태도 여러가지다. 그래서 세상에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로 넘쳐난다.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차마 부부로 함께 할 수 없기에 헤어지는 이들과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솔직해질 수 없는 이들과 사람을 사랑하기에 자기에게 손해가 될 것을 알면서도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사랑해서 솔직해지고, 솔직해서 상처입고, 그럼에도 사랑하기에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사랑하기에 속이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그러고보니 글쟁이들과 닮았다. 사랑쟁이랄까? 그렇게 오버랩된다. 사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사람은 사랑을 한다. 사랑하기에 시도 쓰고, 사랑하기에 눈물도 흘리고, 사랑하기에 아파서 몸부림치며, 사랑하기에 그럼에도 아파하면서도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사랑해서 설레고, 사랑해서 상처입고, 사랑해서 아파하고, 사랑해서 기다리고, 사랑해서 토라지고, 사랑해서 질투도 하고, 사랑해서 절망도 하고 좌절도 한다. 악해지고 독해지고 미워지고 그런데도 또 사랑을 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한계는 무엇일까? 그래서 사람은 사랑에 도취되어 이런 이야기들을 쓰는 것일까?


적당히 현실적이고, 그러면서 적당히 로맨스라는 판타지에 취할 줄도 안다. 사랑스럽고 그러면서 안쓰럽다. 냉혹한 현실과 그런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낭만과 그리고 어느새 새겨진 상처들까지. 그래서 상처입으면서도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고 그리고 앞으로 나간다. 어쩐지 같은 문장의 반복인 것 같은데 감상이 그것밖에 없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다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사랑이야기. 로맨스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