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회만 가지고 판단하기 뭣해서 한 회 더 두고봤는데, 이거 쪼는 맛이 꽤 괜찮다. 한 번 판결이 확정되었으면 더이상 같은 사건에 대해 심리하거나 재판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스릴러의 요소로서 활용한다. 5년 전 자신의 변호로 무죄판결을 받은 범죄자가 5년 뒤 다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며 당시 사건에 대한 자백을 강요받는다. 과연 5년이나 지난 지금 변호사와 퇴직한 형사는 범인을 다시 처벌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5년 전 사건에서 변호사 최도현은 단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했을 뿐이었다. 변호사로서 국선이지만 자신의 의뢰인의 결백을 믿고 그를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무죄판결에 대한 책임은 수사를 부실하게 허술하게 했던 경찰과 검찰에 있었다.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피의자는 무죄로 추정되어야 하며, 범죄사실이 명백히 입증되지 않은 이상 피의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되어 있다. 혹시라도 피의자와 수사당국 사이의 비대칭관계로 인해 억울한 판결이 내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그런 사례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과 검찰이 부실하게 허술하게 수사한 내용을 가지고 범죄자라 단정짓고 판결을 내렸어야 하는 것인가. 변호사도 변론을 포기했어야 하는 것인가.
기춘호가 한종구의 범죄를 확신하는 근거라는 것도 고작 재판이 끝나고 한종구가 자신에게 귓속말로 전한 범행에 쓰인 흉기가 소주병이 아닌 사이다병이었다는 한 마디 뿐이었다. 그마저도 재판 당시에는 진술로써 확보하지 못한 내용이었고, 설사 확보했어도 그냥 해 본 말이었다 하면 입증할 방법이 없는 부실한 근거였다. 그래서 정작 기춘호가 그 사건으로 인해 경찰을 그만두었음에도 기춘호의 동료들 역시 최도현에게 나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일 게다. 그것이 경찰과, 아니 검찰과 변호사의 관계다. 경찰이 수사를 잘못했으면 변호사에 의해 뒤집히는 것이 올바른 세상의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고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진실을 밝히지 못하면 과거 잘못된 수사로 묻힌 진실의 범인이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야 하고, 진실을 밝히게 되면 또다시 과거의 범인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다시 풀려나게 될 것이다. 어차피 살인범이니 억울하게 처벌 좀 받는다고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그로 인해 또다른 살인범이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세상을 활보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헌법이 금지하고 있어도 과거의 범인을 어떻게든 다시 처벌받도록 만들고 싶다. 기춘호의 집착과 최도현의 변호사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과거의 사건을 시간을 거슬러 현재로 가지고 온다. 과연 기춘호와 최도현은 진실을 밝히고 한종구로 하여금 자신이 지은 죄의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바로 한종구가 자백하기 직전까지 몰아세울 수 있었다. 분명 이번 사건 만큼은 다른 사람이 범인이다. 범죄 수법도 다르고 동기도 다르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기춘호의 존재가 있다. 한종구의 주변을 살피며 그의 가족관계에까지 관심이 미친다. 어째서 한종구는 집을 놔두고 출소 후 여관을 전전하며 살았던 것인가. 한종구의 최초 살인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러니까 기춘호의 조건대로 한종구를 처벌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같은 대상 같은 유형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없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한종구를 처벌할 수 있는 또다른 혐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번에는 이준호의 먹방이 별로 없다. 그동안 드라마 나올 때마다 부지런히 열심히 맛나게 먹더니만. 싸가지없는 연기는 아마 또래에서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 싸가지없는데 그다지 밉지가 않다. 민폐덩어리 하유리와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진여사의 존재도 흥미롭다. 아마 최도현의 과거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사형수의 아들이기에 사법시험 차석의 성적으로도 검사도 판사도 될 수 없었다. 유재명의 연기야 말해 무엇하고.
사건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지만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활용해서 조여가는 방식이 탁월하다. 이미 판결이 확정되어 다시 심리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처벌받도록 한다. 너무나 흉악한 범죄이기에.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그렇지만 한종구와 같은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그것이 순리이고 정의일 터다. 당연한 것이 너무 어렵다. 첫인상이 좋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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