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멋대로 상상력을 키우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사건처럼 이미 판결이 끝난 사건의 일사부재리 원칙에 도전하는 그런 내용은 아닐까. 최도현과 기춘호를 중심으로 그런 식으로 이미 판결난 사건들을 해결해가는 내용인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끝에 감옥에 있는 최도현의 아버지 사건이 있을 것이다.
하긴 아직 실망하기는 이를 것이다. 다음 사건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단지 최도현이 쫓고 있는 진실의 단편들만 살짝 내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양애란 살인사건의 진범 한종구가 사실은 과거 최도현 아버지의 재판장에 있었고, 한종구가 범인으로 몰렸던 살인사건의 희생자 김선희 또한 그곳에서 최도현과 마주친 바 있었다. 그러면 과연 앞으로 마주치게 될 사건의 관계자들도 역시 최도현 아버지의 사건과 관계된 인물들일 것인가. 무엇보다 집요하게 범인을 쫓던 형사 기춘호가 아버지의 체포와 관계있었다.
반전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함정을 파고 진범을 범행현장으로 유인한 뒤 잡는 방법은 그동안 수많은 스릴러에서 지겹도록 흔하게 반복적으로 쓰여 온 것이었다. 살인의 동기도 어머니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런데 피의자로 하여금 자백을 하게 해서 오히려 무죄판결을 받아내는 장면은 흥미로웠다. 아니 긴장되고 있었다. 과연 무죄판결을 받기 위해 한종구는 자신의 살인을 인정할 것인가. 이미 무죄로 판결난 살인에 대해 당장의 재판에서 무죄를 받겠다고 스스로 범인임을 법정에서 증언할 수 있을 것인가. 초유의 사태에 대한 당혹과 혼란과 고민과 살인범의 무죄판결문을 써내려가는 판사의 괴로움이 느껴진다. 물론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피고인의 변호사로서 그를 함정에 빠뜨려 다시 살인죄로 기소되도록 만드는 것이 정당한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마침내 자신의 살인죄를 증언함으로써 살인죄를 벗는 모순된 상황이 드라마에 대한 집중과 긴장을 끝없이 높여주고 있었다.
또다시 승리했다. 또다시 검찰을 상대로 너무나 명백해 보이는 살인사건의 재판에서 승리하고 있었다. 확실히 유능한 변호사이기는 하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런 모든 것이 정론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모략이나 속임수가 아닌 오로지 더 많은 증거와 증언을 모으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피해자 양애린의 가족도 딱히 최도현을 비난하거나 하지는 않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의 부실수사가 문제이지 최도현의 변론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전부터 계속 피해자 양애린의 가족을 찾아가 사과한 듯한 장면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변호사로서 할 일을 한 것 뿐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확신이 없다면 변론해서는 안된 것이고, 재판이 이미 끝났다면 후회는 자신의 의뢰인을 위해 해야만 한다. 물론 인간적인 정으로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확실히 발전하고 있다. '김과장'부터 '그냥 사랑하는 사이'를 지나 이번 '자백'까지 배우 이준호는 계속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소한 일상의 디테일을 살릴 줄 안다. 무심히 지나가는 표정과 말투, 몸짓에도 의미를 부여할 줄 안다. 드라마의 중심에 설 만한 존재감과 연기를 보여준다. 차라리 가수로서보다 배우로서 더 재능과 실력을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유재명의 연기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유재명과 마주하며 화면을 가득 채우는 존재감이 과연 주인공이구나 싶다.
자백으로 오히려 무죄를 이끌어내고 그를 통해 또 하나 숙제를 남기게 된다. 아직 김선희 살인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아마 수사팀은 여전히 김선희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 이미 있는 증거들을 다시 뒤지고 새로운 증거를 모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도현은 새로운 사건들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를 궁극의 진실로 안내해 줄 단서들이다. 과연 그 과정에서 어떤 사건들을 만나게 될까.
간만에 새로운 스타일의 법정스릴러였을 것이다. 피의자를 변호해야 할 변호인이 오히려 피의자의 혐의를 밝히는 내용도 흥미롭기는 하다. 지키는 방패가 오히려 단단한 틈을 비집는 칼이 되어야 하는 것은 이번 사건만일까. 그리고 기춘호는 또 어떻게 그와 얽히게 될까. 역시 기대한 보람이 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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