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는 범죄다. 범죄란 일상을 벗어난 것이다. 그 범죄를 쫓는 형사란 존재는 그래서 일상에 속한다. 딱 한정국과 김미영 두 주인공의 캐릭터가 그것을 몸으로 보여준다. 모든 것이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한정국과 그에 비해 상당히 진지한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김미영이 일상과 비일상의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우연히 영웅이 되는 이야기는 무척 흔하다. 아예 자신을 잡으려는 사채업자들을 피해 경찰에 체포되고자 무작정 달려들어 두들겨 팬 대상이 알고 보니 흉악한 연쇄살인마였다. 그리고 또 겹치는 우연. 당연히 용감한 시민이라고 길거리에서 막 알아보고 사인을 청하고 하지는 않는다. 하루아침에 사기꾼이 영웅이 되고 심지어 국회의원에까지 출마하려 한다. 아내는 형사인데 그 배후에는 대출금리제한폐지를 원하는 사채업자가 있다.
대출금리제한을 폐지해야 한다 주장하는 박후자의 논리가 어디사 많이 들어보던 것이다. 하긴 서민을 위해서라도 서민이 받는 월급을 지금보다 더 줄여야 한다. 서민을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일하게 해야 한다. 서민을 위해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모두 장악하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 서민을 위해. 서민을 위해. 우리나라는 참 애국자가 많다. 서민을 위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서민을 위해서 부동산 가격까지 지금보다 더 올려야 한다 말한다. 의도한 것일 게다. 다만 과연 알아듣는 이가 몇이나 될까. 진짜 부동산 가격 떨어지면 서민 망한다 주장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서.
사채업자들이 들려주는 구세대의 모습과 박후자가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의 방식과 그럼에도 전혀 바뀌지 않는 정치의 현실이라는 게 사기라는 코미디와 맞물린다. 형사라고 하는 일상의 존재와 부대낀다. 그냥 아무일 없이. 영웅이고 뭐고 다 필요없으니 그냥 평범하게 별 일 없이. 그 차이다. 그 간극이다. 마치 흑백과 칼라처럼 그렇게 상식과 일상을 벗어난,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을 현실의 모순들이 그런 평범함과 부딪힌다. 그런 세상이 있는 줄도 몰랐다. 더구나 자신의 남편이 그런 세계에 속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 김미영이 이제 곧 맞닥뜨리게 될 이상한 나라인 것이다.
벌써 시작되었다. 사실 파고들면 한정국이라는 개인에 대해 전혀 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을 터였다. 당장 건실한 사업가라는 것부터 김미영의 남편으로 살기 위해 한 거짓말이었는데 한 점 의심없이 그대로 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방송의 내용에 대중은 휩쓸리고 있었다. 심지어 한정국 같은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는 영웅이 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란 자신들을 대신할 수 있는 자신들과 같은 시민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 대단한 영웅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바꿔 줄 것이다. 초인같은 존재가 나타나서 모든 것을 한 번에 이뤄 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정치선진국들에서도 대중의 그같은 바람에 편승한 정치인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결국은 정치란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냥 모든 게 바보같다. 하긴 코미디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다. 긍정과 낙관보다는 비웃음이다. 모욕이고 조롱이다. 때로 자신마저 비하한다. 자신을 학대하고 파괴함으로써 해방되는 듯한 쾌감을 느낀다. 무언가 바꾼 것 같고 이룬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여전히 현실은 현실이고 자신은 자신일 것이다. 비극을 볼 때처럼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고 달라진 것도 없다. 그것을 알기에 더욱 마음놓고 비웃고 비하하고 모욕하며 파괴하려 하는 것이다. 가장 안전한 곳에서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들은 항상 용감해지고 정의로워질 수 있다.
최시원의 연기가 능청스럽다. 원래 코미디 연기를 잘하는 연기자였을 것이다. 이유영의 안정감이 드라마를 꽉 붙들어준다. 김민정의 존재감이 점점 더 커진다. 아직은 이들 세 사람이다. 나머지는 그다지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어떨까. 꽤 재미있다. 생각없이 보다 보면 어느새 자야 할 시간이다. 시간이 빨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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