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 책임지지 않는 대기업, 그리고 흐르는 노동자의 피

까칠부 2019. 4. 24. 06:54

사실 이익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연한 것이 중간에 도급을 끼지 않으면 오히려 비용은 더 싸질 수 있다. 중간에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빠지는 만큼을 직접 지급하면 더 싼 값에 오히려 서로 더 큰 이익을 보면서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책임지기 싫다는 것이다.


뭐만 하면 나오는 말이다. 이제는 대부분 국민들 역시 상식처럼 읊조리고 있는 중이다. 규제를 줄여야 한다. 규제를 줄이고 기업들이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뭔 말이냐면 기업들이 책임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바로 그 책임을 지지 않으려 책임을 회피할 수단을 찾고 그를 위해서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도급비용이란 기업이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직접고용이 아니니 급여나 노동시간 등 노동자의 법적인 지위나 권리에 직접 침해하는 것도 없다. 그에 대한 책임은 도급을 받은 업체가 대신 지게 되는 것이다. 그 편리함에 언제부터인가 대기업들은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기보다 도급을 끼고 간접고용하는 경우가 늘게 되었다. 비용은 비용대로 드는데 그러나 책임은 도급업체로 떠넘기고, 도급업체가 가져가는 만큼 노동자는 더 열악한 조건에서 노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업은 성장하고 경제는 발전하는데 오히려 노동자의 일자리는 열악해져만 가는 것이 바로 그동안 우리의 현실이었다. 제조업 일자리야 말로 좋은 일자리라는 언론의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설사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어도 직접고용이 아니면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었다. 뭐가 좋은 일자리인가.


지청장 하지만이야 말로 바로 그런 우리 사회의 평균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그냥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한 번도 그런 일로 처벌한 경우가 없다. 분명히 불법인데. 명백히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한 사안인데. 괜히 문제삼아봐야 자신들만 다치고 아무엇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조진갑이 가져온 증거와 자료들을 확인하고 인정해주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본심만은 아니었다는 방증이었을 것이다. 잘하고 싶지만 현실의 한계가 있다.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결코 넘을 수 없는 현실의 한계라는 것이 있다. 그렇게 타협하면서 지청장이라는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쉬는 날도 없이 거의 밤을 새가며 일해도 하소연할 곳 하나 없었다. 몇 달이나 월급이 밀리며 이유도 알 수 없는 일방적인 클레임에 지치고 소모되어 가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곳 또한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노동자 자신의 책임도 적지 않다. 그저 열심히 일하면. 그저 성실하게 주어진 일들을 더 잘 해낼 수 있으면. 그러고보면 세상이 요구하는 노동자상도 그런 것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는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자다. 나를 위해서 내 노동을 수단으로 삼아 살아가는 이들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나의 근로를 제공하는 이들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며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행동하는 것을 혐오하기까지 한다. 그저 착하게 그저 성실하게 그저 순종적으로. 그리고 그런 사회적 여론을 사용자들은 적극 이용한다. 그래서 드라마에 나온 정은미와 같은 이들이 더이상 못견디겠다고 파업이라고 하면 편들어줄 사람이 전체 국민 가운데 몇이나 되겠는가. 언론은 또 그들을 어떻게 보도하겠는가.


한 편으로 MBC에서 이런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것이 역겨운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노동자들이 못살겠다 파업했을 때 MBC는 어떻게 보도했었는가. 그렇게 열악한 처지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목숨까지 걸어가며 권리를 주장했을 때 그를 어떻게 다루고 있었는가. 언론이라는 말조차 참혹하던 시절 그들은 '피노키오'같은 드라마를 당당히 방영한 바 있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최소한의 염치조차 없다. 하긴 그래서 조장풍 개인의 영웅담으로 끝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안 될 것, 어차피 되지 않을 것, 적당히 과장하고 희화화해서 한 사람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끝낸다. 당장 MBC 자신의 문제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내내 화가 났다. 그래서 몇 번이나 채널을 돌릴 뻔했었다. 합법적인 수단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으니 차라리 법을 벗어난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그냥 범죄다. 무단으로 기업 사무실에 침입해서 자료를 훔쳐내 온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을 듯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을까. 현실에서 모든 이들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보여준다. 포기하라. 그러면 편하다. 정작 진짜 필요한 것은 말하지 않으면서 불가능한 현실만을 보여준다.


과연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볼 수 있을까. 그래서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나면 뭔가 남는 것이 있을까. 허튼 통쾌함이라도 그래도 얻는 것이 있을까. 물론 현실에서 열악한 여건에도 주어진 책임을 다하려는 공무원들이 많음은 알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고 바뀌어간다. 굳이 모두가 조장풍일 필요는 없다. 항상 입맛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