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선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이 옳으니까. 그러는 것이 바른 것이니까. 하지만 사람이 악해지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세상이 그러니까. 현실이 그러니까. 내 사정이 그러니까. 한 걸음 떼놓는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핑계들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다.
선이란 어렵다. 그리고 힘들다. 선하기 때문이 때로 손해를 보기도 한다. 더 큰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선하기 위해서 위험도 무릅쓰고 선하려 하기에 억울한 일도 겪게 된다. 하지만 굳이 선하려 하지 않으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손해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더 큰 이익을 거머쥐고 위험도 억울함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겪게 하면 자신은 당장 편할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 그 유리함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악의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백이현의 선을 황석주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단지 그럴 기회가 없었을 뿐인 무지의 결과로 여겼던 것이었다. 위선조차 아니었다. 그래서 너무 쉽게 물들어 버린 것이었다. 세상이 그런 것인 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었다. 세상의 모순이나 부조리 등을 보고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자기가 직접 겪어 아는 것은 아니었다. 온실속의 화초였다. 백가의 막대한 부와 고부에서의 권력에 둘려싸여 자라왔었다. 황석주 역시 명가의 후예라는 배경이 태어나면서부터 그를 감싸고 있었다. 비로소 백가의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고문을 당하면서, 그런 황석주로 인해 참혹한 전장에 던져지고 죽을 위기까지 넘기면서 그들은 비로소 당시의 시대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런 시대였구나. 이런 시대를 살고 있구나. 하지만 같은 시대를 벌써 전부터 함께 뒹굴며 살았던 백이강의 선택은 또 달랐다.
어차피 그런 세상인 것을 안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다른 선택은 없을까. 오히려 백이현보다 세상을 너무나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를 위해 참아야 했고, 아버지였기에 견뎌야 했으며, 동생이었기에 그를 받아들여야만 했었다. 아버지를 인정하지도 거부하지도 못했던 백이현의 모순은 그의 나약함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몸으로 겪으며 알게 된 현실 앞에서 그는 아버지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버지의 길을 가기로 한다. 이미 백이강은 아버지의 길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가려 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이솝우화가 생각난다. 늑대가 이유를 대며 양을 잡아먹으려 하니 양이 논리로써 그를 매번 반박한다. 그러자 늑대는 그냥 내가 배고파서 먹어야겠다며 자신을 논파한 양을 끝내 잡아먹어 버리고 만다. 가진 자의 선이란 항상 그런 것이다. 내가 유리할 때. 내가 편리할 때. 그러므로 내가 안전할 때. 그런 때만 그들은 관대하고 자비로울 수 있다. 그들은 선해질 수 있고 정의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지켜야 할 것이 생겼을 때 그들의 태도는 돌변하게 된다. 백성들을 위해 기꺼이 함께 울 수 있었던 지배자들이 그러나 정작 백성들의 요구가 자신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을 때 주저없이 잔혹한 압제자로 돌변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아직 내가 여유가 있을 때만 신분을 뛰어넘어 중인의 자제인 백이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여유가 있을 때만 아버지로 인해 고통받는 백성들을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고민할 수 있다.
당시 - 아니 어쩌면 거의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서 지배신분들이 보였던 모순들을 백이현과 황석주를 통해 형상화한다. 오히려 어리석을 정도로 단순한 백성의 정의가 백이강을 통해 대비된다. 자신을 천대하고 차별했던 아버지지만 아버지다. 신분 다른 형제지만 자신의 형제다. 그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내던질 수 있다. 그런 동생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 동학에 대해서도 다 아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터무니없이 모르는 것들이 많다. 동학을 믿어서가 아니다. 동학이 만들겠다는 새로운 세상을 믿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도 지금의 세상은 옳지 않으며 바르지도 않다. 잘못되었다.
하긴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도 진짜 똑똑한 놈들은 모두 뒤로 빠져서 출세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똑똑해도 바보같은 사람들만이 어차피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목숨까지 걸어가며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평생 공부만 하던 손으로 기계를 돌리고, 평생 공부만 하던 몸으로 무거운 짐을 지어 나르고. 어떻게든 이 잘못된 세상을 바르게 바꿔야겠다. 그런 때 그들은 항상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그런 것은 너무나 당연하니까. 굳이 말로써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으니까. 말이 많아지면 이미 끝난 것이다. 말이 많아진다는 것은 확신이 사라졌다는 뜻이고, 확신이 사라진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미혹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똑똑한 만큼 자신은 물론 주위까지 속일 수 있는 논리는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싸우는 것은 그만큼 똑똑하지 못한 그냥 바보들이다. 아무리 똑똑해도 끝내 바보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과연 세상은 바보들이 바꾸는 것인가.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였던 '육룡이 나르샤'의 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한 것이 반갑기만 하다. 송자인이 해당 드라마에서 척사광을 연기했던 바 있었다. 그대로 홍대홍이 사부로, 무휼이 제자로 나온다. 조선 건국에 참여했던 이들이 조선말 의병이 되어 등장한다. 이런 재미도 있는 것이다.
구한말 조선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나약한 지식인과 그들의 방향을 잃은 선택들이 백성의 삶과 엇갈린다. 백성들의 고단한 현실과 유리된 그들만의 선과 정의가 어떻게 변질되고 타락해 가는가. 어떻게 세상은 더욱 악에 물들어 가는가. 그리고 지금은 과연 당시와 얼마나 다른가. 당시의 사람들과. 불쾌한 진실이다.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두꽃 - 혼란한 시대를 사는 군상들을 위해 (0) | 2019.05.25 |
---|---|
녹두꽃 - 각설이 타령과 겹쳐 들리는 5월의 노래 (0) | 2019.05.19 |
더 뱅커 - 강삼도의 마지막 선택, 인간이 악해지는 이유 (0) | 2019.05.17 |
더 뱅커 - 강삼도와 이해곤과 한수지의 대한은행 (0) | 2019.05.16 |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 우도하의 계획과 최서라의 아지트를 찾아낸 조진갑 (0) | 2019.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