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7년만에 블소를 접고, 온라인 게임과 나

까칠부 2019. 6. 21. 12:15

게임에 대해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시간을 들이거나, 돈을 쓰거나, 아니면 마음을 비우라.


당연히 더 오래 더 열심히 게임하면 그만큼 보상이 뒤따를 것이고, 안되면 그만큼 돈을 쓰면 비슷한 결과가 있을 것이고, 이도저도 아니면 걍 마음을 비우고 게임을 즐기기만 하라.


게임할 시간이 부족해진 것은 꽤 오래 되었다. 재작년 직장을 옮기면서 게임할 시간은 줄어들었고, 그런 와중에 운동까지 하게 되며 부족한 시간은 더 부족해지고 말았다. 거의 대부분 접속보상이나 받으려고 켜놓기만 하는 경우가 늘었다. 심지어 새로운 인던이 나와도 그 공략동영상을 볼 시간조차 없을 때가 많았다. 당연히 신규인던에서 몇 시간이나 헤딩하는 건 아예 불가능.


그러면 돈이라도 써야 하는데 솔직히 아무리 게임을 좋아해도 그렇게까지 돈을 쓰며 게임을 한다는 건 그리 썩 내키는 일이 아니다. 어차피 한 방에 고스펙 갈 수 없다면 어설프게 돈 써봐야 만족도도 그리 높지 않다. 돈 쓰며 게임하는 사람들 보면 단위부터 다르다. 차라리 이렇게 돈쓰며 게임하느니 그 돈 가지고 컴퓨터 업그레이드해서 스팀게임 사서 더 다양하게 즐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래도 그동안 해 온 시간이 있으니까. 딱 도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심리가 이것이다. 그동안 쏟아부은 시간과 돈이 있으니까. 그만큼 이루어 놓은 것들이 있으니까. 더이상 게임에 시간도 돈도 전처럼 쓰지 못하며 거의 정체된 상태에서도 캐릭터 스펙만 놓고 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 상위권은 되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그것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말했듯 신규인던 나와봐야 그것 공략동영상 찾아보고 인던에서 헤딩할 시간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냥 의미없이 시간만 끄는 것이다. 그래도 다시 전처럼 열심히 하게 되는 때가 돌아오지 않을까 막연히 그저 시간만 끌며 기다린다.


그러다가 결국 지난주 한계가 오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기존의 게임도 따라가기 버거운데 새로운 패치가 나왔다. 상당부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이것까지 내가 따라가야 하나?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바로 며칠전 이미 익숙한 인던임에도 너무 오랜만이라 몇 번이나 실수한 끝에 중간에 그만두고 나온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아, 이제는 더이상 못하겠다. 그만두어야겠다.


문제는 바로 며칠 전 멤버십을 결제했다는 것인데. 그냥 접자니 돈이 아깝다. 그래서 아이템베이에 딱 이번과 저번에 쓴 돈 만큼만 받고 계정에 있는 모든 돈되는 것들을 팔아치우려 올리고 말았다. 아마 지금 들어가면 껍데기만 남아 있을 듯. 하지만 게임 프로그램까지 모두 지워 어찌되었는지 알지도 못한다.


결국 깨달은 것은 어지간히 깊이 빠져들지 않고서는 일상과 온라인게임을 병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팩키지 게임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내 시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시간에 맞춰야 한다. 게임서비스를 운영하는 측의 시간에 맞춰 플레이해야지만 게임이 주는 모든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또 하나 게임을 접어야겠다 결심하게 된 계기가 바로 오후 10시부터 시작하는 사슬군도 이벤트였다. 이것 끝내고 나면 자는 시간이 늦어지는데 그러면 다음날 출근에 큰 지장을 받게 된다. 덕분에 지금도 수면리듬이 깨지며 수면부족으로 고생하는 중이다. 항상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하기에 한 번 수면리듬 흐트러지면 타격이 크다. 내가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나를 플레이하는 것이다.


2년 동안 시간을 낭비한 꼴이 되었지만 결국은 운동한 덕분에 온라인게임도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이래서 내가 도박같은 것 하면 안되는 것이다. 미련이나 집착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그건 맞고나 포커 등으로도 이미 확인한 바가 있다. 그래도 한 번 접기로 마음먹으니 그로부터는 일사천리. 그를 위한 시간이었다 생각한다. 원래 블소 자체가 온라인게임으로는 거의 처음이다시피 했고. 이전에 했던 게임들은 오픈베타 때 몇 달 잠깐 즐기는 것이 전부였다. 진짜 차라리 블소에 쓸 돈으로 컴퓨터 업그레이드하고 최신게임 즐겼으면 어땠을까?


지금 다음달 AMD에서 새로 CPU나오는 것만 기다리는 중이다. 막 블소 접었다고 그래픽카드와 램이 몇 개 사망하며 컴퓨터노 오늘내일하는 중이다. 내장그래픽 쓰고 있는 중인데 화면에 점이 점점이 박힌 것이 이것도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위쳐도 추억을 더듬으며 3까지 모두 구입해 다운받은 상황인데.


아무튼 처음 엔씨에서 했던 약속이 직장인들이 그냥 부담없이 잠깐 시간내서 할 수 있는 게임이었을 텐데. 그래서 처음에는 캐시템도 없었다. 열심히 인던에 들이받아서 아이템도 일일이 장만해야 했었다. 아니면 그보다 못하지만 조금 시간을 들여 얻을 수 있는 아이템도 있었다. 이제는 인던에서 얻어야 하는 아이템을 캐시로, 그리고 심지어 이벤트로 마구 풀어댄다. 어쩌면 이게 가장 클 것이다. 반드시 상위인던에 일찍부터 도전해야 할 동기가 사라졌다. 그냥 이벤트 기다리거나, 기다리기 싫으면 돈을 쓰거나. 게임할 이유가 사라지고 만다.


일주일 지났다. 확실히 시간에 쫓기지 않는 것은 좋다. 반드시 접속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에는 반드시 게임에 접속해 있어야 했다. 하는 건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전과 일상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시간의 여유 같은 건 그리 없다. 그 모순이 그동안 게임과 나 사이의 관계다.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