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라인더가 있으면 커피 원두를 살 때 선택지가 넓어진다. 특히 인터넷으로 구매할 경우 원두상태로 파는 쪽이 종류도 많고 가격에서도 훨씬 유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일일이 원두를 갈아 커피를 타먹은 건 너무 귀찮게만 여겨진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너무 쉽게 커피를 고른 때문이었을까?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하며 결국 분쇄되지 않은 원두상태의 커피를 배송받고 말았다. 배송받고 더구나 봉투를 뜯고서야 깨달았다. 아, 이거 그냥 원두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고 걍 분쇄기를 사야 할까? 지금 내 옆에 분쇄기가 있는 이유다.
의외로 재미있다. 커피를 통에 채우고 드라마나 유튜브를 보면서 아무 생각없이 손잡이를 돌려주면 알아서 곱게 가루가 되어 아래 모인다. 평소 먹던 콜드브루도 병 두 개에 가득 채워 담아두고, 그리고 괜히 한 번 더 커피를 더 곱게 갈아서 냄비에 끓인다. 터키커피를 끓이는 용기따위 집에 있을 리 없다. 그냥 커피 물 끓일 때 쓰는 작은 냄비에 커피가루를 넣고 팔팔 끓여준다.
아주 독하다. 그런데 또 내 취향에 맞는다. 내가 커피를 독하다 싶을 정도로 진하게 마시는 이유를 최근 깨달았다. 아메리카노를 싫어하는 이유와 같다. 커피가 옅어지면 그냥 쓴 맛만 강하게 난다. 그런데 커피가 진해지면 그보다 더 다양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한 풍미 가운데 특히 신 맛을 나는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원두들을 시험해 보면서 특히 마음에 든다 여겼던 원두들이 바로 이 신 맛이 강한 원두들이었다. 요즘 즐겨 먹는 것은 그래서 콜롬비아 쪽 원두다. 터키 커피도 덕분에 신맛이 매우 강하게 느껴진다.
순전히 실수로 인한 스노우볼이었던 셈이다. 원두를 잘못 주문하고, 괜히 원두를 버릴 수 없으니 분쇄기도 새로 사고. 새로 산 분쇄기가 커피원두보다 더 비싸다는 것은 안함정. 그렇게 커피의 세계는 더 깊어만 간다. 터키 커피는 앞으로 자주 끓여먹어야 할 것 같다. 도구를 사야 할까?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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