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 윤종우의 폭주와 문 너머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

까칠부 2019. 9. 30. 07:22

고양이는 깊이 잠들지 못한다. 야생에서 고양이와 같은 작은 동물이 잠든다고 외부의 작은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 자칫 그 순간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귀를 쫑긋거리며 혹시라도 누군가 가까이 다가가면 바로 눈을 뜨고 쳐다본다. 그나마 낫다. 그 눈에 비친 것이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라면.


사람이 관대해질 수 있는 것은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양보하고 허락해도 자기에게 피해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있는 집 자식에 사업체까지 거느린 선배이자 사장 신재호는 윤종우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신재호 앞에서 윤종우는 겁먹은 짐승처럼 사나워진다. 분노가 아니다. 공포다. 바로 눈앞의 신재호가 자신의 사랑까지도 빼앗아갈지 모른다는 공포.


박병민이 윤종우에게 가혹했던 이유였다. 두려웠던 것이다. 두려운데 만만하다는 모순된 감정이 윤종우에 대한 가혹함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우위에 있다. 자신이 상사이고 선배다. 자신은 정규직이고 윤종우는 이제 갓 인턴이 되었다. 자신이 학교 다닐 적 당했던 그대로. 벌써 크게 성공해서 부와 사회적 지위, 명예를 모두 얻은 사람이 쉽게 자신을 잃고 다른 사람에 가혹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인 것이다. 아직 의식이 자신의 성공을 따라오지 못한 때문인 것이다. 아마 박병민은 평생 그렇게 쫓기며 두려워하며 자신을 불쌍히 여기며 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박병민이란 윤종우의 또다른 자신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불쌍히 여긴다. 그런 자신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소연하고, 그래서 소리지르고, 그러다가 폭력에 자신을 맡기기도 한다. 어느새 모든 것이 하찮아진다. 왜 그렇게 악착같았을까. 왜 그렇게 필사적이었을까. 그냥 놓아버리면 편해지는 것인데. 그나마 의지할 폭력이라도 있으면 거기에 기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돈이 있으면 돈이 그 역할을 할 것이고, 지위가 있으면 지위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그런 자신을 연민하면서, 세상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알아주지 않는 이들을 혼자서 원망한다. 아무나 열고 그 안을 볼 수 있는 좁은 방안에서 무엇도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는 공포에 홀로 떨며 그렇게 적의로써 자신을 지키고자 한다.


그러니까 패배자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낙오자들인 것이다. 사회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혹은 심리적으로든. 그래서 그들은 주변으로 내몰린다. 스스로 주변으로 흘러든다. 그곳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든다. 세상의 많은 소외된 이들의 공간이 자칫 모든 죄와 악이 모여 고이는 공간이 되어 버리는 이유다. 그곳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자신들이 세운 자신들만의 룰이다. 세상과는 다른.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는.


서재호가 살해당할 때 윤종우가 조심스럽게 여는 문과 서문조에 의해 열리는 문이 교차되는 연출은 그런 점에서 매우 탁월한 것이었다. 때로 문이란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이면서 더불어 타인에 의해 언제든 허무하게 열릴 수 있는 무력한 존재이기도 하다. 문만 믿고 마음놓고 있다가는 언제 어느때 누군가에 의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 지 모른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근원적인 공포다.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 지 모른다는 것. 무언가가 그 문을 넘어 자신을 해할 지 모른다는 것. 그래서 그래서 곤두서있고 그래서 날카롭고 그런 자기연민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가난한 사람들이 인정도 많고 착하다는 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그럴 수 없다. 물리적으로 절대 그러기 힘들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다. 도덕과 윤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자신을 지켜줄, 그래서 기댈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하다. 아무것도 없는 이들에게 남는 것은 말 그대로 악 뿐이다. 오로지 악만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 어느 외딴 고시원처럼. 사람들에게 잊혀진 어두운 골목처럼. 절망은 그래서 항상 악을 품고 있다.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음을 알게 된 윤종우는 자포자기하고, 그런 윤종우를 쫓으며 서문조는 서재호를 살해한다. 경찰이 에덴고시원 턱밑까지 다가온 가운데 서문조를 뒤쫓던 기자와 4층을 살피던 젊은 신입이 저들의 함정에 걸려들고 만다. 타인이 지옥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이 지옥인지 모른다. 공포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