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 - 절벽 끝에 선 삶의 절박함과 현실의 가혹함

까칠부 2019. 10. 4. 17:06

아름다운 이야기다.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서 희생되는 이가 없도록 하자. 하지만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뭐라도 있어야 양보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얼마인지 액수는 나오지 않지만 중소기업 월급이라는 게 사실 뻔하다. 차장 달고 부장 달고 직급이 오르고 월급도 올랐을 테니 괜찮지 않겠는가. 당장 아내 병원비 때문에 집과 차를 팔아야 하는 유진욱의 처지를 보라. 그동안 결혼을 했으면 아내가 있을 테고, 아이를 낳았으면 또 상당히 자랐을 것이다. 집이라도 장만했으면 모두 자기돈으로 샀을 것인가.


당장 생활비에, 대출금에, 아이들 학비에, 그리고 장래를 위해 어느 정도 저축도 해 두어야 한다. 아직 젊은 이선심이야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크게 돈 들어갈 일도 거의 없을 테지만 오히려 연차가 되고 직급이 오른 만큼 당장 들어오는 수입에 대한 절박함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괜히 평생 데모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쫓겨나지 않겠다고 공권력과도 맞서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당장 회사에서 밀려나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길바닥에 나앉아 굶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바로 눈앞에 펼쳐질 현실의 공포가 그들을 그런 극단으로 내몰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들을 밀어내야 하는 남은 동료들 역시 독해질 수밖에 없다. 어제까지 형님아우하던 사이에서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여야 하는 적으로 돌변하고 만다.


그냥 몇 사람 정리해고되어 나가면 해결될 문제인 것이다. 당장 내가 그 대상이 되기까지 굳이 알량한 자신의 급여까지 양보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모두가 살자고 그 알량한 금여까지 양보했다가는 오히려 자신의 삶이 위협받을 수 있다. 최저임금인상으로 온나라가 떠들썩한 이유다. 모르긴 몰라도 저 청일전자에도 최저임금에 그저 수당 좀 추가해서 받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공장노동자 가운데 특히 기혼여성들이 적잖이 보이고 있는 것일 터다. 60대 이상 노인 다음으로 값싼 노동력이 바로 이들 기혼여성들이다. 하긴 대기업에서도 대부분 최저임금에 수당만 이것저것 붙여서 귀족으로 만들어주는 수준인데 하물며 청일전자같은 중소기업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거기서 뭘 더 줄일 수 있을 것인가.


말 그대로 절벽끝에 선 이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물러서서 손을 내밀라고 하는 요구와 다름아닌 것이다. 야박한 듯 보이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벌써부터 TM전자와 내통해 왔던 하은우마저도 마냥 배신자라며 욕할 수만 없는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닌 TM전자다. 모두가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대기업인 것이다. 그런 곳에서 손을 내밀어 온다. 그것은 이선심이나 송영훈 등이 회사에서 저지른 소소한 횡령과도 닮아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면 그래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되는 곳에서는 그래도 된다. 삶이란 전장이다. 고도의 문명을 이룬 지금도 인간은 전쟁과도 같은 야만의 경쟁 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는 갑이 되고 을이 되며, 그런 가운데 갑과 을로써 자기만의 생존방법을 터득해 간다. 배신도 할 수 있다면 그 한 방법일 수 있다. 횡령조차 그럴 수만 있다면 그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법과 윤리가, 도덕이 그런 것을 강제하여 금지한다. 그렇게 모두가 절박하다고 필요하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은 살벌하기 전에 너무나 슬퍼질 테니까.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생존에 대한 절실함은 인간을 더욱 가혹하게 잔인하게 냉정하게 몰아간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건 그래서 너무나 고귀한 행동인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다면 그런 행동을 모두가 추앙하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 유쾌한 코미디인가 하고 기대하고 봤다가 이내 우울한 현실을 곱씹으며 불편하게 보게 된다. 특히 대기업과 협력사라는, 현실에 존재하는 갑과 을의 관계가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의 입장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그런 가혹한 현실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러나 인간적인 모습을 잃지 않으려는 군상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그래서 미쓰리인 것이다. 자신들의 욕망과 충동을 강제로 억누르는 존재가 사라졌을 때 드러나는 솔직한 인간의 본모습인 것이다. 그렇게 날 것의 모습으로 그들은 서로 부딪히며 어우러져간다.


누구도 선하지 않다. 순결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그래서 기대하는 그린 듯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없다.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악다구니를 쓴다. 오히려 그래서 더 순수해 보이기도 한다. 한 점 가식없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그 전에 누군가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절실하고 절박한 사람들의 삶이 보인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을 보며 도덕적인 훈계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인간의 본모습인 것을.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것도 아마도 인간이어서가 아닐까. 드라마처럼. 아직은 우울한 이야기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