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면 그 무렵 나 역시 비슷하게 입버릇처럼 내뱉고 있었다.
"뭐 저런 인간들이 다 있냐?"
아마 그 사람들 역시 나에 대해 비슷하게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상했다. 상식에서 벗어나 있었다. 저 사람들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저런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말아야지. 좋은 사람들 하고만. 괜찮은 사람들 하고만. 이웃이라고 인사하고 음식 나눠먹고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외로 보고 흘겨 보고 돌아서서는 서로 비웃고 욕한다.
"도대체 왜 저러고 살까?"
달리 말하면 저러고 살 걸 왜 사는 것일까?
고시원 주인 엄복순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좋은 사람들'이란 그런 의미가 아닐까. 서문조가 유난히 윤종우에게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좋은 사람들하고만 어울리고 싶다. 좋은 사람들만 주변에 남기고 싶다. 그래서 오래전 외국인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겠다고 그런 사람들이 살던 동네를 부수던 때가 있었다. 고단한 삶을 누이던 좁고 가파른 계단이 있던 그곳에 어느새 번듯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정상적인 삶이 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삶과 그런 사람들만 남긴다. 얼핏얼핏 스쳐지나듯 드러나는 엄복순의 과거 삶을 보면 그녀 역시 그렇게 밀려나고 배제된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단지 부모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이 아니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부모를 잃고, 혹은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혹은 부모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정상이 아니라며 어떻게든 밀어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부모 모두가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다면 한국인 사회에 어울리기 힘들다. 그들이 보편의 윤리와 거치를 거부하기보다 보편의 윤리와 가치가 먼저 그들을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좋은 사람들만 남겨 그런 좋은 사람들과만 함께 살아가려 한다.
살의라기보다는 혐오에 가깝다. 악의라기보다 유희에 가깝다. 이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정상에서 벗어나 있기에. 자신들이 세운 정상의 기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기에. 비정상을 바로잡는 것이다. 차라리 치료나 교정에 가깝다. 서문조가 마치 치과의사로서 치료하듯 희생자들의 이를 뽑는 장면은 그를 빗대고 있을 것이다. 예술이라고까지 말한다. 단지 정상적인 아름다운 인간만 남기기 위해서. 그런 인간을 가까이 두기 위해서. 그런데 과연 그들만일 것인가? 평범한 일상인처럼 보이던 윤종우가 어느새 그들을 닮은 표정을 짓는다. 윤종우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로 인해 미쳐버린 것일까? 그도 아니면 단지 그것이 일상인이라 여겼던 수많은 개인들의 감춰진 본모습인 것일까?
드라마를 보는 감상이 남다른 이유는 그만큼 경험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서 자란 곳이 그랬었고, 막 사회에 나와 살았던 곳도 비슷했었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런 만큼 예민하고 사나워진다.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혐오하며 두려워할 수 있는가를 겪어 보았었다. 제목이 딱 어울린다. 이건 그냥 타인이 만들어낸 지옥도다. 타인이란 존재로 인한 마음의 지옥이다.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타인으로 인한 지옥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가끔 미쳐 날뛰며 불특정한 다수를 향한 적의를 드러내는 것도 그런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지옥도일 것이다. 그런 일상들을 고시원이란 좁은 공간에 가두고 정제해낸다.
거의 마무리단계에 들어선다. 고시원의 정체를 경찰들이 쫓고, 서문조는 윤종우의 여자친구를 납치한다. 고시원 사람들 사이에도 서로에 대한 증오와 멸시를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지옥이 지옥을 부르고 지옥이 지옥을 만든다. 그 끝에는 과연 구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개인적으로 아니라 보지만.
서서히 미쳐가는 윤종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임시완의 연기가 드라마가 가지는 광기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주인공으로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이동욱을 비롯한 조연들의 연기 또한 말할 것 없이 일품이다. 기분이 나쁘다. 원래 기분나쁘자는 드라마다. 오래전 기분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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