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블랙독 - 교사와 계약직의 경계에서, 교사의 학교를 그리다

까칠부 2020. 1. 1. 07:08

나 역시 계약직이다. 다행히 이제는 무기계약이라 딱히 잘릴 걱정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다만 덕분에 오가는 사람들에 상당히 무심하다. 언제 그만둘 지 모르고, 실제 어느날 출근하지 않으면 다른 길을 찾았구나 여기고 잊고 만다. 더구나 외주용역이라 일하는 곳과 소속까지 달라서 원래 남의 식구겠거니 일부러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고하늘이나 기간제 교사들의 이야기가 더 피부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의 초반은 교사와 학교의 이야기라기보다 계약직이 갖는 전반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듯 보였다. 소속된 구성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상관없는 남도 아닌 애매한 경계의 존재 같은 것이다. 굳이 열심히 해야 할 필요도 없고, 그러나 일이기에 또한 자신을 위해서도 열심히 하고 싶은. 열심히 한다고 보상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지만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자신과 동료들을 보기에도 부끄럽고 민망하다. 그럼에도 차라리 거침없이 들이받을 수 있는 것은 아마 열정이고 용기일 것이다. 진정 하고 싶은 일이라 그런 것일 터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었다면 상처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


말한 그대로다. 어차피 남의 일이다. 내 일이 아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면 편하다. 오는 사람도 언젠가 가겠거니, 이미 가버린 사람도 제 갈 길 찾아 갔겠거니,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는 그들처럼 내 갈 길을 찾아가지 않을까. 더 열심히 할 일도 더 깊이 들어갈 일도 없다. 사실 그게 맞다. 너무 열심히 해봐야 피곤하기만 하다. 하지만 교사니까. 교사가 되고 싶어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 왔을 테니까. 그러다가 어느새 지쳐버린 이들이 있다. 지쳐서 그마저 잊어버리고 마는 이들이 있다. 비난할 수 없다. 현실이 원래 그렇다. 하지만 아직 열정이라는 것이 마르지 않았기에 그렇게 열심일 수 있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블랙독일까?


원래 윗사람이 편하면 아랫사람이 힘들다. 거꾸로 아랫사람이 편하면 윗사람이 힘들다. 하지만 그냥 내가 다 알아서 하는 것은 말했듯 언제 나가서 안 돌아올 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빈 자리가 생기면 감당하기 힘들다. 언제 나가더라도 상관없도록 남아 있을 사람들이 알아서 대부분을 책임진다. 그건 일반 직장의 이야기다. 학교다. 교사다. 학생들의, 어쩌면 졸업한 이후의 삶에 대해서까지 책임져야 하는 위치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교사로서 학생들에 대해 더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전에 생활인으로서 교사끼리의 편리함이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쉽고 더 편하고 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


역시 경계다. 교사이면서 교사가 아닌 기간제와 같은 전통적인 스승과 현실의 생활인 사이의 경계가 고하늘을 짓누른다. 현실의 교사들은 대부분 생활인에 가깝다. 직업이기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다. 굳이 학생들을 위해 더 많은 수고를 하고자 하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내가 더 쉽게 일하기 위해서. 물론 나름대로 교사로서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냥 열심일 수만 없는 것이 사람이기에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선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공유한다. 그것이 문화가 되고 관행이 되고 상식이 된다. 우리는 교사로서 여기까지만 하면 된다.


학생들의 진학에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라리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을 고수하려 편법을 찾는다. 그 안에서도 또다시 편법을 찾아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한다. 인간은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다. 그리고 게으른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것이 원래 인간이란 존재인 것을. 그런 점에서 교사들에게 스승을 바란다는 것은 얼마나 넘치는 기대인가. 그런 점에서 드라마는 차라리 스승이라기보다는 교사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윤리를 이야기하려는 듯하다. 그래서 과연 스승 이전에 직업인으로서 교사에게 주어진 책임이란 무엇인가.


정교사가 되기 위해서. 진짜 쌤이 되기 위해서. 그러면서 자신이 꿈꿔 온 교사의 이상과 현장에서의 현실이 가지는 모순의 경계를 조금씩 헤쳐간다. 확실히 학원드라마로서는 독특하다.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이 주인공이다. 사실상 거의 학생은 등장하지 않는다. 학교라는 현장에서 교사들이 마주하는 현실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려는 듯하다. 과연 고하늘은 자신의 이상과 현실을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무책임하고 때로 이기적인 교사들의 모습이란 그들이 교사로서 부적격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생활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직업이 필요해서 교사를 하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직업이 필요한 이들이다. 그래서 균형은 필요하다. 그를 위한 여정일지 모르겠다. 대단한 것을 이루기보다 그런 현실의 한복판에 서기 위해서. 현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