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이란 결국 승진과 월급일 것이다. 오래 열심히 일한 만큼 직급도 높아지고 월급도 따라 올라간다. 내가 어느 정도 직급에 얼마의 월급을 받는가는 그동안 자신이 열심히 일한 만큼의 보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고보면 프로스포츠 선수란 연봉 높은 계약직에 지나지 않는다. 매년 계약을 맺어야 하고 계약을 맺을 때마다 급여도 조건도 달라진다. 대부분 계약직이 그런 것처럼 당장 재계약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받게 되는 연봉이야 말로 자신이 그동안 열심히 해 온 시간들의 보상일 수 있는 것이다. 연봉이야 말로 선수로서 자신의 보람이며 증명이다. 연봉이 터무니없이 깎이자 바로 은퇴를 결심하게 되는 이유도 그것이다. 과연 이 돈을 받고서도 자기는 계속 야구를 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어쩌면 백승수 단장에게 가장 어렵고 힘든 미션이 될 것이다. 패널티까지 주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한 푼이라도 더 받고 싶은 선수들에게 총액 30%의 인하를 납득시켜야 한다. 선수를 줄이든, 아니면 선수가 받는 연봉을 줄이든. 이미 코칭스태프와 프론트에서는 더이상의 방출은 불가하다 결론내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연봉을 줄이는 것인데 아무리 꼴찌팀이라고 나름대로 자기 실력에 자부심도 있는 선수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것인가. 경기를 뛰는 만큼 부상도 늘고 언젠가 은퇴하고 난 뒤를 생각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당장 연봉을 줄이자고 하면 어떻게 순순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이것은 사실상 구단주 역할을 하는 권경민의 백승수를 상대로 한 게임이자 미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로 이 정도는 해야 구단주이자 자신의 고용주인 회장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들어가는 비용을 더 줄이고 그럼에도 더 나은 성적을 거두어야 야구단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권일도 회장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소한 인수할 구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은 단장들이 그만한 깜냥이 되지 않아 미루고 있었는데 백승수의 능력이 진짜라면 한 번 노려봐도 괜찮을 것이다. 만일 백승수마저 안된다면 그때는 고세혁에게 단장을 맡기고 회장의 의도대로 팀을 해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말하자면 권경민 나름의 도박일 것이다. 야구단을 어떻게든 해체하고 싶어 하는 회장과 사실상 자신의 책임 아래 있는 야구단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과 조화를 이룰 것인가. 드림즈가 자신이 생각한대로 일신할 수 있다면 어쩌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고, 아니라면 결국 회장의 뜻대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백승수를 믿고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정확히 백승수를 믿는다기보다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험하는 것이다. 백승수가 자신의 시험을 통과한다면 자신의 도박은 성공하는 것이고, 아니라면 단지 결단의 시간만 빨라지는 것이다. 우승과 해체라는 모순된 경력을 가진 백승수를 새로운 단장으로 선택한 이유였다. 팀을 일신해서 우승을 거두거나, 아니면 이대로 해체해 버리거나.
어쩌면 권경민이야 말로 이 드라마 있어 가장 중요한 키를 쥔 중심인물이라 할 수 있다. 백승수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며 미션을 부여하고, 그 미션에 따라 드라마의 결말을 결정짓는다. 쉽지는 않다. 당연히 쉽지 않아야 한다. 만년 꼴찌에 비인기 구단인 드림즈가 이미 해체를 결심한 구단주의 뜻을 거슬러 살아남으려면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안된다. 그 의지를 한 편으로 운영팀장 이세영이 보여준다. 어떤 선입견 없이 오로지 드림즈라는 팀만을 위해 백승수와 하나가 되어 어떤 수고도 마다치 않는다. 심지어 단장 백승수를 모욕하는 포수 서영주를 향해 술잔을 던지는 과격함까지 보여준다. 팀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결국은 백승수만이 아닌 프론트 전체의 의지다. 나아가 선수단 전체의 의지다. 승리할 의지가 있는가. 팀의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할 의지가 그들에게 있는 것인가. 팀을 일신하기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고 누군가는 양보해야만 한다. 그럴 수 없다면 팀은 사라지고 만다. 그 중심에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단장과 앞만 보며 두려움 없이 달릴 수 있는 운영팀장이 있다. 다른 직원들의 의지는 아직 확인 불가다. 아직은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자체를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베테랑 장진우의 고민은 또한 프로선수가 아닌 수많은 개인들도 가지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이대로 계속 이 일을 해도 괜찮은 것인가. 나이를 먹을수록, 그래서 기회가 적어질수록 지금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민은 깊어진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면 더욱 다른 길에 대한 고민도 늘어간다. 그럼에도 그들의 운명까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 리더로서 가지는 가혹할 정도로 무거운 책임인 것이다. 누군가는 쫓겨나고, 누군가는 밀려나고, 누군가는 좌절과 절망에 빠지더라도 그러나 누군가는 그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매번 쉽지 않다. 만년 꼴찌에 그동안의 관행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그대로 세습되고 누적되어 온 결과일 것이다. 흔히 그런 것들을 두고 적폐라 부른다. 적폐가 적폐인 이유는 그만큼 저항 또한 거세기 때문이다. 사람좋은 얼굴로 가식적인 웃음만 짓지 않는다. 드라마의 미덕이다. 반드시 야구를 좋아해서만 드라마에 빠져드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그런 무거운 짐을 진 만큼 그의 배경이야기가 궁금하다.
어떻게 권경민과 결탁한 고세혁의 훼방을 백승수는 이겨낼 것인가. 권경민이 준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해내야 한다. 한 주를 더 기다려야 한다. 매번 이전 이야기를 잊게 된다. 마약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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