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설날에 떡국을 끓여먹게 된 이유

까칠부 2020. 1. 25. 00:20

이건 사실 연식이 좀 되어야 바로 이해가 될 부분일 것이다. 불과 수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냉장고라는 것이 거의 드물었었다. 나 역시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부엌 한 켠에 원도어 냉장고가 놓이는 것을 겨우 보았을 정도였다. 그러면 그 전에는 어떻게 음식들을 저장했을까? 말렸다. 그리고 얼렸다.


겨울은 저장식품을 만들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한국의 겨울은 춥기도 오지게 추운데 건조하기까지 하다. 말 그대로 동결건조가 가능한 조건이다. 그래서 겨울이 오기 시작하면 처마에 우거지며 시레기를 말린다. 곶감도 그래서 가을부터 말리기 시작한다. 햇볕에 말리는 것과 다른 기제다. 영하의 낮은 온도와 습도가 거의 없는 건조한 날씨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동결건조된 저장식품으로 만들어준다.


떡은 예로부터 아주 요긴한 비상식량이었었다. 집안에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가장 먼저 떡과 엿부터 챙겼었다. 떡매로 찧어 말린 떡은 꽤 오랜기간 보관이 가능하다. 심지어 겨울에 잘 말려 놓으면 봄이며 심지어 장마철까지도 곰팡이만 걷어내면 그럭저럭 불에 굽거나 물에 끓여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떡에 피는 곰팡이도 더구나 그렇게 사람에게 해로운 종류가 아니다. 실제 내가 어렸을 적 거의 4, 5월이 되어서도 곰팡이 핀 말린 떡을 굽거나 끓여서 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 정도면 예전이면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일본에도 카가미모치라는 것이 있었다. 정월이 되면 딱을 찧어 딱딱하게 말려 굳힌 뒤 제단 위에 올리는 것이다. 그 떡을 일본에서는 석쇠에 구워 먹고 있었다. 멀리 몽골에서도 고기를 바짝 찬 바람에 말려서 보르츠라는 저장식품을 만들고 있었다. 어쩐지 하나로 이어지지 않는다. 가을이면 추수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거둬들인 쌀로 겨울이면 고두밥을 지어 떡매로 찧은 뒤 뭉처 떡을 만든다. 메마르고 추운 겨울날씨에 떡은 아주 단단하게 잘 말라 굳어졌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들을 챙겨서 전장으로 나선다. 아무것도 없는 전장에서는 그저 불과 뜨거운 물만 있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떡은 매우 요긴한 식량이었을 것이다.


어째서 한국의 가래떡은 긴 모양인 것일까. 이탈리아에서 파스타가 발달한 이유도 아무래도 밀을 반죽해서 길게 뽑아 놓는 쪽이 보관에도 운반에도 훨씬 유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가래떡을 생긴 그대로 그냥 밧줄로 묶어만 놓으면 아무 수레에나 던져 싣고 운반하기에 무척 편했을 것이다. 수레에 싣기 어려우면 병사들이 등에 짊어지면 된다. 그렇게 길게 뽑아 놓은 떡을 먹을 때 쯤 얇게 썰어 뜨거운 물에 익힌다. 아마 다른 재료 없이 떡만 뜨거운 물에 익혀서 훌훌 불어 먹어도 하루 열량 정도는 어떻게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냥 일본의 카가미모치와 몽골의 보르츠를 보면서 떠올린 생각이다. 굳이 겨울에 떡을 찧고 가늘게 뽑아 모양을 만들어야 할 다른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굳이 그것을 얇게 썰어서 국을 끓여야 하는 이유 역시. 5월 다 되어서 곰팡이 핀 인절미를 곰팡이만 떼어내고 불에 구워 먹었던 기억도 한 몫 한다. 과연 실제는 어땠을까. 그런 건 학자의 영역. 여기까지는 상상의 영역이다.


생각보다 말린 가래떡이 꽤 오래 보관된다. 아주 단단하게 말린 가래떡은 거의 흉기 수준이다. 그런데도 불에 굽거나 물에 끓이면 쫀득쫀득 흐물흐물 잘도 먹기 좋게 풀여준다. 예전 군인들 전투식량이 떡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는 관계로. 너무 열량이 높아서 다이어트 할 때는 떡을 삼가게 된다. 다이어트의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