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부활 - 사랑

까칠부 2010. 3. 16. 03:14

 

16

 


 

 

사랑 - 부활


사 랑

사랑이었던걸 모르고 만났었다면 헤어진 후 느끼게 된다고
시간이 흘러서 보고 싶어질 쯤 아픔이란게 찾아오고
알수 없는 그 어느 날에 그리움이 다가오고
돌아가려 해보면 이미 멀어져가는 슬픈 얘기가 만들어지고
고마워요 내 마음속에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와줘서
지쳐가던 시간에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일어설수 있게 해준 그대
알수 없는 그 어느 날에 외로움이 다가오고 돌아가려 해보면
이미 멀어져가는 슬픈 얘기가 만들어지고
고마워요 내 마음속에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와줘서
지쳐가던 시간에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일어설수 있게 해준
사랑해요 기억이 나요 언제나 간직할 수 있었기에
너무 늦었지만 너무 몰랐었지만 사랑이란걸 알게 해준
고마워요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살아와줘서 고마워요

가사 출처 : Daum뮤직

 

 

사랑이라는 감정이 더 절실해지는 것은 아마도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서가 아닐까. 사랑하는 동안에는 사실 잘 모른다. 너무나 당연하다 보니 그에 대해 깊이 생각을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은 도리어 사랑이 불안해지면서부터다. 더 이상 싸우지도 다투지도 않고, 응석도 투정도 부리지 않는 것은 헤어짐을 예감하면서부터다. 불안해지고 초조해지고 두려워지면서 그제야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게 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떠나버린 그 빈 자리가 얼마나 큰가를 알고서야 그제야 그것이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상실감과 공허감은 아픔으로 다가오고. 그리고 시간은 다시 그 상처를 보듬어 치료해준다.

 

그러나 솔직히 모르겠다. 과연 얼마나 사랑해야 시간이 흐르고서 그 헤어진 사랑을 고맙다 말할 수 있을까. 이미 헤어진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나로서는 한 번도 닿아 본 적 없는 감정이라.

 

그런데 부활의 음악을 처음부터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샌가 깨닫고 만다. 깨닫기 전에 느끼고 만다. 이렇게까지 사랑하고 나면 사랑의 아픔마저도 오히려 고맙게 여길 수 있으리라. 사랑했다는 그 기억마저도 사랑할 수 있다면 그조차도 진심으로 고마워할 수 있으리라.

 

처음 듣고서 김태원이 미쳤구나 싶었다. 이건 돈 벌기 포기한 노래라고. 대중가요가 아니었다. 대중가요란 통속성에 기반한다. 너무 앞서나가서도 안되고 너무 뒤쳐져서도 안된다. 너무 곁길로 가서도 안 된다. 대중의 정서에 - 그보다는 욕망에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랑에는 그런 게 없었다. 과연 헤어지고 나서 헤어진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머리로가 아닌 감정으로서 그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란 또 얼마나 될까. 더구나 대중음악의 주소비계층인 10대와 20대에서.

 

시간에 시간이 흐르고 아픔마저도 퇴색하고 사랑했다는 감정마저, 그 아픈 기억에 대해서마저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조차 사랑할 수 있게 되고서야 고맙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나이란 몇 살일까. 아니 그 나이가 되었다고 그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또 몇일까.

 

음악 자체도 그렇다. 대중가요란 후크다. 김태원 자신도 인정했었다. 후렴에서 시작하는 네 마디가 중요하다. 그러나 사랑에서는 그런 게 없다. 그냥 흐른다. 그냥 흘러 내려간다.

 

유장하다. 아니 음악 자체가 물처럼 담백하다. 문득 클래식의 편곡은 어땠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역시 이 노래는 정동하의 아련함에 더해진 간결한 사운드가 더 어울린다. 더도 덜도 없이 마치 맑은 물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텅 빈 여백으로 다가오는 쪽이 더 어울린다. 그래서 멜로디는 더욱 유장하고 사운드는 더욱 웅장하며 정동하의 목소리는 더 애잔함을 더한다.

 

마치 비를 맞고 난 다음의 후련함이랄까? 한여름 지나가는 소나기를 맞고 난 다음 어느새 내리쬐는 햇살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축축하게 젖은 그리움과 여름 볕의 따사로움과 같은 후련함이.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듣고 드디어 김태원의 음악의 한 부분이 마무리되었구나 여겼었다. 그만큼 사랑은 11집까지의 김태원의 음악인생의 결정판과도 같은 노래였다. 11장의 앨범 동안 외쳐온 사랑에 대한 마지막 고백이었으며 그동안 김태원이 들려주었던 음악의 정수였다. 더하고 더하고 더하다 보니 마침내는 빼고 빼고 빼고 한 가닥 핵심만 남더라. 마치 그와 같은.

 

그래서 "생각이나"를 듣고서 조금 당황했었다. 이건 너무 대중가요스럽지 않은가. 그러나 "사랑이란 건"을 듣고서는 이것이 과연 대중가요인가.

 

그러나 말했듯 사랑 역시 대중가요로서의 대중적인 접근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두지 않은 듯한 노래였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 음악이 들려주는 아름다움 그 자체에만 천착하여. 차라리 김태원을 락커나 음악인이 아닌 아티스트라 부르고 마는 이유다. 부활도 락이냐 할 정도로 말랑하고 청승맞은 노래들이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마무리되는구나.

 

그러나 대중가요로서의 대중적인 접근에 소홀한 나머지 11집은 그대로 망하고 말았으니. 한 5천 장 팔았을까? 2008년 이후 예능출연으로 조금씩 부활이 알려지면서 남은 재고도 팔리고 했으니 많이 팔았으면 1만장까지는 팔았겠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하기 전까지 소속사도 없이 부활이라는 팀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라디오스타에 출연할 때까지도 - 아니 놀러와에 출연하기 전까지도 김태원은 그의 아버지가 하는 네일아트 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음악이 아닌 그로부터 돌파구를 마련하려. 그렇게까지 절망적인 상활이었는데.

 

솔직히 나로서는 "생각이나"보다 "사랑"이 좋다. 부활의 전반이 "사랑할수록"으로 마무리되었다면, 부활의 후반은 "사랑"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한다. "네버엔딩스토리"보다도 그래서 더 좋다. 망한 것이 너무 안타까운 - 그러나 그 이유를 알기 때문에 더 안타까운 노래. 정동하의 매력은 바로 이 노래에서부터 폭발한다. 한껏 힘을 빼고 부른 담채화와도 같은 정동하의 목소리는 이 노래에서 그 매력의 극치를 보인다. 아마 "사랑이란 건"이 이와 비견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11집은 8집에 이어 후반기의 명반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듣기에 쉽고 편하지만 결코 쉽지도 편하지도 않은 김태원의 음악인으로서의 편집증적 집착이 느껴지는 음반이라.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마무리는 듣는 내내 어떤 걸림도 지루함도 없이 흐른다.

 

지금도 또 그래서 가장 많은 듣는 앨범. 그리고 노래. 아마 이 노래가 성공했다면 예능인 김태원은 없었겠지? 국민할매도, 할마에도. 괜히 어쩐지 망한 것이 다행이다 싶은 것은...

 

좋은 노래다. 멈춰서서 잠시 생각에 빠지고픈. 언제고 나의 삶을 한 번 돌아볼 때가 되었을 때 이 음악을 틀어놓고 있으리라. 시간을 돌아 만난 오랜 친구와도 같은. 아름다운 노래다.

 

 

"사랑이란 건"을 들으면서 내내 떠올랐다. 다만 문제라면 이 노래를 배경음악 어디에 끼워넣는가 하는 것인데. 나름 앨범구성에도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라 고민이 된다. 과연... 밤이라 더욱 좋은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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