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조용필 - 촛불(축복)

까칠부 2010. 3. 2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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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촛불) - 조용필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연약한 이 여인을 누구에게 말할까요
사랑의 촛불이여 여인의 눈물이여
너마저 꺼진다면 꺼진다면 꺼진다면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
연약한 이 여인을 누가 누가 누가 지키랴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끝없는 그 이름을 누구에게 말할까요
철없는 촛불이여 외로운 불빛이여
너마저 꺼진다면 꺼진다면 꺼진다면

가사 출처 : Daum뮤직

 

 

 

 

고민했다. 원래는 다른 음악을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득 조용필이 오늘 환갑이라는 말을 듣고 무언가 조용필에 관해 올려야 하지 않는가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그게 문제였다.

 

도대체 뭘 올려야 한단 말인가. 솔직히 나는 조용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싫어한다는 편이 옳았다. 조용필의 목소리가 내가 상당히 싫어하는 타입이었던 터라. 그래서 그닥 좋아하지도 않았고 많이 듣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충 골라 올리면 되려니...

 

그러나 그는 다름아닌 조용필이었던 것이다. 슈퍼스타. 슈퍼스타라는 말이 진정으로 어울리는 몇 안 되는 한 사람.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조용필의 음악을 듣고 살았던가. 나도 모르는 새 얼마나 많은 조용필의 노래를 일상에서도 흥얼거리고 있었던가.

 

도무지 고를 수 없었다. "고추잠자리""일편단심민들레야""나는 너 좋아""어제, 오늘, 그리고...""모나리자""한강""서울서울서울""킬리만자로의 표범""미워미워미워""물망초""산유화""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허공""친구여""꿈""그 겨울의 찻집""단발머리""창밖의 여자"... 젠장. 쓰다가 날 새겠다.

 

내가 과연 이렇게까지 조용필의 음악에 빠져 있었던가. 아니 빠져있던 게 아니었다. 단지 조용필의 음악 속에 숨쉬고 살았던 것이었다. 마이클 잭슨이 그러했듯이. 슈퍼스타란 그렇게 좋아해서가 아니라 단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좋아해서라거나 그런 것을 떠나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다. 돌이켜 보니 나는 그 안에서 숨쉬고 살아왔다. 가왕이란 말은 그런 점에서 얼마나 가당찮은 조용필에 대한 폄하인가 말이다.

 

말했듯 나는 조용필을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그의 음반을 사 본 적 없고, 한 번도 굳이 그의 음악을 찾아 들어 본 적 없다. 그러나 내 귀에 울리는 것은 그의 음악이었고, 어느샌가 입안에 흥얼거리는 멜로디도 그의 음악이었다. 과연 내가 조용필을 듣는 것인가. 조용필이 나를 듣는 것인가.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가 처음 들은 조용필의 음악은 무엇이었던가. 아마 유지인과 임동진이 주연했던가 싶은 "물망초"의 주제가 "물망초"가 떠올랐고, 고추송웅씨가 출연했던 "달동네"라는 드라마에 삽입되었던 "창밖의 여자", 그리고 당연히 불려질 수밖에 없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것도 꽤 일이다. 과연 그 선후가 어떻게 되는가. 워낙 어려서 본 것들이라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선후조차 어떤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겨우 음원사이트 앨범목록을 보고서야 하나 결정내릴 수 있었다.

 

"축복"

 

조용필 2집의 타이틀곡. 원래 제목은 촛불이다. 그러나 주제가로 쓰였던 드라마 제목이 "축복"이라 축복이라 부제가 붙어 있다.

 

그런데 이게 언제적 드라마더라? 조용필 2집이 나온 것이 1980년이니 그 무렵 쯤 될 것이다. 주연은 아마 정윤희. 맞을 것이다. 정윤희가 시골에서 갓 올라오고 어쩌고, 남자주인공이 한진희였나? 노주현이었나? 시작할 때쯤 헤아릴 수 없이 켜져 있는 촛불을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어린 마음에 외워 부르던 기억이 난다. 이 노래였다. "촛불"

 

당시는 그냥 멜로디만 기억하고 있었더랬다.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처절하기까지 한 물음? 외침? 연약한 이 여인을 누가 누가 지치겠느냐며 촛불이 꺼질 것을 안타까워하는 그 노랫말과 멜로디가 슬프고도 아름다워 가사도 다 외우지 못한 채 틈만 나면 흥얼거리고 했었다. 아마 내가 이 노래의 가사를 다 외운 것이 스무살도 한참 넘어서였을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사운드도 들을 수 있었다. 충격과 함께.

 

사실 스무살 넘어서의 조용필이란 충격의 연속이었다. 어려서는 연주까지 들을 주제가 아니었던 때문이었다. 듣느니 멜로디와 가사였다. 그런데 조용필의 음악은 멜로디 자체는 참 쉬웠다. 바로 귀에 들어왔고 따라부를 수 있었다. 그러나 사운드를 듣게 되었을 때 조용필의 음악은 전혀 다른 세계로 다가왔다. 그 넓고 방대한 깊이란. 하나하나가 새롭고 하나하나가 놀라웠다. 이래서 조용필이구나...

 

축복도 그랬다. 시작부터 부딪혀 오는 처절한 멜로디 사이사이 비명처럼 들리는 기타란, 그루브가 느껴지는 단단한 베이스와 드럼, 그리고 비장하게 깔리는 신디사이저, 마침내는 예고된 비극처럼 반전으로 폭발해 들려오는 절정의 사운드, 한 마디로 시간을 관통하는 대단한 것이었다. 과연 이런 사운드가 당시에도 가능했던가. 아마 세션이 기타가 곽경욱이었고, 베이시스트가 김택환...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미 10대시절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밴드를 통해 음악적 기반을 닦은 조용필의 역량은 당대의 연주자들과 어우러지며 이런 사운드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세련된 음악을.

 

드라마의 내용은 역시나 말한 것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한 가지는 정윤희가 참 예쁘다. 어린 마음에도 정윤희는 그렇게 예뻤었다.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해서 트로이카라 했지만 나 어렸을 적에는 정윤희 하나였었다. 물론 정윤희가 출연한 성인용 영화는 내게는 금단의 영역이었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의 드라마에 대한 자료가 하나도 남은 게 없어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새삼 조용필을 통해 정윤희에 대한 기억까지 떠올려 본다. 음악은 단순히 멜로디와 사운드만이 아닌 음악과 함께 숨쉬었던 기억들이기도 한 터라. 그리고 그 기억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조용필이더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기도 전에, 내가 선택하기도 전에. 슈퍼스타란.

 

하나하나 올려볼까 한다. 그러나 도대체 뭐부터 올려야 할까. 머릿속에 넘쳐난다. 그 멜로디들이. 그 멜로디와 함께 떠오르는 기억들이. 그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나 또한 조용필과 함께 했던 터라. 가왕? 도대체 누가 그를 그리도 모욕하는가. 가황? 가당찮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도대체 그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문득 생각한다. 과연 한국 대중음악사상 조용필과 같은 이가 또 나타날 수 있을까. 이미자가 있었다. 송창식이 있었다. 서태지가 있었다. 전인권이 있었고, 김수철이 있었고, 이승철이 지금도 건재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과연 누가 있어 조용필과 비견될까. 앞으로는 과연 있을까.

 

여기서 놓쳐서는 안되는 것은 조용필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용필 1집이 나온 것이 1079년이었다. 우리나이로 당시 서른살이었다. 그렇게 조용필도 오랜 언더그라운드에서의 무명시절을 거쳤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며 자신을 갈고 닦아온 시간이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조용필도 가능했다. 지금은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너무 빨리 데뷔하고 너무 빨리 스타가 되고.

 

어쨌거나 새삼 조용필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그와 함께 지내온 지난 시간들에 감사한다. 아마 어쩌면 다시는 없을 슈퍼스타인 그에게. 나는 그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고맙고. 고맙다. 진심으로.

 

 

보너스로 정윤희. 마지막으로 그녀의 모습을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그러나 시간을 멈춰놓은 듯 사진 속의 그녀는 그때 그대로다. 참으로 단아하고 아름답던. 기억이란 원래 전설이 되는 것이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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