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썼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번 김범수 문제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이란 내가 예상한 그대로다.
"왜 아무짓도 안했는데 마치 범죄자나 되는 듯 도망치고 비명을 지르느냐!"
심지어 그게 재미있어서 일부러 뒤에서 걸음 빨리했다고 자랑하는 남자놈도 보았다. 역시나...
나는 그러면 묻고 싶다. 여동생이나, 여자친구나, 혹은 딸이거나, 밤길을 가는데 남자가 뒤에서 온다.
"아무짓도 하지 않을 테니까 침착하게 천천히 걸으면서 인사라도 해주렴."
그러겠는가? 솔직히 나도 남자지만 밤에 다니려면 무섭다. 될 수 있으면 밤에도 가로등 있고 큰 길 쪽으로 다니지 외진 길로는 다니지 않는다. 어디 비닐쪼가리라도 휙 날아다니면 심장이 덜컥거리는게...
그런데도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가 오해받아 짜증나고 불편한 것 뿐이다.
이를테면 뭐와 같느냐면 장애인들 생존권을 위해 시위하는데 여자친구랑 약속시간 늦는다고 화부터 내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약속시간 늦어봐야 얼마나 늦을까. 그러나 장애인들은 생존권이 걸렸다는 거다. 그러나 전혀 상관치 않는다. 내가 불편한 게 더 중요하니까.
내가 집단이기주의라는 말을 싫어하게 된 이유도 그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집단이기주의가 그렇게 쓰이게 되었거든. 누군가는 앞으로의 생계가 달린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말한다. 나와 상관없으니 남의 일이고 남의 일로 나를 불편하게 하니 집단이기주의다.
어느샌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할 여유를 잃은 것이다. 여유를 잃었다기보다는 뇌를 잃었다고나 할까.
얼마전 자기 딴에는 팬이라고 연습하도록 자극한다며 망신을 주려 한 어느 고딩의 경우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지 전혀 다른 입장은 생각지 않는 거다.
이게 어떤 사고와 같느냐면 유아들이 그렇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사회화가 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전혀 생각할 줄 모른다. 아주 지독한 에고덩어리이고 그래서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앙탈부리고 뗑깡부리는데 보통 성가신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하는 유아적인 사고.
즉 김범수의 문제는 바로 그런 연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자기가 걸음을 빨리하면 더 걸음을 빨리하며 불안해할 여자의 입장이라는 것을. 그 여성이 그 순간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
개인과 개인의 단절이다. 이거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 전혀 생각이라는 것을 하려 들지 않는다. 남의 일이라. 내 일이 아니라.
역지사지라는 게 다른 데 쓰는 말이 아니다. 이런 데 쓰라고 있는 말이다. 괜한 범죄자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그들을 위해 쓰라 있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새 뇌가 퇴화되어버린 것인지, 말 그대로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버린 것인지 아예 그에 대한 개념이 없다. 그래서 김범수를 욕하면서도 그런다.
"괜히 오버하는 여자들이 짜증난다."
내가 이래서 사내새끼들 싫어한다니까.
김범수 혼자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한국 남자 전반의 문제다. 아니 한국인 전반의 문제다. 남의 입장은 전혀 생각지 않는. 남의 입장이 되어 전혀 생각지 않으려는.
하긴 그러니까 그리 당당하게 방송에서 떠들어댈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녹음방송이었음에도 걸러지지 않은 것이고. 전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었을 테니까.
김범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코 김범수 혼자 욕먹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김범수 하나 욕하고서 계속해 반복할 것 같다는 것이...
참고로 한국 남자들 사고에는 그게 있다.
"여자가 뭔가 빌미를 주었으니 그런 짓도 했을테지."
남자가 나쁜 의도로 그런 짓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범죄 기사 뜨면 더 나서서 욕하는 것이 결코 그럴 리 없으니 그랬으니까. 결코 그럴 일이 없는 것이다. 여자가 뭔가 빌미를 주었으니 남자도 순간적인 충동으로 그런 짓도 저질렀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 그놈 하나 때려잡고 마는 거겠지.
아마 그것도 포함될 것이다. 자기가 잘 있는데 - 그래서 또 그런 이야기 나오면 여자 얼굴부터 따지는 얼간이들이 있다. - 내가 설마 어쩌겠는가. 그러나 실제 그런가?
참 나도 남자지만 한국 남자 전반의 사고수준이란 참 유아적이다. 애들은 차라리 순수하기라도 하지 이것들은 시커먼 것들이 속까지 시커매서는. 어이가 없다.
한둘이면 결국 한두사람의 잘못이고 말 것이다. 그러나 열이 되고 스물이 되면 그것은 그 사회 보편의 문제다. 김범수니까 화제가 되었지. 결국 그 문제의 근본은 우리 사회 안에 있는 것이다.
한심한 것이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까. 결국에 또 김범수 하나 욕하고 말 것 같은데.
주위에다나 밤길 다닐 때 조심하라 거듭 말해주어야겠다. 세상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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